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실화!
[D-13]은 쿠바사태가 벌어진 1962년 10월의 급박했던 13일을 그린 영화다. 제작진은 치밀한 연구와고증, 그리고 생생한 인터뷰 자료를 모아 당시의 현실을 완벽히 재현하여 영화화하는데 성공한다. 총 8,000만$의 제작비가 투여된 [D-13]은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실전을 방불케하는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다. 제작진은 필리핀 정글 속에 쿠바 미사일 기지와 美 공군본부를 다시 세웠으며 U-2 정찰기와 폭격기, 항공모함과 잠수함 등 실제 무기와 병력을 동원해 일촉즉발의 위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당시 美 정찰기가 발견했던 65피트의 소련제 핵미사일(Soviet Sandahl S4 Missiles)을 완벽히 재생해내 마치 역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미 언론과 정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화제작!
'LA타임즈' '뉴욕타임즈' '워싱턴 포스트'등 미 저명언론들은 [D-13]을 역사를 새롭게 재현한 지적이고 강렬한 드라마라고 치켜세웠고, 당시 케네디 형제의 긴박하면서 절묘한 전략묘사를 극찬했다. [D-13]은 케네디가 훌륭한 지도자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케네디 암살의 발단이 된 사건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지 W.부시 미대통령은 취임 이후 백악관에서 처음 관람하는 작품으로 [D-13]을 선택했다. 그리고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쿠바 및 러시아에서 특별 상영되는 이례적인 행사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쿠바에서는 그 당시 역사적 인물이었던 카스트로 위원장과 사건을 책임지었던 정부인사들이 동석했고, 그곳을 방문한 케빈 코스트너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공식적으로는 처음 쿠바 땅을 밟은 미국 배우가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국제 평화를 기원하는 목적으로 영화가 상영되었으며 러시아 정부 관계자 美 무기전문가의 참석아래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지구상의 핵무기 위기를 반추해보는 토론을 갖기도 하였다.
[D-13]를 둘러싼 몇가지 이야기
쿠바사태에 얽힌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론
1961년 미국 CIA와 군부 강경파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쿠바 남부에 위치한 카리브 해의 휴양지 피그만을 침공했으나 실패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1962년의 미사일 위기 당시 소련과의 전쟁을 주장하다 케네디 대통령과 충돌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피그만 침공과 쿠바사태는 1년 뒤 발생한 케네디 암살의 주요원인이었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케네디 암살을 끈질기게 조사해 온 연구가들은 케네디가 피그만 침공에 필수적인 공군력 지원을 거부한 것이 암살 동기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케네디의 암살 배후에 CIA와 반 카스트로 세력이 존재했다는 음모설은 세기를 넘긴 지금까지도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채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 있다.
JFK & RFK
미국의 Royal 가문으로 미국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케네디 가문.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셉 케네디 이후로 1명의 대통령, 3명의 대통령 후보, 3명의 상원의원, 2명의 하원의원을 배출한 미국 최고의 정치 명가로 부와 명예를 누려왔지만 후손 중 8명이 암살당하거나 사고로 사망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이후 그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로버트 F. 케네디는 6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암살당해 결국 형의 전철을 밟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케네스 오도넬, 그는 실제 인물인가?
아일랜드 혈통의 케네스 오도넬은 영화 속처럼 케네디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버드 재학 시절, 로버트 F. 케네디와 동급생으로 만나면서 케네디가와 인연을 맺었고 이후 존 F. 케네디의 상원의원 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도 참가했다. 케네디 대통령 집무실과 사무실이 직접 연결이 되어있을 정도로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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