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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기와 향기를 품고 ‘하류인생’에 몸을 던진 조승우 김민선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 조승우 김민선 인터뷰 | 2004년 5월 17일 월요일 | 서대원 기자 이메일

시작이 좋았다. 인터뷰 장소로 이동할라치면 으레 교통비 최소 만원 정도는 드는 게 이 바닥의 현실. 하지만 이날 땡전 한뿐 들지 않았다. 영광스럽게도 무비스트 본부를 지척에 두고 있는 멀티극장에서 <하류인생> 첫 일반시사회가 열리게 돼 이곳에서 조승우와 김민선을 접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격변의 시기를 ‘깡’하나로 버티며 관통해온 건달 최태웅 캐릭터를 생각하자면
“야이 자식들아! 뭘 꼬라봐!”
라고 으름장을 놨어야 했다. 뻘줌한 자세로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는 어리버리 무비스트 출장 전문요원을 처음으로 맞닥뜨린 순간에 말이다. 허나, 의상을 바꿔 입으러 가는 도중 조승우가 건넨 말은 여자라면 자지러지게 딱 좋은 상큼한 미소를 살짝이 머금은 채....
(꾸바닥!) “안녕하세요”.

비록, 남성성이 드세 보이는 콧수염을 적잖이 방치해둔 상태이긴 했으나 워낙이 생김새가 순둥이 같고 선한 이미지라 <하류인생>의 그 거침없고 주먹만이 능사라 믿고 있는 태웅을 그 위에 겹쳐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의 말마따나 기존의 캐릭터의 잔영을 이번 영화에서마저도 짙게 드리우며 관람했다간 “어절씨구, 이거 전혀 딴판이네”라는 소리 나올 법도 하다.

자신의 장단지에 칼을 꽂은 놈의 집까지 칼을 뽑지 않은 채 찾아가 "찌른 놈이 빼!"라며 겁나게 당찬 오기를 부리고, 가랑이를 찢어버리겠다며 여배우를 협박하고, 밤자리를 거부하는 아내의 빰을 호되게 내려치며 옷을 강제적으로 벗기는 등 <춘향전> <후아유> <클래식>의 매너 좋고 마냥 성격 좋을 것만 같은 소년과는 배치되는 괴물?스런 청년, 혹은 아저씨로 그는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 낯선 몸짓과 걸걸한 육두문자를 단단히 몸에 두르고 다시금 스크린을 두드린 조승우의 매무새는, 사실 맞지 않을 것 같은 옷을 입은 언발란스한 모양새로 그려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근심의 아연함은 이내 자연스러움으로 치환되고, 감정이입에 장애로 복무할 것 같은 종래의 이미지는 오히려 전형적 인물로 비쳐줄 수 있는 태웅 역에 더 깊고 넓은 해석의 여지와 시선을 보탠다. 거장의 세심한 손길과 그 안에서 조급해하지 않으며 운신의 폭을 소신껏 조율해온 조승우의 나이답지 않은 배우로서의 성숙한 자세가 맞물려 빚어낸 결과에 다름 아니다. 그러기에 영화관계자들과 대중들은 그의 행보에 단발성 관심보다는 두터운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비중은 그에 못 미치지만 여주인공 김민선의 단아한 자태도 눈여겨볼 만하다. TV 드라마 <유리구두>의 악녀, 그러니까 팥쥐와 찰떡궁합인 싸가지가 바가지인 배역을 통해 널리 알져진 그녀는 자신의 말처럼 신세대적인 느낌으로 어필된 측면이 많은 배우다. 그럼에도 60년대를 주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에서 별스러운 어색함이 눈에 밟히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애딸린 전통적인 현모양처와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방식의 신여성까지 아우르며 큰 폭의 연기를 소화해낼 수 있었던 데는, 각인된 이미지가 있을 리 만무한 초짜배우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지듯 뛸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가 영화에 잘 녹아나도록 적당히 한발짝 뒤로 물러나 있었기에 가능했다. 심지어 김민선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영화 속 그녀처럼 조승우를 보듬어 안는 따뜻한 품성을 보여줬다.

천성마저 삼켜버릴 듯 살풍경한 한국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건달의 ‘독기’와 우아한 여인의 ‘향기’를 품고 온 몸을 던지며 사람냄새나는 이야기와 보는 내가 환호작약하며 민망할 만큼 재미난 상황을 펼쳐낸 두 남녀의 연기는 분명 하류가 아닌 상류의 그것이다.

