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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수다회] 막상 열어보니 도덕적인? 넷플릭스 <모럴센스>
2022년 2월 28일 월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목요수다회]는 무비스트 기자들이 같은 영화를 보고 한 자리에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관람 후 나눈 대화인 만큼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돼 있으니 관람 전 독자는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BDSM(B: Bondage(구속), D: Discipline(훈육), S: Sadism(가학), M: Masochism(피학))이라는 소재
이금용: 사실 BDSM이 소재로만 쓰이고 통상적인 로맨틱 코미디처럼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수위는 높지 않지만 제 예상보다는 플레이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더라고요. (웃음)

박은영: 저는 공중파 드라마가 아닌 넷플릭스 작품인 만큼 수위가 더 높지 않을까 예상했어요. 그런데 배우 서현이 주인공이라는 걸 보고 노출은 없겠다 싶었죠. (웃음) 결과적으론 제가 예상했던 딱 그 정도의 수위였어요. 자세한 플레이 장면은 나오지 않고 그마저도 섭 위주로 촬영됐거든요.

박꽃: 사실 작품을 보기 전에 BDSM을 소재 정도로만 다뤘다는 내용의 리뷰를 먼저 봤어요. 영화를 보니 리뷰에 공감이 갔죠. 사실 이런 장르에선 야릇함을 좀 바라잖아요. (웃음) 그런데 <모럴센스>엔 플레이 장면이 여럿 나오긴 하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던 거 같아요. ‘BDSM이란 이런 것이다’, ‘플레이에는 이런 종류가 있다’라고 알려주는 설명서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금용: 영화를 본 사람 중에는 BDSM을 잘 아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 영화로 처음 접하거나 이전엔 잘 몰랐던 사람도 있을 텐데요. 개념을 얼마나 아는지에 따라 감상이 크게 달라질 거 같아요.

박은영: 극 초반에 돔(지배하는 사람), 섭(지배당하는 사람), 디엣(돔-섭 관계) 같은 기본적인 개념을 내레이션으로 설명해주는데 굉장히 빠르게 지나가서 멈추고 보지 않으면 자세히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저는 몇 번이나 끊어가면서 봤거든요. 그래서인지 BDSM을 정확히 알기를 바란다는 느낌은 잘 못 받았어요. 민감한 소재라 그런 게 아닐까 해요.

박꽃: 말씀 들으니 BDSM의 개념이 아예 낯선 사람은 잘 모르고 지나갈 수 있겠다 싶어요. 제 경우엔 BDSM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메모하면서 영화를 봐서 요약정리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더 개념설명서라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아요. 결론은 BDSM이라는 소재의 매력은 잘 부각되지 못했다는 인상이에요.


원작과는 다른 방향성
이금용: 유명한 동명 웹툰이 원작인데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인 만큼 영화화된다는 소식에서부터 화제가 됐죠. 그런데 커밍아웃을 비롯해 소수자들이 실제로 겪을 법한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룬 원작에 비해 영화에선 그런 지점이 좀 약하게 그려지는 면이 있어요. 실제로 BDSM 커뮤니티 내에선 반응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들었어요. 겉핥기식이라고요.

박꽃: 당사자들은 영화가 겉핥기식으로 만들어졌다고 불만을 가질 수 있는데, 영화가 원작과 꼭 똑같이 가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이 작품이 BDSM을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박은영: 그래도 소재도 참신하고 재밌는 로맨틱 코미디 작품이에요. 내용이 특별하지도 않고 등장인물도 많지 않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간다고 느꼈어요.

박꽃: 심심하게 볼 만한(?) 15세 관람가 로코처럼 느껴졌어요. (웃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을 만큼의 수위인지는 의문이거든요.

박은영: 아마도 소재 자체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요.

박꽃: 그렇겠죠. 아무래도 BDSM 같은 소재가 청소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으니까요.

이금용: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의 경우도 드라마 속의 폭력적인 장면들이 실제 학교폭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있었죠. 넷플릭스 영화의 특성상 미성년자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모럴센스>는 BDSM 수위가 생각보다 높지 않아서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어요.

박꽃: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가 미디어오늘에서 소재에 비해 내용은 그렇게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공감했어요. 제가 보기에도 영화는 자극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꽤 도덕적인 내용이었거든요. (웃음)


결론은 다양성 존중
박은영: 성향이라는 건 취향의 문제이고, 결국은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메시지로 이어지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이런 소재와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전엔 미디어가 다양성을 다룰 때 대상이 성소수자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한발짝 더 나아간 거죠. 어떻게 보면 더 많이 다뤄줘야 한다고 봐요. 하지만 메시지를 너무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세련된 연출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박꽃: 연출을 맡은 박현진 감독이 영화계 다양성과 관련한 이슈에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는 분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사실을 미리 알고 영화를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메시지가 너무 예상 그대로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웃음) 소재는 BDSM이지만 결국은 ‘다름을 인정하자’는 메시지가 너무 부각된 느낌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도덕 교과서에서도 배우는 얘기잖아요. (웃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이게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감독님이 이렇게 연출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박꽃: 그런데 ‘정지후’(이준영)의 전 여자친구(김보라)가 독특한 취향을 가진 남자친구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는 듯 행동하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만약에 ‘지후’가 일방적으로 플레이를 강요했다면 상처가 될 수 있지만, 이미 ‘지후’의 성적 취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가 성향자임을 고백했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는 게 설득이 안 되더라고요. 이후에도 일방적으로 집을 찾아와 “넌 나에게 상처를 줬어”하는 식으로 행패(?)를 부리는데, 자기 가치관과 맞지 않아서 헤어졌으면 그만이지 상대에게 그렇게까지 행동할 만한 일인지 갸웃했어요.

