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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에서 작가로, 완결이자 시작’ 신지혜 작가
2024년 3월 15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신.지.혜. 영화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다면 그 어떤 방송인보다 익숙한 이름이다. CBS 라디오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자이자 진행자로 25년간 청취자와 호흡하며 영화와 음악, 삶의 한 부분을 공유해 온 그이다. 지난해 10월 퇴사 이래 더 이상 그의 단단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아쉬움을 달래던 애청자에게 반가운 소식이 도착했다. 방송인이라는 익숙한 얼굴 이면의 새로운 면모를 담은 책을 출간한 것이다. 그것도 여러권!

영화와 미술, 전시를 접하며 체득한 콘텐츠 해석과 영감을 전하는 칼럼집 ‘친근한 것의 반란’, 공상과 상상의 SF 판타지 초단편집 ‘갈리아리 이야기’, 유럽 어느 골목 풍경의 기억을 그림으로 기록한 드로잉집 ‘도시산책자의 드로잉 프롬 유럽’까지 방송인 신지혜의 완결이자 작가 신지혜의 시작이라 하겠다.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는 작지만 큰 존재, 그들의 뮤즈가 되고 싶다는 귀여운 야심을 털어놓는 신지혜 작가를 만났다.

#1 씬디(XIINDY)

가족 여행 중에 우연히 이세계로 빠지게 된 ‘센’이 겪는 판타스틱한 모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까지는 아닐지라도, 영화는 가장 친근하고 쉬운 낯선 세계로의 초대다. 기억에 담았던 영화 속 어느 유럽의 도시 골목길은 여행자와 만나 단순한 공간 이상으로 탈바꿈한다. 발걸음이 머물렀던 꼬불꼬불한 그 길은 어느새 추억으로 인생의 한 장으로 각인된다. 사진부터 영상까지 스마트폰 하나면 해결되는 시대에 드로잉은 씬디만의 여행기억법이다.

‘씬디’는 일명 부캐인데, 그 탄생이 궁금하다.
호칭은 경쾌하고 밝은 느낌의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나면 좋겠더라. 예전엔 라디오 진행자를 ‘~지기’라고 불렀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름과 디제이를 합한 호칭이 유행했고, 그때 ‘신디’였으니 겸사겸사 의미있겠다 싶었다. 여행 다니며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며 펜으로 슥슥 그리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는 거다. 이것저것 도구를 바꾸며 그리다 결국 라미펜으로 정착해, 시간 날 때 짬짬이 그린 드로잉북이 어느새 7권이 넘어갈 정도였다. 주변에서 보더니 감성이 좋다고, 책으로 엮어보자고 제안주셨다.

빡빡한 방송 스케줄 속에서 그렇게 많이 그리다니 놀랍다.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 아마 ‘일’이라면 절대 못 했을 거다. 어느 순간부터 드로잉 작업이 다른 무엇보다 힐링이 되더라.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곤 한다.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겠다고 작정하지 않더라도 색칠하기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일 외에 집중할 무언가가 있다는 점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님, 아비뇽, 파리, 아를, 생폴 드 방스, 엑상프로방스, 리스본, 포르투 등 많은 이들이 영화 속에서 황홀하게 바라보던 풍경이 씬디라는 필터로 재탄생했다. 요즘같이 ‘빠르고 쉽게’가 모토인 세상에 그림으로 기억을 기록하다니, 씬디는 어떤 사람인가.
이번에 10여 년 동안 유럽여행을 하며 남긴 사진을 토대로 한 드로잉 30여 점을 담았는데, 이런 드로잉은 나만의 여행기억법이라 하겠다. 그리다 보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게 당시의 생각 감정 느낌 냄새 공기까지 생생해진다. 씬디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쑥스럽지만) 애니메이션 속 소녀와 함께 방울을 딸랑거리며 뛰어가는 고양이처럼 도시의 골목을 좋아하는 도시산책자, 예쁜 필기도구와 문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2 신린(Xiinlyn)

우연히 생긴 까만 점을 주목한 이가 있다. SF 소설 광팬인 신린이다. 이 까만 점을 기점으로 그의 호기심은 시작과 기원을 알 수 없는 행성 갈리아리부터 고대 설화와 문명, 평행우주, 우주 너머의 세상까지 현실과 초현실, 꿈과 상상을 넘나들며 팽창한다.

