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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평양 시민(2006, Crossing the Line)
배급사 : (주)영화사 진진
수입사 : (주)동숭아트센터 /

푸른 눈의 평양 시민 예고편

다니엘고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kpop20 07.09.21
객관의 힘.... iilloo 07.09.18
왜 둘의 이야기는 다를까? ★★★☆  zepprules 10.08.03
여전히 북한은 미지의 세계다. 과연 그들을 이해하는게 가능할까 ★★★★  ezombie 10.03.19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 ★★★★  wlgusk0 09.05.16



1962년, 38선을 넘어 북으로 망명한 네 명의 미군 병사가 있었다.
대니얼 고든 감독, 미군 망명자 사건과 그 이후를 카메라에 담다.


“새로운 삶을 찾아 건너갔어”
1962년, 미군 병사 하나가 38선을 넘어 북으로 가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 남북한의 경계를 이루는 비무장지대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군 병사들의 망명이 계속 이어지면서 도합 네 명의 미군 병사가 북한에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애정 문제에 따른 개인의 돌발적인 일탈 행위로 치부, 수십여 년 동안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채 사건을 은폐해왔다.

“난 당신들을 믿소, 진실을 찾아온 거니까”
북한에 미국인, 그것도 미군 병사가 망명해 살고 있다는 사실은 대니얼 고든 감독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곧 이 드라마틱한 소재에 매료되어 작품으로 만들고자 작업에 착수한다. 기존 작품들을 통해 북한 정부에 신임을 얻고 있었던 덕분에 불가능할 것으로만 여겨졌던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은 조금씩 진척됐고, 2004년 4월, 드디어 대니얼 고든은 북한에 살고 있는 두 명의 망명자 드레스녹과 젠킨스와 촬영을 시작했다.

정치 선전용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 배우로 변신!
네 명의 미군 병사들, 평양의 인기 스타로 떠오르다?!


“8,9부대여! 북으로 오라. 모든 것을 줄 것이다”
북한에 도착한 드레스녹 일병은 평양에 도착, 이미 월북해 있던 앱셔를 만난다. 그들은 곧 정치 선전을 위해 투입되게 되는데, 보다 효과적인 선전을 위해 북한은 두 망명자의 목소리를 통한 대남 방송 외에도 <행운아들>이라는 제목의 선전물을 발간, 망명한 미군 병사들의 즐거운 생활을 보여주는 사진과 글로 남한의 미군 병사들을 선동했다. 이듬해(1963년) 세 번째로 패리쉬가 DMZ을 건너오면서 북한의 미군 탈영병은 셋이 됐고, 65년 장교 젠킨스가 군을 이탈, 망명해 오면서 도합 네 명의 미국인이 북한에 체류하게 된다.

“난 선전 영화라고 생각 안 해, 영화에 참여해 큰 영광이었지”
이들은 정치 선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동원됐다. 특히 그들이 가장 큰 활약을 벌였던 분야는 영화였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은 영화를 통한 사상 교육과 정치 선전 등에 열을 올렸는데, 그가 제작한 영화가 바로 ‘이름 없는 영웅’이라는 첩보 시리즈물이다. 네 미군 망명자들은 각자 이 영화에서 서양인 악당 역으로 출연했는데 시리즈의 인기가 올라가자 네 미군 망명자들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망명 당시 평양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들을 주시하는 북한 사람들의 시선에 괴리감을 느꼈던 망명자들은 영화 배우로 활동하고 인기 스타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평양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북한 사회에 적응해나갔다.

드레스녹 vs 젠킨스 사이의 엇갈린 진술,
과연 진실을 말하는 이는 누구인가?


“북한이 좋은 게 월급도 똑같이 줘, 배급량도 늘어나고”
2005년, 북에는 네 명의 미군 망명자 중 이미 세상을 떠난 두 명(앱셔, 패리쉬)을 제외한 드레스녹과 젠킨스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젠킨스가 부인을 따라 딸들과 일본으로 재망명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세상은 다시 한 번 들썩인다. 일본에 도착한 젠킨스는 자신이 북한에서 억압을 겪었으며 북한 정부가 자신의 딸들을 간첩으로 양성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은 대대적으로 전세계에 보도되었고, 일본인 납치 문제와 결부돼 핫이슈로 부상했다. 젠킨스의 발언에 대해 드레스녹은 격한 반응을 보이며 젠킨스가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북한군에 항복하더니 이젠 다시 미국에게 그러네”
평양에서 자신과 젠킨스는 편안한 삶을 살았으며 젠킨스는 북한 정부에게 고초를 당한 적이없다고 단언한 드레스녹과 북한에서의 삶이 지옥 같았다고 언급하며 북한에 간 것이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고백한 젠킨스, 과연 둘 중 진실을 말하고 있는 이는 누구일까? 대니얼 고든은 이 사안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양쪽의 입장을 카메라에 담아 관객들에게 선택의 몫으로 남기고 있을 뿐이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만들어낸 위태로운 행복,
행복의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살아가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야”
드레스녹은 평양에서의 삶이 지금껏 살아온 날들 중에 가장 행복하며, 그 무엇을 준다 해도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단언한다. 평양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가며 일용할 양식과 의복, 주택을 배급 받고, 낚시와 볼링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이 그에게는 최고의 가치이다. 북한에 왔기 때문에 영화 배우가 될 수도 있었고,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 교육시킬 수도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북으로 떠나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가 살았다면 이 모든 일들이 가능했을까? 드레스녹은 절대 불가능했을 거라 자신한다.

