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굴드의 동명원작소설을 90분 남짓의 간략한 영화로 각색한 <점퍼>는 소년의 성장이라는 원작의 뼈대에서 출발하지만 그 내면적 성장담에 많은 힘을 기울이기보단 오락적 취향의 묘사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유년에서 성년으로 자라난 데이빗(헤이든 크리스텐슨)은 자신의 능력을 통해 풍족하고도 여유로운 삶을 향락적으로 즐기고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인생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비범한 영웅이 되어 정체성의 혼란을 머금어야 했던 능력자들의 공익적 비애를 노출하던 할리우드의 영웅담과 다른 계보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나 자본주의의 시대에서 개인의 능력이 만들어낸 부가가치를 마음껏 향유하는 데이빗의 모습은 노동과 자본의 상관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무엇보다도 <점퍼>에서 두드러지는 건 날렵한 액션이다. 간략한 회고를 곁들인 데이빗의 자기 소개가 끝나면 본격적인 영화의 본론이 시작된다. 중세부터 점퍼들을 사냥해온 팔라딘의 수장인 롤랜드(사무엘 L. 잭슨)가 등장해 데이빗을 공격하는 순간, 여유로운 능력자의 삶은 위태로운 도망자의 위기로 변질된다. 그 과정에서 과거 흠모했던 밀리(레이첼 빌슨)를 재회시키며 로맨스 라인을 부각시키기도 하지만 오히려 탁월한 능력을 지닌 또 다른 점퍼인 그리핀(제이미 벨)을 통해 동선을 가속화시키는데 주력한다. 마치 인간의 움직임을 네트워크화 시킨듯한 순간이동의 움직임은 공간을 전송망처럼 활용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이색적인 속도감을 부여한다. –실제로 점퍼들의 이동경로를 점퍼 사이트라 부르며 동시에 그들의 이동은 점퍼홀이라는 경로의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또한 점퍼와 팔라딘이란 대립군은 선과 악의 이분법적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서 개별적인 캐릭터 집단으로서 매력을 선사하기도 한다.
성장담을 담은 원작의 플롯보단 액션 시퀀스의 연출에 치중한 <점퍼>는 오락적 취향을 존중한 롤러코스터식 블록버스터를 지향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결국 <점퍼>를 위한 감상의 전제 역시 그 지점일 때 합당한 대우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점퍼>는 순간이동이란 신소재를 통한 동기 부여로 완성된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물로서 손색이 없지만 한편으론 그것이 내포했던 새로운 함의적 가능성을 장르적 목적을 위해 묵살시키기 위한 선택의 강요처럼 보인다. 결국 <점퍼>는 장르적 궤도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서, 혹은 안착하기 위해서 주제 의식을 간소화시킨 소재주의적 편이성을 추구한 안이한 근성에 갇혀있다. 한편, <빌리 엘리어트>로부터 차근차근 성장한 제이미 벨의 연기는 나름대로 인상적이다.
2008년 2월 13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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