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보다는 덜 심오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물론 전적으로 필자의 생각이었지만, 1년 4개월의 베일속에 가려졌던, 말로만 듣던 100억 (이젠 놀라지도 않는다 ㅡ.ㅡ;;) 짜리 프로젝트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너무 많은 기대속에 많은 궁금증과 의혹마저 증폭시켰던 영화였기에 완성되고 난 후에도 창작의 주체였던 ‘장선우’ 감독님은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역력했다.
게임과 현실의 혼재속에 ‘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분간하기 힘든 영화적 구성 장치는 옛날, 장자의 ‘호접몽’의 나비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영화속에 삽입되었고, 그 사이 사이에서 우리는 현란한 영상들 틈에서 잠시 눈의 피로를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게 이 영화의 전부라고 말하면, 혹자는 실망하심에 틀림없다.
100억짜리 영화 이야기가 겨우 이걸루 끝을 맺을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필자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두 번 봄에 있어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보고자 했다. 이는,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락 영화에서 심오(?)한 부분을 찾아낸 결과인데, 감독님이나 그 밖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 이하 ‘성소재림’>에 관련했던 모든 이가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렇게 보게 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다면, 이 역시 7,000원 주고 아깝지 않은 훌륭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오프닝 씬 부터,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드는 고전가요의 배경 음악에 라이터를 팔고 다니는 ‘성냥팔이 소녀(임은경 분)’.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타인들의 무관심속에 그녀는 서서히 죽어간다. 라이터 가스로 고픈 배를 채우면서... 그러나 이 코믹한 분위기의 오프닝은 ‘성냥팔이 소녀’의 동화를 우리나라에 맞게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 일뿐,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표현하지는 않는다.
게임의 시작은 지금부터로 현실속에서 ‘주(김현성 분)’가 우연히 라이터를 사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필자는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영화의 시놉시스부터 사건의 전개를 얘기하지 않겠다. 오히려 영화를 봄에 있어서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으므로, 필자가 본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재해석하고자 한다.
위 제목처럼, 성냥팔이 소녀가 2002년 (사실, 그 이전에 재림했어야 했지만)에 재림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인가 우리곁으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예의 그 모습을 주시할 수 밖에 없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구름의 모습과 갑작스런 꿈속에서 선의 표상인 예수(천사) 또는 악의 상징인 악마의 재림을 보았다면, 그 사건에 우리는 많은 이목을 집중한다. 혹, 무슨 메시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학계 서적이나, 기타 모든 정보를 총동원하기 일쑤며, 그 심오한 뜻을 밝히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모습을 신문 지상의 가십거리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필자 또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오락 영화로서의 임무 외에 우리에게 무엇인가 메시지를 던진다고 본다. 필자가 분석해 낸 그 의미는 아무 쓸모없는 개인적 ‘음모이론’에 불과할 수 있겠으나, 재미로 한번 읽어 주시기를 부탁한다.
첫째. 동화속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하나 못 팔고 죽는다. 이는 동화에 비극성을 부여한다기 보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소외계층은 계속 소외당하고 있는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그 소외 계층의 단면을 ‘성냥팔이 소녀’의 이미지로 보여 주므로써, 우리에게 함께 사는 사회의 깨달음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둘째. 무분별한 우상화로 인한 폐단을 꼬집는다. 사실, ‘성냥팔이 소녀’는 그저 그런 평범한 소녀였지만, 부지불식간 자동소총으로 무장하면서부터 범법자가 된다. 하지만, 우리네 청소년들은 달리 보게 된다. 그 화끈한 성격(?), 폭발하는 분노를 표현하는 충동적 살인을 그저 스트레스 해소와 이미테이션 등을 통한 따라하기로 발전하게 된다. 그 속에서 우리네 청소년들의 쉼터 문화가 미비함이 보여지고, 이거 말고도 없으면.. 입시 스트레스에 성적 압박에 정말 헤어 나올 구석이 없을 것 같다.
이 밖에도 영화의 소재 ‘호접몽’을 통한 ‘나’와 ‘너’의 경계 모호성을 파헤침으로써 진정한 자아 찾기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게임은 오버된다. 이 것 말고도 관객들 하나하나가 그 영화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그걸 느끼신다면, 아마도 ‘장선우’ 감독이 말하는 영화보기가 실효를 거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의도하지 않고, 설령 의도를 했더라도 관객의 심판앞에서는 모든 영화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무엇을 부각시킬 주제가 없었던 영화 <성소 재림>은 필자 같이 무거운 주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영화라고 생각지 않을 수도 있고, 게임과 동일시하여 더 오락적인 요소가 풍부한 엔터테인먼트라 지칭할 수도 있듯, 다양한 파장을 몰고 올, 올해 최고 이슈작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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