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첫 시사회가 있었던 9월 9일.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영화 시작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2년간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영화가 드디어 공개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 나는 다소 어리둥절한 마음을 숨기기 힘들었다.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나의 몰입을 방해한 것이다. 그리고 선입견을 털어내고 그 날 저녁 다시 찾아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근간 본 영화중에서 최고의 블럭버스터라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분명히 이 영화는 <매트릭스>풍의 깔끔한 액션물이 아니다. 오프닝에 흐르는 '목포의 눈물'이 암시하듯 "뽕짝 액션"이라고 누군가 칭한다 해도 그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장선우 감독의 여러 인터뷰나 잡지등에서 말하듯이 금강경에 대한 이야기나 나비에 대한 철학적 의미등은 평론가들에게는 이 영화를 충분히 씹으면서 논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고 일반 관객에게는 영화에 몰입할 "여지"를 막는 셈이 된다.
하지만 왜 그렇게 영화를 봐야될까? <성소>가 지닌 오락영화로서의 가치는 상당하다. 액션은 획기적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기가 막히고, 느닷없이 터져나오는 코미디의 박자는 그야말로 포복절도다. 유치하다는 비난을 하기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맨날 같은 욕설만 반복하며 식상해진 조폭 코미디에 비하면 <성소>의 웃음이 얼마나 재밌는지 말이다. 또한 라라라는 캐릭터로 인해 <성소>의 액션은 한층 화려해진다. <매트릭스>의 액션이 발레를 연상케 하는 동작으로 화제를 모았듯이 라라의 액션은 관객의 시선을 충분히 잡아끈다. 그녀에게 주어진 '산만하다'라는 캐릭터와 깨는듯한 대사, 그리고 나이트 클럽에서의 춤추며 싸우는 장면은 분명한 <성소>의 매력포인트다.
조폭코미디가 흥행에 성공할 때 많은 관객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영화가 어떻고간에 재미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 관객들이 이번에는 <성소>에게는 '어렵다'고 하면서 영화적인 것을 기대한다. 왜? 그 주체가 장선우라서? 이미 관객들은 <거짓말>을 통해 장선우의 연출적 능력보다는 영화속의 에로틱한 면만을 찾으려 한 경험이 있을텐데도? <성소>는 받아들이는 이의 자세에 따라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영화다. 하나는 블럭버스터 적인 관점이고 하나는 가상과 현실에 대해 논하는 장선우 감독의 구도자적 관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되도록이면 <성소>가 오락영화적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많은 관객은 영화에서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즐거운 영화감상만을 원할 뿐이다. 그리고 <성소>의 많은 것은 그러한 기준을 충분히 만족시켜준다. 그대 무엇을 바라는가? 이 영화에 대해 금강경을 놓고 도가사상과 카오스 이론에 대해서 장선우 감독이 토론에 응해주기를 바라는가? 그것은 평론가들이 충분히 해줄 몫인 것이다.
<성소>의 시도는 분명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100억원을 넘는 거대한 제작비에 대중과는 쉽게 결합될 수 없는 이야기. <매트릭스>가 철학적인 논란이 벌어질 부분을 영리하게 평론가들의 몫으로 남겨주고 액션에 몰두했고 <아바론>이 평론가들의 몫마저 관객에게 안겨주면서 놀라움과 두통을 동시에 주었다면 <성소>는 영악하게 그 사이점을 타고 있다. 이것을 긍정적이라고만은 보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장선우 감독의 시도에 대한 것은 평단의 평이 아니라 결국 흥행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해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서울 관객 얼마라는 숫자보다는 그 시도와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기억될 만한 영화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