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법칙, 노인은 죽어야 한다 - 삶을 꿰뚫는 거부할 수 없는 영화의 힘
비단을 펼친듯한 눈덮인 산. 관객은 효심깊은 자식이 울며 불며 노모를 버리는 "설화적" 드라마를 예측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전개되는 것은 마음을 빼앗는 리얼리즘이다 - 산케이 스포츠
슬픈 영화는 많다. 어머니와 아들에 관한 영화도 많다. 그러나 <나라야마 부시코>같은 영화는 없다. 살아남기 위해 노인을 죽여야 하는 '기로 전설'.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이 담보가 되어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 영화의 스토리는 시작된다. 그리고 누구나 마음 밑바닥에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슬픔이 등장인물의 삶을 훑어 나간다.
이처럼 거대한 비극성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꿈>과 <마다다요>, <우나기>등을 작업했던 이케베 신치로의 음악과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웅장하고 파워풀한 영상으로 정련되면서 관객은 어떤 영화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삶의 카타르시스'에 젖어든다.
죽음을 맞기 위해 일상의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오린의 결연한 모습은 마치 낡은 옷을 갈아 입듯 자연스럽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애정을 포기하는 것이 최고의 애정임을 깨닫는 아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집착을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나라야마 정상으로 향하는 오린과 아들의 여정. 영화 속에서는 눈물 한방울 보여지지 않지만 보는 이의 가슴엔 끊임없이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우리가 이제껏 만나온 '신파'류의 휴머니즘들이 인공적 장치와 과장으로 관객의 감정을 짜내는 것에 불과했음을 그 순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태어난 것은 죽게 되고, 모인 것은 흩어지고, 높이 올라간 것은 아래로 떨어지는 삶의 진리. <나라야마 부시코>는 죽음에 이르는 길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삶의 길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 안에는 어떤 블록 버스터 영화도 따라 올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하나비>, <카게무샤>, <우나기>. 우리가 이제껏 만나왔던 일본 영화들을 넘어서는 거대한 힘. 삶에 밀착한 영화가 아닌, 삶 자체인 영화. 오늘 이 영화에 압도된다.
구로자와 아키라를 넘어서는 센세이션, 일본 부활!
품위있는 금색 기모노에 몸을 감싼 <나라야마 부시코>의 주연배우 사카모토 스미코가 프로듀서인 쿠사가베 고로와 함께 '영화의 거인' 오손 웰즈로부터 그랑프리를 받았다. 제 36회 칸느 국제 영화제의 시상식, 장내에 가득한 뜨거운 박수. 무대에 오른 사카모토의 작은 몸집은 스스로가 연기한 다부진 '오린'을 생생히 떠오르게 했다. 원기 왕성한 목소리로 "메르시..."와 "감사합니다"를 반복했다. <나라야마 부시코> 그랑프리 수상의 역사적 순간이다. - 아사히 신문
1954년 기누가사 테인스케 감독의 <지옥문>이, 그리고 1980년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가 칸느 영화제 그랑프리인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영화는 세계 영화계에서 저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일본 영화는 흔들리고 있었다. 구로자와 아키라로 대표되는 전쟁 세대의 감독들은 이미 일본 내에서는 외면당하고 있었다. 사실 <카게무샤>도 일본이 아닌, 미국의 제작사가 자본을 투자해 제작되었다. 관객들은 드라마의 재미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영화를 선호했다.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영화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관객의 기호를 쫓아 깊이를 잃어가는 영화들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일본 영화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전쟁 후에 대학에 진학했고 그 후에 영화를 읽힌 전후 1세대 감독이었다. 그는 데뷔작부터 신선한 발살, 힘있는 연출로 '일본 영화의 뉴 웨이브'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런 그가 20년간 준비해온 <나라야마 부시코>를 선사했을 때 관객들은 쇼맨쉽없는 당당한 정공법의 연출, 비범하고 아름다운 영상, 궁핍한 생활을 둘러싼 풍성한 자연의 묘사에 매료되었다. 일본 영화는 당연히 <나라야마 부시코>를 칸느에 출품했다. 일본 영화계는 흥분했지만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칸느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파티를 싫어한다는 것이 그 이유. 주연배우 사카모토 스미코와 제작자만이 칸느로 떠났다.
그리고 감독의 공석에도 불구하고 <나라야마 부시코>는 압도적인 지지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노장 로베르 브레송의 <돈>이 막판까지 견제를 했왔으나 <나라야마 부시코>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본영화의 승리. 일본 열도엔 다시 영화의 열풍이 불었다. 그리고 이마무라 쇼헤이는 구로자와 아키라 이후 나락으로 치닫던 일본영화를 단숨에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사람도, 짐승도, 벌레도 여기 살아 숨쉰다. 유한한 생명체들이 무조리 살아있다.
촬영 3년만에 당당히 완성!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20년동안 집념을 불태워 온 <나라야마 부시코>가 (제작:도에이, 이마무라 프로덕션) 마침내 완성되었다. 작가 후가자와 시치로의 두 작품 - 가로전설(노인을 버리는 전설)을 토대로 한 <나라야마 부시코>와 농촌의 성을 묘사한 <동북의 신무여> -을 한데 모아 모자간의 정, 생과 사의 근원을 추구한 역작이다. 볼만한 것 중 하나는 동물, 곤충의 진기한 생태 29종, 또 쌀, 콩, 무 등 21종의 곡류, 근채류가 촬영용으로 재배되어 계절감과 드라마의 긴박감을 살리는 데 일조 - 산케이 스포츠
"글쎄요. 싸구려로 포장하지는 않습니다." - <나라야마 부시코> 제작 발표회, 어떻게 연출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라야마 부시코>는 후자가와 시치로의 소설에 기초하고 있다. 이 원작은 기노시타 게이스케 감독이 영화화해 일본 국내 영화상을 휩쓸었던 작품이다. 기노시타 감독은 가부키극 양식에 맞춰 올 세트 촬영으로 추상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4반세기후, 이마무라는 새롭게 원작을 해석했다. 그의 <나라야마 부시코>는 후자가와 시치로의 원작을 넘어서, 기노시타의 영화와는 일체의 비교를 거절한 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인간의 역동적인 삶을 다룬다.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인간은 자연과 함께 존재한다. 겨울의 눈, 봄의 꽃과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계절에 맞춰 곤충과 동물들의 생태가 보여진다. 뱀은 개구리를 잡아 먹고, 개구리는 참외를 먹는 역동의 엔트로피가 영화를 다이나믹하게 끌어가고, 사랑을 나누는 인간들 곁에서 교미하는 뱀, 곤충들. 마을의 관습을 어기고 도둑질을 한 가족이 생매장되자 그 집의 수호신인 뱀이 도망친다.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인간과 자연의 삶은 씨실과 날실처럼 함께 짜여 있다. 그 두 요소가 함께 빚어내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우리는 우주를 만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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