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극장에서 박장대소를.....
2008년은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해이고, 베이징 올림픽의 공식 마스코트가 바로 중국의 자랑 팬더이다. 팬더가 주인공인 영화 <쿵푸팬더>는 분명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겨냥한 일종의 기획 상품인 건 확실하다. 이상하게 기획 상품이라고 하면 왠지 한철 장사 같고, 관광지의 허접한 싸구려 상품이 연상되어 구입을 꺼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느림과 게으름의 대명사, 팬더가 쿵푸를 하는 설정이라니, 참신하다. 거기에 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게 드림웍스라면 일단 최소한 실망을 주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보러 갔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쿵푸팬더>의 이야기 구조 자체는 예전 홍콩 쿵푸영화와 거의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는 등 전형적이다. 그러나 쿵푸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팬더가 주인공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영화에서 본 여러 가지 동작을 따라하며 호권, 학권, 당랑권 등등을 외치며 장난을 치곤했는데, <쿵푸팬더>에서는 실제 그 동물들이 그 권법을 행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호권, 사권, 학원, 당랑권은 모르겠지만, 후권(원숭이 권법)은 익숙한 권법은 아니다. 그보다는 용권이 쿵푸 영화에선 더 익숙한 권법일 텐데, 실제 동물이 권법을 한다는 점에서 변형을 가하지 않았나 싶다.
팬더 곰(팬더가 곰이 아니라 너구리과란 사실은 오래 전에 밝혀진 비밀이었지만, 여전히 팬더곰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인 포(잭 블랙)의 꿈은 쿵푸의 최고 달인이 되는 것이지만, 현실은 거대한 살로 뒤덮인 몸을 겨우 끌고 다니는 몸꽝이다. 거기에 국수집을 운영하는 아버지 오리는 '우리 집안 피에는 육수가 흐른다'며 가업 승계를 강요한다.(피에 육수가 흐른단다. ㅋㅋㅋ) 그러던 어느 날 포는 쿵푸의 최고 비법이 적혀 있는 용문서를 물려받을 후계자 선발전을 구경하러 갔다가 엉뚱하게 후계자로 지목받는다. 사부인 너구리 시푸(더스틴 호프만)는 물론이고, 쿵푸의 달인인 '무적의 5인방'도 이에 반발하지만, 대사부는 '믿으라'며 포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지 않는다. 악으로 똘똘 뭉친 타이렁이 용문서를 뺏기 위해 이곳으로 오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긴장감은 높아지며, 포는 단기속성으로 쿵푸를 수련해 타이렁을 물리쳐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쿵푸팬더>는 기존의 드림웍스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처럼 많은 교훈을 내재하고 있다. 특히 대사부가 계속 강조하는 '믿는다'라는 명제는 자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함께 타인에 대한 신뢰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다.(타이렁이 차지하려고 하는 용문서도 결국은 자신에 대한 신뢰의 강조다) 사부 시푸가 포를 믿지 못해 (당연하게도!) 후계자를 다시 선발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 난 엉뚱하게 한국의 교육 현실을 떠올렸다. 현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반장 등 학급 임원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그 학생의 친화력이나 리더십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적이었다. 심지어 선생이 지목하지 않고 선거로 뽑을 때도 일정 성적 이상의 학생만이 후보가 될 수 있었다. 가끔 성적이 높지 않은 학생이 후보로 나올라치면 선생으로부터 약간의 비웃음과 함께 자격을 박탈당하곤 했다. 과거 한 정치인은 대통령을 뽑을 때 시험으로 뽑으면 자신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기도 했는데, 고졸이 명문대 출신을 이길 수 있는 민주주의는 그런 점에서 참 좋은 제도인 것 같다.
물론, 드림웍스 제작의 애니메이션이 교훈만 준다고 하면 현재의 명성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상영 내내 주기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과 박장대소는 이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들어진 코미디인가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다. 일단 뱃살이 출렁대는 포가 헉헉대며 계단을 기어오르는 장면부터 해서 그가 벌이는 온갖 몸 개그는 실제 잭 블랙을 연상시킬 정도로 웃음을 던져주며, 특히 포의 식탐을 이용한 적합 훈련을 벌이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감탄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포의 아버지를 오리로 설정한 것도 기막히다. 마지막 부분에서 포는 "아버지를 보면 내가 아버지 자식이 맞는지 의문이 가요"(ㅋㅋㅋ)라며 얘기하자 아버지는 "사실은..."이라면서 모두가 예상한 답변을 비껴 삼천포로 빠진다.
공동감독인 존 스티븐슨이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장르 패러디가 아니라 무협물에 대한 진짜 존경심에서 만들었다'고 밝힌 것처럼 무협 액션 장면도 거대하고 화려하다. 그 중에서도 많은 헐리웃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절벽의 흔들다리 위에서 펼치는 타이렁 대 무적의 5인방의 대결 장면이라든가 포와 타이렁의 마지막 대결 장면은 눈이 휙휙 돌아갈 만큼 빠르고 역동적이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얘기다.
한국인인 제니퍼 유 넬슨이 스토리 총 책임을 맡았고, 전용덕 씨가 레이아웃 총책임자를 담당하는 등 한국인이 제작의 주요한 책임을 맡았다는 이유로 한국 관객들에게 친근감을 더하는 <쿵푸팬더>에는 중요 배역의 목소리를 유명 배우들이 맡음으로서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주인공 포에는 잭 블랙(아무래도 외모까지), 사부 시푸에 더스틴 호프만, 호권의 타이그리스는 안젤리나 졸리(목소리만 들어도 섹시하다), 사권의 바이퍼에 루시 리우(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약간 사근사근한 느낌이다), 후권의 청룽에 성룡이 출연하고 있는데, 성룡의 경우 거의 대사가 없어 대체 왜 목소리 출연이 필요했는지 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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