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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현실의 습자지 한 장 차이 그림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
jimmani 2005-11-12 오전 1:43:35 896   [1]


동화를 반죽하고 패러디한다는 것은 얼핏 생각하면 꽤 참신한 소재일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린 이미 <슈렉> 시리즈를 통해 그 진수를 만끽한 바 있다. 백마탄 왕자의 구출만 오매불망 기다리던 공주가 실은 무술 유단자인데다 밤만 되면 괴물로 변신한다는 컨셉은 이미 기존의 다소 고리타분한 서양 전래동화에 무협영화, 늑대인간 스토리 등을 희한하게 섞어놓은 동화 패러디의 진수였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 <그림 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이하, <그림 형제>. 사족이지만, 희한하게 미국 개봉당시에는 부제가 없었는데 우리나라에선 이렇게 다소 긴 부제가 붙었다)이 하는 시도는 여전히 참신하면서도 자칫하면 꽤 위험부담이 클 수도 있는 시도이다. <슈렉>과 같은 예전에 나온 작품들이 워낙에 발칙하게 동화들을 많이 꼬아놓은 탓에 이 이상을 성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선 몇가지 차별화된 시도를 한다. 동화 속 세상을 그저 현실의 입장에서 비틀고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동화 속 세상을 직접 현실로 데리고 오는 것이다. 동화 속의 마녀, 마법과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와 현실 속의 사회 혼란이 공존하는 세상, 이 속에서 관객은 단순히 동화 여러 편들이 반죽되는 재미 뿐 아니라 현실과 동화가 반죽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묘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대단히 헷갈리거나, 아니면 꽤 흥미롭거나) 주인공들인 그림 형제 역시 이전까지 그저 마녀 전설 같은 것이 남일인양 행동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들이 기록한 이야기 속 전설의 주인공이 되어 들어가는 등, 이 영화에서 동화와 현실의 경계는 멀지도 않을 뿐 더러, 확연하게 구분지어놓지도 않았다. 그저 눈깜짝할 사이에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동화와 현실을 넘나들 수 있는 그런 곳을 배경으로 해놓은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제이콥 그림(형, 히스 레저)과 윌 그림(동생, 맷 데이먼) 형제는 프랑스가 독일을 점령하고 있던 19세기 경, 프랑스가 점령중인 독일을 누비며 자칭 마녀, 괴물 사냥꾼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면서 마녀나 괴물 퇴치 자작극을 벌이며 적당히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부정한 방법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형 제이콥은 마을마다 자신들이 접하는 흥미로운 전설이나 이야기를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고, 동생 윌은 그저 영웅 행세하는 재미에만 가득 빠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프랑스 정부가 이들의 나름대로 체계적이나 사실은 꽤 어설픈 사기 행각을 눈치채고 이들을 잡아들인다. 그대로 목숨이 날아갈 위기에 처했으나, 때마침 마르바덴이라는 마을의 숲에서 연이어 소녀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생기게 되면서 이들은 목숨에 대한 협상으로 그 마을에 가서 사건을 해결하고 오면 목숨을 살려주기로 하는 협상에 가까스로 성공한다. 여전히 적당히 사기치는 식으로 해결하려 마을로 간 형제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은 진짜 장난 아니게 무시무시한 전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그들은 그저 사기로써가 아니라 진짜 마녀, 괴물을 상대로 모험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일단 배우들을 살펴보면, 맷 데이먼과 히스 레저가 맡은 역할이 꽤 재미있다. 실제로는 맷 데이먼이 히스 레저보다 열살 가까이 많은데 영화 속에선 히스 레저가 형인 제이크 역을 맡았으니 말이다. 좀 안맞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캐스팅할 적에 두 사람이 스스로 각자 그 역할들을 맡고 싶다고 이야기했듯이, 영화 속에서도 그들의 형, 동생 연기는 어색하지 않고 꽤 자연스럽게 잘 나타났다. 맷 데이먼이 동안인 건지, 아니면 히스 레저가 나이에 비해서 성숙한 건지는 몰라도. 어쩌면 두 배우의 목소리 톤에서도 그런 자연스런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데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 히스 레저가 좀 두껍고 허스키해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어보이는 목소리 톤이라면, 맷 데이먼은 상대적으로 목소리 톤이 얇고 활발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거울 여왕 역의 모니카 벨루치같은 경우는, 광고에서 소개하는 것과는 달리 출연비중이 다른 배우들에 비해 심하게 작다. 