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박찬욱이 보여준 기묘하면서도 개성 있는 미장센은 여전히 유효하다. 얼마 전 개봉된 라스트 스탠드가 김지운 감독 특유의 색깔과 장르적 개성을 드러내지 못한 점과 비교했을 때, 이 점은 더욱 부각된다.(죄송합니다... 김지운 감독님...) 충무로가 아닌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에 성공한 그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이는 장면 하나하나마다 치밀한 계산과 사전작업이 선행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제한된 공간, 조용한 분위기에서 쫄깃하게 조이는 스릴러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 말 그대로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에 성공했다. (오프닝에서 케이크 상단 위에 박찬욱의 이름이 나타났다 사라질 때, 나도 모르게 울컥ㅜ.ㅜ..)
니콜 키드먼은 모성애는 오래전에 갖다버린 듯한 히스테리컬한 엄마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했고, 매큐 구드 역시 천진한 소년의 얼굴 뒤에 잔혹한 비밀을 감춘 의문의 삼촌역을 잘 소화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누구보다 밝게 빛나는 배우는 주연인 미아 와시코브스카이다. 살인에 눈뜨며 성적, 심리적, 신체적으로 성숙해지며 진정한 자신을 깨닫는 인디아 그 자체였던 그녀는 순수와 퇴폐를 넘나드는 연기로 스크린을 말 그대로 찜쪄먹는다...
그간 꾸준히 발견할 수 있었던 박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는 찾기 힘들다. 이점을 기대하는 팬이라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썰렁한 듯, 폐부를 찌르면서도 의외성을 안겨주는(예를 들어 친절한 금자씨의 ‘너나잘하세요’) 그와 같은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간 무미건조함을 유지한다. 신기한 점은 스토커가 별다른 도구나 공간적 배경 없이 햇볕 잘 드는 고급저택 한 채 만으로 고도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청력이 예민한 인디아에게 유독 소리(벌레소리, 음악소리 등)가 잘 들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에 예민한 감각이라는 단서는 삼촌인 매튜 구드와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짧게 설명된다)
박찬욱 감독의 팬이라면 전작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즐길 거리가 많은 작품일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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