21일 개봉을 앞두고 언론시사를 비롯해 일부에 <하류인생>이 공개됐다. 만족하나?
조승우: 글쎄, 만족이라.....연기자한테는 연기적인 측면일 텐데. 모든 배우들이 그렇듯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거다. 좀만 잘해서 찍었으면 더 나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하지만 나름대로 정말 소중하게 촬영에 임하며 찍었기 때문에 만족하는 편이다. 영화도 잘 나왔고...

김민선: 매순간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 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운 부분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연기적인 면에서....그리고 행여나 너무 영화가 무겁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무거운 애기를 가볍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측면이 있어 좋았다. 물론, 가벼운 부분만 보면 안 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걸 같이 느꼈으면 한다.

지연된 후반 작업 스케줄로 인해 유력시되던 칸 영화 진출이 성사되지 못했다. 아쉬움은 없는지
조승우: 전혀 없다. 예전에 한번 갔다오기도 했고. 원래 예정대로라면 국내 개봉에 앞서 칸에 모인 외국인에게 먼저 선을 보였을 거다.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관객에게 먼저 보이는 게 더 좋고 그래서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다. 뭐, 하나도 안 아쉬울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가서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최민식 선배가 연기상을 탔으면 한다.

김민선: 승우씨와 동감이다. 그리고 한 가지 상상했던 게 있다. 레드 카펫을 밟을 때 어머니 사진을 들고 올라 가고 싶다는 생각. 그게 좀 아쉽지만 영화를 통해 소중한 것을 많이 얻었기 때문에 괜찮다.(김민선씨는 촬영을 앞두고 모친상을 당했다)

임권택, 정일성 감독, 이태원 대표, 신중현 음악감독, 조명 소품 감독 등 영화에 참여한 많은 분들의 나이가 장난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남다른 느낌이 있었을 텐데..
조승우: 어리다면 어린 애기배우가 거장들과 함께 했다는 자체가 영광이다. 사실, 그분들이 젊은 스탭보다 더 열심이고 정열적이고 활동적이다. 또, 한국 역사의 근대사를 직접 몸으로 경험하신 분들이기에 시대극을 연기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을 줘 마음의 부담을 덜고 촬영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이태원 사장 별명이 조감독이다. 임권택 감독이 “조감독 어딨냐?” 하면 “네”하고 달려온다. 그러고나서 세세한 소품까지 신경써주시더라.......고증이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재미도 있었고.

김민선: 승우씨와 달리 그분들이랑 처음 작업하는 거라 은근히 부담감도 있었고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많이 배웠다. 영화에 대한 순수함 열정. 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배움이 많이 되더라. 노인네라 하지 않고 왜 청년이라 부르는지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80년 생으로 알고 있다. 유부남 역은 처음일 거다. 또 “가랑이를 찢는다”“영어 잘 하는 저 새끼 재수없다”등등 아주 단순과격한 대사의 퍼레이드가 압권이었다 종래의 캐릭터를 생각하자면 참 멀리 나아간 거 같다.
조승우: 여지껏 나를 봐왔던 분들이 그러니까 순수하고 연약해보이고 부드럽고 뭐 그런 걸 상상했을 텐데 이번 영화를 보고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거라 본다. 건달의 끼를 가지고 사는 인물인데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파란만장한 인물일 수도 있다. 액션도 있고, 욕도 많이 나오고, 대사도 옛날 식이고, 웃기는 부분도 있고......거친 면을 많이 보게 될 거다. 그리고 촬영하면서 느낀 건데 눈에만 힘주고 뭐 이런 식으로 깡패의 기질을 보여줄 수는 없더라. 감독님이 요구한 대로 내면에서부터 독기가 품어나게끔. 거기에 상당한 중점을 뒀다.

김민선: 옆에서 보면 너무 조용하고 순한데, 딱 찍어온 걸 보니 너무 욕을 맛깔스럽게 잘하더라. 아니 “쟤가 저런 모습이 있었나” 싶더라..

조승우: 욕이 어색하면 극 전체가 어색해지더라. 그래서 화장실의 거울을 보고 연습을 열심히 했다. 평생할 욕의 몇십배를 다 해버린 거 같다. 거울을 보고 욕이 끊어지지 않도록 여러 종류의 욕을 이어서 쉴새없이 떠들어댔다.

막역한 사이의 친구들과 술 마시고 그럴 때 욕 하지 않나...
조승우: 그냥...이 자식아~ 저 자식아~ 정도의 건전한 욕? 정도만 한다.

