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적인 체위와 내용전개로 빨리 감기 버튼을 적극활용! 단, 십여 분이면 에로비디오 한편 섭렵했던 그 시절! 숱한 사내들은 이 같은 악순환 앞에서 고개를 떨군 채 어쩔 수 없이 방바닥에 나뒹구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움켜쥐며 치솟아 오르는 분을 삭여야만 했더랬다. 이러한 에로비디오 업계의 지리멸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홀연히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봉.만.대 감독이다.
<이천년>, <모모>, <아파바> 등 다양한 체위 넘실거리는 감각적 영상으로 에로비디오 업계 일약 스타로 부상한 봉 감독이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TV에로영화 <동상이몽> 이후 간만에 돌아왔다. 참으로 반갑다. 한 때 먹고 싸는 일 외에 나머지 시간을 죄다 떡무비에 할애했던 본 필자로서는 정말 그렇다. 달리 말해, 좀 의외이긴 하지만 공포영화 한 편을 들고 온 봉만대 감독의 <신데렐라>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했다는 말이다.
여하간, 이러한 마음을 품고 영화를 마주했는데...
(스포일러로 간주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이 지점에서 알아서들 스탭 밟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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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신데렐라> 함량미달의 공포영화로 판명됐다. 기대에 못 미쳐다는 말씀!
<신데렐라>는 만인의 시선을 휘어잡기에 더 없이 적합한, 여유가 있든 없든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시대의 화두 ‘성형’을 소재로 한 영화다. 하나, 성형중독에 빠진 현대인들을 향한 경고장스런 메시지를 품은 그런 부류의 영화 절대 아님이다. 영화가 정작 말하고자 하는 바는 뒤틀린 모성애가 잉태한 비극이다. 때문에 기왕의 공포물에 비해 <신데렐라>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이 엇나간 모녀간의 관계에 무게를 실은 드라마에 공을 들인다. 문제는 이들 모녀 못지 않게 드라마가 또한 심하게 뒤틀려 있다는 거다. 뭐하자는 플레이인지 잘 와 닿지 않는다. 간단한 이야기를 너무 꽈배기스럽게 엮어 놓은 탓이다. 각본이 부실한 게다. 또한 봉만대 감독은 내밀한 정서로 촘촘히 일궈진 서사보다는 발랄유쾌한 영상과 대사로 얼개가 이뤄진 영화에서 예의 그의 장기가 더욱 빛나는 스타일이다.
공포영화가 원인과 결과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며 치밀한 전개와 논리로 무장될 필요는 없지만, <신데렐라>는 애써 그러한 점을 영화 내내 설명조로 강조하니 그 허점이 눈에 밟힐 수밖에 없음이다. 물론, 공포영화의 최고 미덕은 끔찍한 악몽과 다름없는 살 떨리는 소름끼침과 무서움이다. 그것만 제대로 구축해도 웬만한 허점은 충분히 커버된다. 그런데, 당 영화 그리 무섭지도 않다.
관절 꺾기를 시연하며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사다코의 후배들이 출몰하는 등 기존 호러영화의 관습들이 재탕돼 스크린에 부유할 뿐이다. 봉 감독의 기존 영화에서 마주할 수 있던 톡톡 튀는 영화적 상상력이 <신데렐라>에선 부재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장화, 홍련>을 떠올리게 하는 점 역시 불편하게 기능한다. <신데렐라>는 봉만대 감독의 영화로서도 공포물로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덧붙여...
앞서 언급했듯, 간단한 이야기를 배배꼬이게 한 후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긴가민가 서사가 언제부턴가 한국호러영화의 대세가 된 듯한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공포를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긴 하지만 그런 경우 사실 별로 못봤다. 이거!....지겹다.
동시에 공포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무언가를 들춰내면 주로 무거운 정서의 슬픔과 한으로 점철된 비극이 주로 자리하고 있는데...이거! 역시..... 지겹다. 감독의 자의식이 충만해서 그런지 기획영화로서 하나의 관성이 된 건지 모르겠다만 이제는 좀 다른 스타일의 공포영화를 마주하고 싶다. 간단명료하고 슬픈 정조를 걷어낸 발랄한 호러영화! 이런 공포가 보고 싶다. 정말로 보고 싶다.
2006년 8월 11일 금요일 | 글: 서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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