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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정드는 아이들 달빛 속삭임
jimmani 2006-04-19 오전 12:28:53 1081   [3]

10대의 사랑이라는 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미롭고 애틋한 게 될 수 있지만, 그 과정을 지나는 동안의 격한 성장기답게 때론 그 감정도 매우 격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모르게 와락 감정의 파도가 나를 덮쳐오기도 하고, 그 변화는 또 거친 폭풍우처럼 심장을 흔들고 뒤집어놓기도 한다. 감정의 주체인 나조차도 제대로 알 수 없을 만큼 불현듯 나타났다 어느덧 사라지기도 하고.

이 영화 <달빛 속삭임> 역시 이런 10대의 나도 모르게 설레는 사랑이란 감정에 관한 영화다. 또 일본 영화가 <러브 레터>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런 쪽의 러브스토리에는 또 탁월한 소질이 있지 않던가. 이 영화도 제목부터가 낭만적인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 게 그럴 듯하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앞서 <러브 레터>와 비슷한 류의 영화인 줄 알고 보신다면 매우 놀라실 것이 분명하다. 이 영화는 이런 10대의 사랑과 설레임을, 그것도 "아주 격하게" 그리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인 타쿠야(미즈하시 겐지)는 이제 막 사랑이라는 뜨겁고 설레는 감정에 빠져들었다. 같은 검도부에 다니는 사츠키(츠구미)라는 여자아이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 검도 연습 시간에 그녀에게 죽도로 머리를 맞으면 그보다 기분이 좋을 수가 없고, 우연히 사물함 열쇠를 잘못 꽂은 것 때문에 그녀의 사물함에서 그녀의 물건들을 가져와 몰래 간직하기도 한다. 검도 연습 시간에 둘은 파트너로 함께 활동을 하고, 둘은 어느덧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실은 사츠키 역시 타쿠야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둘은 연인 사이가 되고, 어린 나이에 첫경험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둘의 행복도 잠시. 타쿠야에게는 밝히기 곤란한 비밀이 있었다. 사츠키가 입던 속옷, 쓰던 휴지까지 모으고 심지어는 사츠키가 볼일 보는 소리까지 테이프에 녹음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비밀을 알게 된 사츠키는 기겁을 하고 타쿠야와 헤어지고는 같은 검도부 선배인 우에마츠(쿠사노 코우타)를 새로 사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미 사츠키를 향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버린 타쿠야는 수시로 사츠키를 찾아가고, 급기야는 사츠키 앞에 무릎꿇으며 "너의 개가 되게 해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한다. 여기서도 매몰차게 거절한다면 이야기가 무난하겠지만 사츠키, 희한하게 자신의 감정이 타쿠야가 원하는 쪽으로 발동이 걸리는 걸 느끼게 된다. 사츠키는 우에마츠 선배와 사귀는 와중에 자신의 "개"가 된 타쿠야에게 온갖 요구를 하고, 타쿠야는 이 요구를 군말없이 받아들이는 이상한 관계가 형성되어 가는데.

