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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되지만 인간적인 통일 판타지 간큰가족
jimmani 2005-06-01 오전 1:14:52 897   [16]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단 한번도 통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되어 있는 나라라는 슬픈 이름표도 달려 있고, 분명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생김새를 가진 남북의 사람들이 충돌을 겪는 모습을 볼 때면 한국사람으로써 씁쓸한 마음을 금치 못하는 건 사실이다. 80년대에 있었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나, 근래 들어 수차례 있었던 이산가족 상봉 소식같은 것을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셨던 것도 남북의 이념적 대립을 떠나 이러한 한민족으로서 알게 모르게 쌓인 유대감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간 큰 가족>은 이렇게 남북관계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사고관을 파고든다. 적어도 가족과의 생이별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주름이 잔뜩 패인 자식을 보며 눈물 흘려야 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릴 때만은 정말 남북통일이라는 게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통일에 대해서 여러 관점에서 다양한 시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통일에 대해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든지하는 다소 딱딱한 소재로는 가지 않고, 오로지 통일로 인해 멀어진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는 주인공 할아버지를 통해 통일에 대해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으로 다가가고 있다. 실은 겉포장으로 '통일 자작극'이라는 컨셉으로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온갖 희노애락의 감정의 특성상, 이 영화가 그렇게 통일이라는 소재를 마냥 웃기게만 다루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감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3대가 함께 살고 있는 보기 드문 대가족이라 유난히 화목하고 단란해 보이는 김노인(신구)네 가족. 북쪽에 두고 온 가족들이 있는 김노인은 언제나 고향에 한번 가볼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이들 가족의 현재 삶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큰아들 명석(감우성)은 보증을 잘못 서 빚독촉을 시도때도 없이 해대는 박평달 상무(성지루)에게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고, 에로비디오 감독인 명규(김수로)도 자금 사정이 빠듯한 상황이다. 그러던 중, 김노인이 길에서 쓰러지게 되면서 간암 말기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3개월 정도밖에 살 날이 남지 않았음을 가족들은 알게 된다. 명규는 영화감독인 자신의 재능을 어느 정도 발휘해 김노인의 죽기 전 소원인 통일을 가상으로라도 만들어 선물로 드리자고 제안하고 가족들은 이에 동의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큰아들 명석은 어느날 김노인이 실은 만만치 않은 유산을 갖고 있으며(자그마치 50억!), 그 유산은 통일이 됐을 시에만 가족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명규의 제안에다 이러한 엄청난 유산 소식에까지 귀가 솔깃해진 명석은 바로 작전을 실행하기로 한다. 명규를 착실하게 따르는 동춘서커스단 출신 배우 춘자(신이) 등이 합류하면서 웃지 못할 통일 자작극이 시작되는데, 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김노인은 통일이 됐다는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한다. 그러나 이걸 어쩐다, 김노인의 병세는 갈 수록 호전되어가고, 자꾸 연기되어가는 자작극 종료 기간때문에 가족들의 자작극은 눈덩이 불어나듯 커지기 시작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가게 되는데...
 
우선 배우들부터가, 소수가 주인공이 되어 극을 이끌어나가는 게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가 주인공인 식으로 전개되다 보니 각 배우들의 개성있는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감우성은 처음 시도한 코믹 영화에서 제대로 변신에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가족들 중에서는 제일 진지한 편에 속하나, 그가 탁구경기, 본의 아니게 참가하게 된 서커스 등 각종 자작극에서 펼치는 개인기가 만만치 않다. 기존 영화들에서 보여준 너무 진지하고 고민 많은, 그래서 연기는 좋지만 일반 관객들이 다가가기에는 좀 경직되어 보이는 이미지를 날려버릴 좋은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김수로는 역시나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제대로 된 통일 연기를 보여주었다. 현란한 입담과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을 통해 그가 보여주는 코믹 연기는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말썽 많고 촐싹대는, 그러나 순수한 면도 갖고 있는 명규의 이미지는 딱 김수로를 위한 역할이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로 나온 김수미 씨는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퉁명스럽고 괴팍한 구석이 있는 어머니이면서도, 때론 남편인 김노인에게 말못한 서운한 감정도 있고, 때론 뒤집어지게 웃겨주셨다. 특히나 자작극을 눈치채려고 하는 중국집 배달원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으로 자장면, 짬뽕, 양장피, 고추잡채 등을 주문하는 모습은 뒤집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중견배우는 어떤 연기를 해도 확실히 보여준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신구 씨의 연기 또한 조용하면서도 끊임없이 고향을 바라고 한번이라도 헤어진 가족들을 보고 싶어하는 그 모습이 가슴을 싸하게 만드는 위력을 지닌 듯 싶다. 이외에도 빚 독촉하러 왔다가 얼떨결에 기자 역할, 서커스 단원까지 맡게 된 성지루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통일방송'의 없어서는 안될 여자 아나운서 역할을 해낸 신이, 현모양처인 듯 보이면서도 자작극에 문제가 생겼다 싶으면 몸을 아끼지 않는 며느리 이칸희 등 많은 배우들이 모두 자기만의 개성을 보여주었다.
 
