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삶에서 대박을 꿈꾼다. 일확천금의 행운이 찾아온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복권을 긁고 로또의 빈칸을 채운다. 물론 그 일확천금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만약 그 주인공이 된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물론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있겠냐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과연 로또에 당첨된 인물들이 모두 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지 한번쯤은 궁금하기도 하다.
리모콘이 있다. 이 리모콘만 있으면 자신의 삶이 컨트롤된다. 시끄럽게 짖는 개의 목소리도 소거할 수 있고 지긋지긋한 교통체증도 벗어날 수 있다. 뻔뻔한 상사를 정지시켜놓고 그가 모르는 사이에 턱을 날려줄 수도 있다. 시간을 멈추고 원하는 과거를 재생할 수도 있다. 원치 않는 순간을 빨리 감아버려 시간을 건너 뛸 수도 있다. 사실 마이클 뉴먼(아담 샌들러 역)이 원했던 것은 TV리모콘 뿐이었다. 그는 일과 가족 사이에서 버둥거리며 가족에도 직장에도 완벽한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 수많은 리모콘 가운데서 TV를 켜기 위해 환풍기를 돌리고 차고문을 열고 장난감 자동차를 움직여야 한다. 매사가 맘대로 되지 않는 그에게 신의 은총같은 리모콘이 강림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리모콘.
뉴먼은 그 리모콘을 통해 자신의 삶에 불필요하다 여기는 뒤치닥거리를 뛰어넘는다. 교통체증과 부인과의 말다툼을 뛰어건너고 심지어는 시간낭비같다고 여기는 가족과의 식사도 건너뛰어버린다. 오로지 승진을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고 일에 전념한다. 물론 그 이유는 가족을 위해서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아버지로써의 능력을 키우려 한다. 그래서 그는 승진만을 바라고 그러기위해서는 어쩧 수 없이 가족과의 시간을 줄이고 일을 전념할 수 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리모콘을 이용해 가족과의 시간을 단축시키고 승진을 위해 시간을 단축시키는 클릭을 몇차례고 반복한다.
일단 영화의 설정은 꽤나 흥미롭다. 마치 맞춤형 인스턴트 인생을 설계하듯 리모콘으로 조절하는 삶은 기발하다. 특히나 DVD의 셔플을 보듯 메뉴를 고르고 그 안에서 과거와 오늘을 왔다갔다하는 배경조절도 재치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재기발랄한 요소는 아담 샌들러 표 코믹이다. 크게 뛰어나진 않다해도 관객에게 적절한 웃음을 안겨주는 그의 연기는 그의 영화를 찾는 관객의 이유이자 이 영화에 거는 기대감의 최전선에 서 있는 목표물이다.
사실 영화의 내용은 결말에 닿는 순간 뻔한 그것이 되어버린다. 최후반까지 속내를 알 수 없는 비극성으로 점철되다가 뒤집기 한판으로 이야기를 엎어버리는 구도는 우리가 마치 '파리의 연인'을 통해 보았던 분노의 반전과도 흡사해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몰고 가는 가족주의적 감동이나 이 영화가 아담 샌들러표 영화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 그것은 이 영화가 밟을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당연한 결말 이전까지 타종의 기대감을 품게 만든 이야기가 더 대단할 수도 있다는 역설적 이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영리한 소재를 통해 취하는 이야기가 작위적이고 통속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불만이 제기될 법도 하고 초반에 웃음을 끌어내던 코믹함이 후반부에 이르며 점점 희석되는 것도 그 방면의 기대감을 원했던 관객에게는 불만의 요소로 제기될 법하다.
어쩄든 이 영화는 독특하고 참신한 소재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교훈을 준다. 인간에게 불행보다는 행복의 비중이 큰 삶이 좋겠지만 그 불행이 꼭 불필요한 것들은 아닌 것을 말이다. 불행을 회피하는 것은 결국 그 상황의 여지를 남겨놓은 채 도망가는 것이라는 것을. 마치 인생의 도중에 박힌 지뢰를 제거하지 않고 방치하는 꼴이라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이라는 것을. 미래를 위해 현재를 버리는 것은 결국 그 찬란한 미래가 다가왔을 때 남은 건 현저히 줄어든 수명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영화의 결과론은 극단적이지만 영화라는 것이 다 그런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얻는 것은 그 극의 과장을 덜어낸 알맹이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알맹이를 추리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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