일단 줄거리는 이렇다. 그렇다. 초반에 그래도 두 소년 소녀가 풋사랑에 빠지고 서로의 애틋한 감정을 내보이는 과정은 여느 청춘 멜로 속 아련한 분위기와 별반 다름이 없다.(물론 처음부터 살짝 남자주인공의 비밀(?)을 엿보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아이들이 첫 관계를 가져서 좀 당황스럽게 하긴 하지만;;) 그러나 남자주인공인 타쿠야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한 후에 영화의 전개는 일체의 수줍음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이들의 서로간의 감정 전달은 몰래 편지를 써 전한다거나 수줍은 전화를 한다거나 하는 낭만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한 아이는 "너의 개가 될게" 하면서 기꺼이 종 노릇을 하겠다고 무릎을 꿇질 않나, 다른 한 아이는 이에 옳다구나 하면서 선배와 데이트하는 모습을 상대방에게 따라다니면서 지켜보라고 한다. 그러다 나중에는 선배와 관계를 갖는 장면까지 몰래 숨어서 지켜보라는 극단적인 명령까지 시키고. 타쿠야의 당황스런 요구에 여자주인공이 "어머나!"하면서 당황스러워하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사츠키는 그런 타쿠야의 요구가 재미있는 듯 더 강도가 심한 쪽으로 명령의 범위를 넓혀간다. 우리가 보통 "비정상적인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도마조히즘이 이 아이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전달하는 어떤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 속 소년 소녀의 사랑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 심지어 제목의 낭만성과도 거리가 말고 오히려 거리낌없이 일탈적이니 보는 상황으로 하여금 당황스러울 만도 하다. 실제로 시사회 장소에서의 관객들의 반응도 내가 여지껏 겪어 본 반응들 중 가장 다양하고 난감한 반응들이었다. 황당함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웃음소리는 기본이요, "어~"하는 소리의 왠지 거부감이 든다는 듯한 반응, 심지어는 몇몇 관객은 영화가 영 불쾌했는지 중간에 나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사랑, 특히나 10대 소년 소녀의 첫사랑에 있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오히려 우리의 고정관념을 제대로 깨뜨리는 일탈적인 사랑의 방식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감독이 바라는 바는, 이런 아이들의 비정상적인 감정 표현, 점차 그쪽으로 크게 번져가는 아이들의 욕망들을 단순히 에로티시즘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만 나타내려 하진 않은 것 같다. 물론 고등학생이라는 아이들이 대담하게 성관계를 가지면서 그걸 대상으로 관음증, 사도마조히즘적인 욕망을 발산하는 모습이 왠만큼 영화 보면서 많은 걸 개의치 않는 나로서도 좀 찜찜하고 부담스럽게 다가온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아이들의 욕망도 어쩌면 하나의 은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라는 우리의 미래와 생각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를 지나오면서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자기 내부의 감춰진 본성, 욕망을 발견하는 과정을 상징하는 하나의 비유대상이라고나 할까. 그 비유대상이 심하게 일탈스러운지라 왠만한 사람들의 비위에 살짝 거슬릴 수도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특히 이 기묘한 로맨스의 시발점이 되는 타쿠야)은 처음 자신의 내부에 숨겨진 욕망을 발견하고는 대단히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워 한다. 그런 욕망을 거부하려 하면서도, 그 욕망은 끊임없이 아이들을 옆에서 간지럽히고, 유혹한다. 그런 점에서 제목이 어찌보면 마냥 생뚱맞은 제목은 아닐 것이다. 밤마다 내 얼굴을 은은히 비추는 달빛처럼 은밀히 고개를 내밀어 속삭이는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아이들의 가슴 속 숨겨진 욕망의 모습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애써 거부하고 미친 짓인양 치부하다가도, 이상하게 아이들은 그런 자신들의 욕망에 점차 끌리게 된다. "내가 이런 면이 있었나?"하면서 나도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 마냥 기분 나쁘지만은 아닌 것이다. 마치 달빛이 거는 최면에 이끌린 듯 점차 그 욕망의 맛을 즐기게 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영화 속에서는 좀 극단적이고 일탈적으로 그 욕망이 묘사되긴 했지만, 비단 이런 희한한 욕망이 아니라도 질풍노도의 10대에는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또 다른 내면을 발견하는 경우를 자주 맞이하게 된다. 그동안 어리다고 잘 몰랐었는데 사회의 보다 많은 상황들, 복잡한 감정들을 느끼게 되면서 점차 눈을 뜨게 되는 내면의 새로운 모습들이 때론 나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하고 새로운 쾌감을 전해주기도 한다. 영화는 "사도마조히즘"이라는 소재를 어쩌면 상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10대의 시절에 다가오는 은밀하면서도 새로운 내면의 욕망, 그리고 이와 싸움을 벌이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또 다른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10대들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 욕망의 힘에 이끌려 온갖 사고도 저지르고 걷잡을 수 없는 일을 벌이기도 하지만, 서서히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어우러지게 할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해 가면서 거부감 들지 않게 자신의 일부분으로 그 독특한 욕망을 인정해 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 타쿠야와 사츠키는 처음에는 "뭐 저런 식으로 사랑을 하는 아이들이 다 있지?"하면서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마지막에 가서는 이상하게 정이 들고 귀엽게 느껴진다. 타쿠야는 자신은 온몸을 다쳐서 사츠키보다 더 몸이 불편한 상황인데도 사츠키가 "나 목말라"하니까 주저없이 목발을 짚고는 음료수를 사다준다. 사츠키가 얄밉게 변덕을 부려서 타쿠야는 그저 말없이 "그래"하며 곁에 앉을 뿐이다. 이 정도가 되면 앞서 아이들이 그토록 독특한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더라도 "쟤네들이 저렇게도 서로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면서 아이들 나름대로의 사랑의 절실함이 왠지 살짝 와닿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비록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꽤 걸릴 방법으로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사랑이라는 걸 하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이 아이들은 자기들 나름대로는 각자의 숨겨진 욕망을 발견하고 이를 서로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나름 활용하기도 하면서 서서히 받아들이며 성숙해가는, 또 다른 면에서의 "성장"을 겪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대단히 불쾌하기도 하고 대단히 당황스러워 할 가능성이 농후한 영화이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볼 때는 또 나름대로 애틋하고 은은한 사랑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이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한없이 격하긴 하지만, 적어도 타쿠야는 사츠키의 무슨 명령이라도 들어줄 만큼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츠키 역시 그런 독특한 타쿠야의 짝이 기꺼이 되어줄 만큼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요지는 둘은 그들 나름대로의 낭만적인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독특한 욕망의 발산에 적잖이 놀라고 긴장하기도 하지만, 서서히 이런 욕망을 사랑의 방법의 일환으로 인정해가고, 그만큼 자신들의 사랑을 확고히 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끝에 가서는 결국 이상하게 정이 들고 기특해진다. 아이들이 새로 발견한 자신 안의 욕망에 최면이라도 걸리듯 끌리는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우리들에게 "이들의 사랑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일종의 최면을 걸어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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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속삭임(1999, Moonlight Whispers / Gekko no Sasayaki)
배급사 : (주)인디스토리
수입사 : (주)인디스토리 / 공식홈페이지 : http://cafe.naver.com/indiestory1998.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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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시간
  • 100 분
  • 개봉
  • 2006-04-20
  • 전문가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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