휴먼 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성상, 영화는 흔히 보아온 전코믹 후감동 코드로 나아간다. 코믹한 전반부, 중반부 부분은 처음에는 그냥 한번 쇼 삼아 시작한 거짓말이 온동네 사람들까지 속이는 스케일의 거짓말로 나아가면서 벌어지는 아찔한 일들, 거기서 생기는 긴장감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오는 웃음들이 상당한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들이 일으킨 통일 상황에 대해서 너무 과장되게 행동하고 다소 오버하는 면도 없지 않았던 것 같아 아쉬움을 준다. 그런 상황일 수록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더 웃겼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영화 속 배우들이 포복절도한다고 관객까지 포복절도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반부, 그들의 자작극이 밝혀지고 난 뒤부터(스포일러라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어차피 예상되는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꼬리가 길면 언제나 밟히는 법...;;) 벌어지는 다소 진지하고 감동적인 상황들은 앞서 보여준 이런 약간의 단점들을 상당부분 상쇄시켜주었다. 비록 통일되었다는 것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은 알게 됐지만 정말 북쪽으로 가족들이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한국 사람이라면 충분히 느꼈을 한민족에 대한 애정, 생이별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등이 효과적으로 더해져 상당한 감동을 주었다. 물론 너무 한민족을 강조하고, 통일만이 최고인 것처럼 표현하는 면도 없지 않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앞부분의 코믹함이 아무리 과장돼도 이렇게 북쪽에 가서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 진실되고 인간적으로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
 
앞서 얘기했듯, 이 영화는 남북분단이라는 다소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정치적인 칼날을 들이대진 않는다. 이 영화와 설정이 비슷해 자주 비교되곤 하는 <굿바이 레닌>에선 가족들의 자작극과 함께 전체적으로 통일 이후의 독일의 실제 모습을 적잖이 반영함으로써 가족들이 펼치는 자작극과 현실의 괴리, 그로 인해 생기는 딜레마와 갈등, 이데올로기적 대립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보여주었었다. 그러나 <간 큰 가족>에서는 가족들의 자작극 바깥의 상황은 그렇게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잠시 남북 해상 교전이 영화의 긴장감을 돋우고자 나올 뿐, 가족들의 자작극이 주로 부각돼 마치 이들의 상황이 현실과 다소 멀어진 판타지 세계인 것같은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현재 한국의 분단 상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이런 점때문에 사라진 점이 없지 않지만, 당초에 휴먼 코미디를 표방한 영화로써, 이런 다소 무거운 고민은 과감히 던져버리고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면에서 통일이라는 문제를 접근한 점은 꽤 괜찮지 않았나 싶다. 남북이 어떤 이념적 대립을 갖고 있고, 통일 문제에 대해 어떤 손익을 따지고 하는 복잡한 문제를 떠나서, 김노인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야 하는' 인간적 비애를 초래하는 분단 상황 그 자체에 대해 부각시킴으로써 보다 인간적인 감동을 이끌어내기 쉽게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영화 속 통일 상황이 당연히 아직은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반부에 가족들이 통일됐다며 다함께 만세를 외칠 때 은근히 소름이 돋았다. 후반부에 가서 가족들이 북쪽으로 가 함께 하는 모습을 볼 때도 은근히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통일, 남북분단 문제는 특히 한국사람의 입장에서 참 감정의 동요를 많이 일으키게 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간 큰 가족>은 오히려 이런 감정적 부분을 충실하게 파고들었다는 점이 좋았다. 괜히 정치적인 문제를 건드렸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된 것보다는, 이렇게 진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갈구하는 분단 상황을 강조하며 '인간적으로' 통일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 영화는, 그래서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일종의 판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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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큰가족(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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