그저 여주인공인 안젤리카의 회상신에서 잠깐 나오고, 후반부에 주인공들과 맞닥뜨리는 부분에서만 나오지 나머지 부분에선 그저 암시만 할 뿐 등장하질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고만 믿고 모니카 벨루치가 상당한 주연급인 줄 알고 보신다면 상당히 실망하실 것이나, 사실 분량은 적어도 그 부분에서 이 여인이 뿜어내는 카리스마가 만만치 않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하며 미에 대한 허황된 욕망을 꿈꾸지만 마냥 사악하게만은 생기지 않은, 어딘가 빠져들 듯한 매력의 외모를 소유한 여왕으로서 그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딱 알맞은 배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좀 미스캐스팅스런 부분이 있었다면, 그 아름다움이 너무 압도적이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악역인 거울 여왕이라면 우리가 외모를 보고 그래도 '여전히 더 예쁜 사람은 따로 있어'라고 부정할 여지를 남겨둬야 할 것을, 모니카 벨루치의 눈부신 미모는 그녀의 '이제 내가 제일 예쁘지?'라는 반협박성 질문에 '당연하죠, 단연 압권이십니다'라는 대답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악독한 정부 고위층 델러통브 역의 조나단 프라이스나, 고문 기술자로 악명높았던 카발디 역의 피터 스토메어 등 연기파 배우들의 재미난 악센트가 가미된 조연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죄를 지은 그림 형제를 화형시킴에 앞서 그걸 앞에다 두고 멋진 광경이라면서와인을 가져다 마시는 델러통브의 모습하며, 섬찟한 신기술 고문 기구를 놓고 발명의 기쁨을 한껏 누리며 미치광이 웃음을 날리는 카발디의 모습은 히스테릭한 캐릭터로서 손색이 없었다. 다만, 그 악독하던 카발디가 후반부에 가서는 어느 순간 그림 형제의 편으로 돌아서면서 존대말까지 쓰는 모습에선 그저 할말을 잃을 뿐이었다.
 
명색이 판타지인데, 비주얼에서 또 뒤쳐질 수 없는 노릇이다. 거기다 헐리웃 최고의 비주얼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는 테리 길리엄 감독인데 그렇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그의 명성답게 이 영화가 선보이는 비주얼은 확실히 기존 헐리웃 블럭버스터의 여전히 즐겁지만 다소 진부한 스펙터클과 궤를 달리 한다. 마치 길을 알 수 없는 미궁을 이리저리 훑는 듯한 숲의 신비로운 풍경, 나무가 뿌리를 발로 삼아 기어다니고 사람들을 잡아먹는 모습 등 단지 규모 면에서만 뽐내려 하는 게 아니라 판타지라는 장르가 원래 주어야 할 신비롭고 무서우면서도 매혹적인 비주얼을 잘 보여주었다. 여왕의 몸이 마치 거울이 깨지듯 산산조각나거나, 멀쩡하던 소녀가 의문의 흙덩이에 눈, 입, 심지어는 몸 전체까지 서서히 빼앗기는 장면들은 왠지 모르게 공포스런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절로 감탄사를 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마력을 지닌 장면들이었다. 그저 부수고, 덩치를 불리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동화라는 소재에서 예상치 못한 잔혹함과 동시에 묘한 중독성까지 뿜어내는 그런 비주얼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꽤 논란거리가 많을 만한 구조이다. 좋게 말해 럭비공같이 통통 튀는 독특한 구조요, 나쁘게 말해 중구난방이다. 처음에는 그저 사기치다 걸려 진짜 무시무시한 전설을 만나게 된 형제의 모험담으로 시작되지만 이 과정에서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끌어들인다. 여주인공 안젤리카 기억으론 무시무시한 거울 여왕은 예전에 출입구도 없는 탑에 홀로 갇혀 머리를 길게 기르며 왕자의 구출만 기다리던 라푼젤이었으며, 한편으론 거울을 보며 빈틈없는 미모를 추구하던 여왕(백설공주의 계모 왕비처럼)이었다. 이 여왕은 12명의 소녀를 제물로 부활을 꿈꾸는데, 이들 희생자 중엔 빨간모자 소녀도 있고 헨젤과 그레텔 남매 중 여동생 그레텔도 있으며, 생강빵 인간으로부터 희생돼 끌려온 아이도 있다. 그리고 제물이 될 위기에 처한 채 잠든 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또 진실된 사랑이 담긴 키스를 해야지 깨어날 수 있다(잠자는 숲속의 미녀). 여왕의 마법을 완성하기 위해 홀린 의문의 남자는 잠든 아이들에게 요상한 마법으로 투명한 구두(신데렐라)를 신기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의 스토리는 그림 형제의 모험담에서부터 예상치 못한 방향, 예상치 못한 동화 쪽으로 마음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도대체 이야기를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대략 난감해질 때도 몇 번 있다. 