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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기억하던 성실한 상상을 잃게 되어 아프다. 상실의 시대
movie21 2011-04-24 오전 3:27:51 716   [0]

 

 

무라카미 하루키 대표작 [상실의 시대]를 영화화한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안 좋은 영화평에도 관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역시 [상실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읽었던 시절이 벌써 십 수 년을 지나고 있지만 소설 속 장면마다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 캐릭터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그들이 처한 환경과 배경, 섬세하게 쓰여진 감정의 표현과 작은 소품의 활용까지도. 어느 것 하나 지워지지 않고 많은 부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작품 [그린 파파야 향기]와 [씨클로]로 스타 감독이 된 트란 안 훙 감독 작품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물론 이병헌과 조쉬 하트넷, 기무라 타쿠야가 출연한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비롯해 이번 작품 [상실의 시대]까지의 성적은 좋지 않습니다만 여전히 좋은 작품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는 감독이라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에 대해 좋게 언급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트란 안 훙 감독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더 사랑하는 팬이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팬심을 바탕으로 영화를 바라보았기에 영화화된 작품에 질타를 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영화 [상실의 시대]는 이치에 맞지 않는(소설과 다른) 대부분의 배경에 주인공들의 관계를 남녀간의 성 관계로만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시간에 대한 제약적 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 비춰질 이해할 수 없는 관계의 연속성이라던지 적어도 왜? 서로가 그런 입장에 처해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피고 풀었어야 했습니다. 소설을 접하지 않고 영화를 관람한 분들에게는 정말 뜻 모를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즈키의 자살로 나오코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이해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녀가 아파하는 과정을 더 그렸어야 했고 그 주변에서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던 주인공 와타나베의 마음을 더 부각시켜야 했습니다. 이러한 부분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으니 남녀의 성적 관계만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야 하는 옳지 못 한 결과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와타나베와 미도리이 만남도 그렇습니다. 미도리가 어떤 여자인지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미도리의 아픔과 과거 등은 개눈 감추듯 먹어 버리고 단순히 와타나베와의 관계를 키스로만 처리해 버리니 소설 팬으로의 입장으로 봤을 때 답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흐름상 미도리의 학창 시절 이야기는 빼놓더라도 집 옥상에서 함께 바라본. 맑은 날 꽤 가까운 곳에 불이 나 피어오르는 연기와 시간의 흐름을 맞으며 느낀, 서로의 감정 정도는 표현해 줬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광경과 두 사람의 감정 커짐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이를 빼놓고 처리해 버리다니.. 큰 실망이었습니다. 미도리의 아버지가 수 년간 크게 아프고 돌아가심을 표현해 주었기에 그나마 한 숨을 쉬었을 뿐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무더운 여름 낮. 바람 한 점 안 불 고 있을 때 그나마 효력도 없는 그 작고도 적은 부채 바람에라도 의지하는 심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는 전체적인 흐름이 끊기는 건 물론이고 감정의 아이러니를 대부분 방치해 둡니다. 우는 장면과 일상의 부분, 성 관계에 따른 두 사람의 사랑을 반복적으로 보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배경도 그러합니다. 와타나베가 다녔던 대학 기숙사 안. 그렇게 답답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창문 밖으로 다른 건물이 근접해 숨 막히는 환경을 보이고 있지만 소설에서는 거의 매일 아침 일장기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적어도 밝이 훤히 보이는 설정이었습니다. 미도리의 집도 1층 서점의 진입 부분이라던지, 내부 계단을 올라 주거 공간으로 진입하는 장면 정도는 보였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미도리가 동네 서점집 주인 딸이라는 사실이 소설에서는 매력의 한 부분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오코가 요양하고 있는 곳의 풍경은 소설에서도 제대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유명한 숲 속 '검은 구멍(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구멍)'에 대한 부분을 심미적으로 보이거나 약간의 판타지 성향을 입혀 보였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역시 중요한 부분의 상실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비 오는 날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수초가 자란 평야(?)에서 성 관계를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물이 들어찬 웅덩이가 주변으로 두 개 있었지만, 이곳을 숲 속 '검은 구멍'에 연결시키기란 절대적으로 미흡합니다. 그나마 요양원의 모습이 비교적 부합하게 보여 다행이었습니다.       

  

캐릭터 부분입니다. 우선 [데스 노트]의 L로 잘 알려진 마츠야마 케이치가 주인공 와타나베를 연기하였습니다. 보는 내내 L 인상이 떠올라 와타나베 캐릭터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와타나베처럼 성실하지만 할 일(?) 하는 이미지가 보여 좋았습니다. 나오코 역을 담당한 키쿠치 유리코는 처음 볼 때 무척 어색했지만 나름 나오코 역을 풀어 나가려는 섬세함 때문에 좋았습니다. 작품을 감상하다보니 나오코가 이럴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만큼 표현하기 힘들었던 인물이 나오코 역이기도 했습니다. 힘든 역할이니만큼 최선을 다했다 말해주고 싶습니다. 미즈하라 키코가 미도리 역을 맡았습니다. 톡톡 튀는 모습에 섬세함도 있고 슬픔고 안고 있는 미도리의 인상에 비교적 잘 어울린다 여겼습니다. 연기는 못 했습니다. 그 동안 생각했던 소설 속 미도리 인상(이미지)하고 어느 정도 부합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입니다.  

 

작품의 전체적인 감상은 실망이었습니다. 적어도 이야기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그렸어도, 배경이나 소설 속에서 보였던 작은 소품의 배치 정도를 염두해 두었더라면 아쉬움으로나마 기억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기존에 갖고 있던 소설 속 성실한 상상을 약간은 잃게 되어 후회가 됩니다.   

 

소설을 영화로 풀어낸 다수의 작품이 그러했듯이 이번 [상실의 시대]를 영화화한 본 작품도 그 이상의 기대치를 보이지 못함에 큰 아쉬움입니다.

앞으로는 좀 더 다양한 방식과 미장센으로 기대에 부합하는 영화의 탄생을 고대하며 

감상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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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2010, Norwegian Wood / ノルウェイの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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