그 당시엔 보기 드문 신여성적인 측면과 전통적 현모양처 캐릭터가 다시 말해 어울리기 힘든 두 성격이 혜옥에겐 공존돼 있다.
김민선: 사실 굉장히 목 말라 있었다. 나를 신세대 캐릭터로 많이들 기억한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내 안에는 그것 말고도 다른 것들이 많은데 다른 뭔가를 할 수 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임권택 감독만이 나에게 고전미가 있음을 발견해줬다. 그래서 선택해줬고. 결국, <하류인생>으로 인해 내 자신을 더 넓게 알 수 있게 됐다. 물론, 혜옥을 연기하면서 재미도 있었다. 아~ 나에게도 이런 기질의 여성이 들어있구나 싶더라. 정치인 딸이면서 건달과 결혼하는 과감한 면이 현재의 내모습과 결부되서 그런지 신여성적인 부분은 좀 편안히 연기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다보면 웃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당신 둘이서 벌이는 여러 가지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조승우: 원래 배드신도 있었다. 잘리긴 했지만... 그리고 여관에서 삘받아 혜옥의 입술을 덥치는 신이 있는데 감독님이 오래하라고 요구했다. “너희들 입술과 입술이 맞닿아서..승우야 한 30초 정도 유지해줘라”하시더란 말이다. 그래서 하다보니 30초가 너무 긴 게 아닌가 싶어 자연스럽게 손이 밑으로 내렸갔다. 바로 컷!소리가 들리더라.

“승우야 입술 외의 다른 곳은 여행하지 말아라” 그러시더라. ㅋㅋㅋㅋ 완전 현장이 뒤집어져 수습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김민선: 그 신에서 정일성 감독님이 무거운 카메라 때문에 무척 고생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힘들다고 주저 앉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진짜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출 신은 처음이고 여자이다보니 당연 힘들더라, 얼마만큼 노출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다행히 승우씨가 많이 도와줘 좋은 장면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그래서 추천해주고 싶은 신이 있을 거다.
조승우: 태웅은 자기를 버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다. 그러다 결혼하고 부인이 출산하게 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굉장히 감동을 받는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부모자식간의 사이는 그 어떤 죄를 저질러도 이미 그런 세계를 떠난 그 무엇이라 생각하게 된다. 결국, 태웅은 엄마를 용서하고 찾아가 만난다. 그 장면을 추천해드리고 싶다.

김민선: 태웅이와 혜옥이가 서로 맺어지게 되는 신이 있다. 서 있는 태웅이에게 자신이 직접 짠 니트를 입혀주면서 꼭 안아주는 서로의 마음을 알게되는 장면이 있는데 되게 아름답더라. 몇마디 대사도 동작도 없는 데도 말이다. 또 하나 마지막에 나이든 모습으로 자식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나온다. 그 사진 속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영화가 다 설명되는 거 같아 무척 좋았다.

<하류인생>의 주인공인 당신들의 실제 인생은 어떤 인생이라 생각하는가?
김민선: 늘 안개속에 놓여 있는 거 같다. 걷혔다 싶으면 벽이 또 하나 있고....그렇게 답답해하고 힘들 때마다 뒤를 한번씩 돌아본다. 그러다보니 아득한 그 무엇 속에서 나의 길의 흔적이 나있는 걸 발견하게 됐다. S자도 있고 꼬부라진 길도 있고 곧은 길도 있고. 그 길들을 보면서 다시금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한 계단도 아니고 반 계단식, 하나하나 밟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게 내 인생이 아닌가 싶다.

조승우: 몇 살 안 먹었지만 지금 나의 삶을 비춰봤을 때 내가 이루고자 했던 꿈도 빨리 이뤘고, 아직 목표에 이르지 못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고 있으니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 참 운이 좋은 인생이라 생각한다. 하류고 상류고 따질 거 없이 운이 좋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인터뷰: 서 대원 기자
촬 영: 이 기성 피디

7 )
pretto
좋은 인터뷰였습니다^^   
2010-01-30 16:15
qsay11tem
좀 아쉬움이   
2007-08-09 21:17
kpop20
승우씨의 예쁜 미소 좋아요   
2007-05-27 11:21
ldk209
김민선도 조용하네....   
2006-12-28 00:07
a1046
하류인생.. 생각보다 흥행 못했지만 말아톤에서 만회 한거 같아요. 갈수록 연기력이 늘고 있어 너무 좋아요 >.<   
2005-02-15 18:51
soaring2
임권택감독의 타이틀만 믿고 봤는데..하류인생..깨더라구요.;;   
2005-02-13 06:56
cko27
조승우 웃는 모습이 너무 매력있네. 부러워라. ㅎㅎ 말아톤에서 좋은 연기 잘봤구요. 김민선씨도 드라마에서 잘 보고있어요.^^   
2005-02-0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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