“조선 사람들은 굶어죽었지만, 나는 매일 쌀을 배급 받았어”
어떠한 정치적인 목적도 아닌, 단순히 개인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38선을 넘어간 미군 병사 드레스녹, 그러나 그는 북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일상의 행복들을 느낄 수 있는, 자신이 평생 원했던 삶 말이다. 그가 북한의 체제에 대해 찬성하고 있는지, 반대하고 있는지 그것은 확실치 않다. 다만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꾸려나가자는 주체사상의 의미를 좋아하며, 매달 적당량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배급 시스템에 만족해 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에 대해 알고 있냐는 질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나에게는 꼬박꼬박 쌀이 배급됐고 나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그의 대답에서 북한 사회 속 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반미국가 북한을 택한 미국인, 그리고 그곳에서 수십여 년째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상징은 북한이 절대 놓칠 수 없는 선전 도구일 것이다. 그리고 북한 체제가 그를 지켜주는 이상, 그는 평양을 지상의 낙원이요, 고향이라 믿고 살아갈 것이다.

“위대한 수령께선 늘 우리를 각별히 염려해주셨어. 죽는 날까지 나라에서 지켜줄 거야”
영화의 라스트씬, 카메라는 넓은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드레스녹의 뒷모습을 비춘다. 광장 한 쪽의 확성기에서는 “북한은 완벽한 지상 낙원입니다…공산주의 사회 아래에선 진정한 행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선전 멘트가 흘러나온다.(영화상에서는 크게 들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어쩐지 쓸쓸하고, 허망한 느낌을 준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만, 그것의 배후에 정치적인 목적과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드레스녹과 이제는 과장된 허풍으로만 들리는 선전 멘트는 묘한 긴장감과 함께 관객들에게 거대 이데올로기 속에서 개인이 찾을 수 있는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2001년 기획부터 2006년 완성까지, 육 년의 세월이 걸렸다!
빅 프로젝트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의 대장정에 대한 짧은 일화들


대니얼 고든 감독,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기획하다
2001년 <천리마 축구단>을 준비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 중이던 대니얼 고든 감독은 처음으로 북한에 미군 망명자들이 살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알게 된다. 북한 당국에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한 대니얼 고든 감독, 그러나 북한 당국은 망명자들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칠전팔기 끝에 영화 제작 허가를 받고, 촬영에 돌입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작진을 신임하기 시작한 북한 당국은 결국 제작진과 작업 파트너들의 계속된 요청에 못 이겨 촬영을 허락한다. 그리고 드디어 2004년 대니얼 고든 감독은 네 명의 미군 망명자 중 당시 북한에 생존해 있던 두 명의 망명자, 드레스녹과 젠킨스를 만나 촬영을 시작한다.

2005년, 갑작스러운 젠킨스의 일본행으로 난항을 겪다
드레스녹과 젠킨스의 첫 인터뷰를 순조롭게 마친 제작진, 그러나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젠킨스는 부인을 따라 일본의 미군에 투항하기에 이르고, 기존과는 상반된 진술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사건을 통해 북한 정부는 민감하게 촬영에 대해 반응했고, 그래서 이후로는 적은 분량의 촬영 밖에 진행할 수 없었다.

DMZ 을 카메라에 담는데 성공하다
제작진들은 북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에 따라 접근이 제한되어 있는 DMZ 지역에서 촬영을 하는데 성공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라고 언급한 바 있고,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되어 있는 군사 지역 DMZ에서의 촬영을 통해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은 보다 다양한 영상을 추가할 수 있었다.



(총 24명 참여)
wjswoghd
담담하게 바라보네요     
2007-09-15 23:41
aegi1004
글쎄요 그냥 재미로만들수없는 소재이긴하지만 너무재미가없었어요     
2007-09-15 00:16
pshinhwa88
 재밌었어요 볼만했음 ㅋㅋ     
2007-09-09 14:01
ann33
새로운 발견!     
2007-09-01 15:57
egg2
남북 정상회담을 얼마 앞두고..     
2007-08-26 01:57
remon2053
너무 좋은 다큐멘터리..     
2007-08-25 12:47
ldk209
사람이 살고 있는 북한..     
2007-08-24 23:01
syws1
다큐멘타리의 한계...     
2007-08-23 14:06
koru8526
서양인들의 눈으로본 북한이라..     
2007-08-23 09:41
h31614
어떨지..     
2007-08-1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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