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진화형 프랜차이즈의 본격 추억팔이 (오락성 5 작품성 5)
아메리칸 파이 : 19금 동창회 | 2012년 8월 9일 목요일 | 양현주 이메일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가운 순간이 있다. 세월의 무게에도 변하지 않은 모습을 발견할 때다. 시리즈 세 번째 편 <아메리칸 웨딩> 이후 9년 만에 돌아온 <아메리칸 파이: 19금 동창회>는 변함없는 화장실 코미디를 지향한다. 다만 그동안 할리우드 코미디 지형 또한 변화무쌍하게 진화해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행오버> 시리즈나 <듀 데이트>류 영화에서 엽기 코미디에 단련이 된 터라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의 사건 사고들은 귀여운 수준에 머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리즈의 진짜 키워드는 망나니 코미디보다는 추억 곱씹기에 있다.

총각딱지 떼기에 혈안이 되어있던 십대 소년들도 어엿한 어른이 됐다. 갓 구운 파이에 대고 욕정을 해소하던 짐(제이슨 빅스)은 미셸(알리슨 한나간)과 어엿한 가정을 꾸린 애 아빠다. 풋볼팀 킹카 오즈(크리스 클라인)는 학창시절과 마찬가지로 인기 좋은 스포츠 뉴스 앵커지만, 역시 여전히 빛 좋은 개살구다. 케빈(토마스 이안 니콜라스)은 첫사랑 비키와 결별 후 새로운 사랑을 만나 결혼에 골인했고, 애늙은이 핀치(에디 케이 토마스)와 트러블 메이커 스티플러(숀 윌리엄 스코트)도 밥벌이에 올인한다. 어느 순간 연락이 뜸해진 파이 5인방이 십년 만에 동창회를 위해 고향으로 향한다.

총각 딱지 떼기가 일생일대의 과제였던 십대 소년들은 이제 섹스도 심드렁한 중년이 됐다. 더 이상 혈기 왕성한 청춘이 아니라 해도 19금 화장실 코미디는 여전히 시리즈의 무기다. 하지만 단지 망나니급 화장실 코미디가 주무기였다면 이 시리즈가 네 번째 속편까지 명맥을 유지하지 못 했을 거다.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의 묘미는 주인공들과 함께 성장과 진화를 거듭해왔다는 것이다. 섹스에 집착하던 십대 성장 코미디로 시작해 대학생 청춘물, 웨딩 스캔들을 매개로 한 로맨틱 코미디로 이어졌다. 매 시리즈마다 때와 장소에 맞게 장르를 갈아탄 셈이다. 그리고 <아메리칸 파이> 네 번째 시리즈가 선택한 것은 추억여행이다. 마침 <건축학 개론>, 드라마 <응답하라 1997>까지 90년대 추억팔이가 트렌드가 된 국내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십대소녀가 스파이스 걸즈의 '워너비'를 클래식 팝이라 명명하는 시점에서 짐이 발끈하는 장면은 해괴망측한 에피소드보다 더 와 닿는 부분이다.

비교적 얌전한 수위의 이번 시리즈 연출은 <해롤드와 쿠마> 시리즈를 탄생시킨 존 허위츠, 헤이든 쉬로스버그 콤비가 맡았다. 이들의 관심사는 추억하고 회상하면서 성공적인 할리우드 19금 코미디물 시리즈에 걸맞은 엔딩을 찾아가는 데 있다. 이번 영화가 제공하는 재미는 그만큼 시리즈에 대한 충성도와 맞닿아있다. 앞뒤 안 가리고 사고치는 스티플러의 기행과 의뭉스러운 핀치를 볼 때 웃음보다 반가움이 앞선다. 파이를 앞에 두고 어색한 성교육을 펼쳤던 짐과 아버지를 기억한다면, 반대 입장에서 짐이 홀아비 신세 아버지에게 연애상담을 해주는 장면에서 미소를 머금게 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기억하는 만큼 즐겁다. 다른 말로 하면 전성기 시절을 되새김질하는 것 외에는 새로운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시리즈의 명성에 비해 점잖은 마무리다.

2012년 8월 9일 목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반갑다 친구야, 키워드는 추억팔이
-웃음 포인트는 십년 만에 완성된 스피플러의 복수
-추억팔이의 나쁜 예
-십대시절 무용담만 읊어대니 영락없는 중년답다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