또한 이렇게 마구 섞인 이야기 속에서 앞뒤가 맞는지 개연성의 여부를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주인공이 그림 형제라는 점에서 이들이 이렇게 뒤죽박죽인 이야기 안에서 모험담을 펼친다는 사실이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림 형제가 엮어낸 동화책 <그림 동화> 속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고, 그림 형제가 그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 종횡무진하며 모험담을 펼친다는 설정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아마도 감독이 목표로 한 것도 대략 이런 쪽이 아닌가 싶다. 비록 한꺼번에 그림 형제로 인해 유명해진 동화들이 여러 편 반죽되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산만하다는느낌이 상당히 들게 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마치 책 속에서 그저 남의 일 구경하듯 지켜만 봤던 동화 속 이야기가 현실과 맞물리게 되면서, 더구나 그 엮은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직접 이야기를 엮어간다는, 현실과 동화의 경계를 확실히 무너뜨리는 것이 감독이 의도한 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꽤 흥미로운 시도임은 분명하다. 개연성이나 논리성은 아예 무시한 채, 그저 이리저리 뒤섞여서 한바탕 테마공원을 조성한 그림 형제의 동화 세계를 만끽하는 것이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일지도.
 
사실, <이솝 우화>나 <안데르센 동화>같은 모음집들이 각자 풍자성, 교훈성과 같은 나름의 특성을 띄고 있듯, <그림 동화>도 고유의 특성을 띄고 있다. 우리가 가끔 인터넷이나 TV에서 <그림 동화> 속 이야기들의 원본이 얼마나 섬뜩한지를 간혹 접하게 되는데(<신데렐라>에서 신데렐라의 새언니들이 유리구두가 발에 맞지 않자 뒷꿈치를 잘랐다는 식의) 이처럼 <그림동화>의 특성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아마도 '엽기'일 것이다. 그에 맞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동화 캐릭터, 이야기들도 마냥 화사하고 즐겁지만 않다. 영생의 아름다움에 눈이 먼 거울 여왕은 자신의 꼬임에 넘어간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에 치명적인 브로치같은 걸 찔러넣음으로써 충성을 바치게 하고, 숲을 지배하는 나무는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서 사람을 반토막 내거나 몸을 관통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여왕의 마법에 홀린 말은 제물이 될 소녀를 산 채로 그냥 집어삼키기도 하고. 이렇게 영화는 <그림 동화>가 띄고 있는 본래의 엽기성을 영화 속 꼬인 스토리 안에도 어느 정도 반영함으로써, 동화가 겉으로 교훈적이고 밝고 발랄한 면만 드러내고 있는 대신 이면에 숨기고 있는 은근히 잔혹하고 비정한 면을 아낌없이 까발리고 있기도 하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동화가 사실 그렇게 만만하고 마냥 순수한 건 아니란다'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듯이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들의 조합으로 생소한 재미를 줌과 동시에, 그 동화들이 갖고 있는 은근한 잔혹함에 절로 섬뜩한 느낌 또한 들게 하는 이중적 매력이 이 영화에는 있다.
 
영화 속에서 거울 여왕은 제이크를 홀리려고 이런 말을 한다. '때론 진실이 허구보다 더 끔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막상 보고 나면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현실 도피용으로 읽는 동화 속에도 사실 그 기원을 뚫고 들어가보면 여느 엽기적 사건 못지 않은 깜짝 놀랄 진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영화 <그림 형제>는 동화 속 여러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한껏 어울려 나중에 수습하기 힘들더라도 마냥 잔치마당처럼 즐기는 재미를 주면서도, 동시에 겉으로는 순수, 발랄한 이미지로 웃고 있는 동화가 뒤에서는 이렇게 살벌한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장난기 있게 보여준다. 바깥에선 엄연히 현실의 역사가 흐르고 있으면서도, 숲에만 들어가면 나무가 움직이고 여왕이 마법을 부리는 마르바덴 마을의 모습처럼, 현실과 동화의 거리가 그렇게 유별나게 멀지도 않고 그 경계도 그렇게 굳건하진 않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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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2005, The Brothers Grimm)
제작사 : Dimension Films / 배급사 : 쇼이스트(주)
수입사 : 쇼이스트(주) / 공식홈페이지 : http://www.brothers-grim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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