평행우주, 이종과 이형, 인간의 정체성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다룬 초단편집인데, 이를 장편화 할 계획은 없는지.
솔직히 장편 소설을 쓸 그릇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웃음) SF 장르를 너무 좋아하고 관련 콘텐츠를 접하면서 스쳐 지나간 아이디어를 그때그때 기록하여 초단편집이라는 이름으로 내놨는데, 이 아이디어가 다른 창작자의 영감에 작은 모티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린은 이야기의 씨앗 혹은 작은 파편을 뿌렸다고 생각하고,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같이 언제 어디에서든 차용된다면 영광이겠다.

책 표지는 ‘갈리아리’의 문자를 상상해 형상화한 것으로 직접 그렸다고.
갈리아리는 인류가 시작된, 오래된 고대문명일 수도 혹은 여전히 가닿지 못한 우주의 어느 행성일 수도 있다. 심지어 시간도 불명확한 곳인데, 이런 느낌을 살려 한글로 형상화했다. 잘 보면 한글로 ‘갈리아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중간의 달 모양은 개인적으로 달을 애정해서다! 우리가 늘 바라보는 건 달의 앞모습이라, 우리가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이 늘 궁금했거든. ‘갈리아리 이야기’의 키워드는 모호함이라 하겠다. 시간 공간 국가 모두 분명하지 않지만, 모든 가능성에 열려 있는 무한 확장성을 의미한다.

또 다른 부캐인 신린에게 영감을 준 작가(창작자)가 있다면.
신린은 이야기의 힘과 이야기 안에 담긴 문화, 역사, 유산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90년대 그의 청춘을 지지해 준 베이스로는 두 작가가 있다. 밀란 쿤데라와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신린’이라는 이름도 이번 출간된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따온 것이다. 글 중 도서관장이 아들이면 ‘신’, 딸이면 ‘린’이라고 이름 짓겠다고 하는데, 성별을 알 수 없는 이 이름이 글의 키워드인 모호함과 잘 부합되어 끌렸다.

#3 신지혜

가족의 뒷모습을 찍는 8세 소년(에드워드 양 <하나 그리고 둘>), 어린이의 손을 잡고 걷는 할머니(데이빗 핀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3년 만에 만난 요정 지니와 서사학자(조지 밀러 <3000년의 기다림). 내용도 장르도 전혀 다른 세 영화에서 ‘뒷모습’이라는 공통점을 포착한 신지혜 작가다. 오랜 경험치를 통해 쌓아온 콘텐츠 리터러시의 힘, 작가는 어느 순간 양적팽창이 질적향상을 수반한다고 한다.

아르떼에 기고한 칼럼을 묶은 영화.미술에세이집 ‘친근한 것의 반란’은 영화와 미술, 전시를 접목한 점이 특색있다.
영화 칼럼은 그간 여러 번 해온, 제목처럼 친근한 것이라 (웃음) 이번에는 변주를 주고 싶어 아르떼 측에 제안해 ‘영화와 영감’이라는 코너로 칼럼을 쓰게 됐다. 음악이나 그림, 조각, 영화 등 예술가의 그 아름다운 재능이 부러웠지만, 내게는 일찌감치 없음을 깨닫고 감상의 영역으로 눈을 돌렸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콘텐츠를 읽는 능력이 조금씩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양적팽창이 질적향상을 가져오는 순간이 있더라.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제갤러리, 갤러리 현대, 바라캇 컨템포러리 등의 전시회 리뷰와 마이클 라코위츠, 이우환, 최지목, 마틴 마르지엘라, 신디셔먼 같은 내가 영감을 받은 작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미술 칼럼 그리고 영화 칼럼을 실었다.

각기 다른 필명으로 책 세 권을 동시에 출간했는데 작가로서 포부는.
방송은 공공매체인 만큼 방송인 신지혜는 단정한 틀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캐랄지 필명을 사용했다. 필명은 비유하자면 마스크 혹은 화장이랄까. 소설가 로맹 가리가 필명 ‘에밀 아자르’로 활동했듯 멋지게 TPO에 맞는 옷을 입고 싶은 바람이다.



사진_박광희 실장


2024년 3월 15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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