박은영: 저는 두 사람이 그렇게까지 본격적인 플레이를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아무래도 전 여자친구 입장에서 ‘내 연인이 나와 다른 성향이고, 피학적인 걸 즐기는데 사랑만으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겠죠. 아무래도 극적인 캐릭터를 만들다 보니 너무 ‘급발진’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이해됐어요.

이금용: 저는 전여자친구가 필요에 의해서 넣은 캐릭터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영화 대사에 ‘디엣와 연애는 다르다’는 말이 나오듯이 실제로 성향자들이 연애와 플레이를 별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리고 만약 전 여친이 너무 쿨해서 연인이 성향이 있다는 걸 밝혔을 때 ‘그래. 우리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겠네.’ 하고 끝내면 스토리 진척이 안 되기도 할 거고요. (웃음) 그래서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설득력을 주기엔 다소 부족하더라도 전 여친 같은 캐릭터를 넣을 수밖에 없었겠다 싶더라고요.

박은영: 얘기를 듣고 나니 ‘지후’가 전 여친에게 심한 모욕과 수모를 당했기 때문에 자기 성향으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부분이 더 공감을 일으키고 한편으론 ‘지우’(서현)의 동정심을 자극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되네요.

이금용: 그런 맥락에서 강아지 카페 사장(이엘)도 필요해서 넣은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성향자들이 파트너를 구할 때 비대면 방식으로 컨택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 때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캐릭터가 아닐까 싶어요.


아이돌 출신 배우 서현, 이준영의 캐스팅
박은영: 서현 배우는 똑 부러지는 커리어 우먼 ‘지우’ 역에 잘 어울렸고, ‘지후’ 역의 이준영 배우와도 케미가 좋았던 거 같아요. 두 사람 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해서 그림이 잘 나온다고 할까. (웃음) 개인적으로는 망가지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온 이준영 배우가 연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꽃: 서현이 ‘냉미인’ 타입이잖아요. 예를 들어 같은 소녀시대 출신인 배우 윤아가 이 역할을 연기한다면 연기력과 별개로 그 마스크가 주는 차가운 느낌이 없었을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캐스팅은 적절했다고 봐요. 상대 배우인 이준영도 자칫 비호감으로 보일 수 있는 캐릭터를 귀엽고 순수한 ‘멍뭉미' 느낌으로 선하게 보여줬고요. 그리고 이준영 배우는 리액션이 좋은 배우더라고요. 서현이 욕을 하면서 폭발하는 장면에서 이준영의 리액션이 웃겨요. 코믹한 연기를 잘 살려주는 리액션 감이 좋다고 할까.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지후’가 강아지 흉내를 내면서 사료처럼 생긴 과자를 먹는 장면인데 정말 잘 먹더라고요. 개 연기를 참 잘한다 싶었죠. (웃음)

이금용: 저도 동감해요. 특히 맞으면서 느끼는 표정을 잘 짓더라고요. (웃음) 이준영이 연기를 기대 이상으로 해서 찾아봤더니 아이돌그룹 유키스 출신이더라고요. 영화는 첫 주연작이지만 이미 드라마 쪽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어요. 캐스팅은 좋지만 ‘황 팀장’(서현우)을 비롯해서 캐릭터들 자체는 꽤 밋밋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뻔하고 납작한 캐릭터
박은영: 서현우 배우가 연기도 잘하고 친근한 이미지가 있어서 좋아하는데, ‘황 팀장’은 너무 뻔하고 별로였어요. (웃음) ‘지우’가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 받는 걸 표현하기 위해 ‘황 팀장’ 캐릭터를 기능적으로 사용한 점이요. 요즘 누가 저렇게까지 하나 싶어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한 인물의 좋은 면을 부각하기 위해 상대를 일방적으로 희화하는 방식은 제가 평소 좋아하지 않아 더욱 그렇게 느껴졌어요.

박꽃: 현실에서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는 건 맞지만 그걸 보여주기 위해 납작한 캐릭터에게 뻔한 대사를 시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애교 있게 말해야 한다”거나 “여자는 과일을 잘 깎아야 시집을 잘 간다”는 표현은 의중은 알겠지만 지나치게 올드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발암’캐릭터에 대한 치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유도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에서 많은 분들이 공유가 맡은 역할에 공감했다고 하는데요. 김도영 감독과 인터뷰할 때 해당 캐릭터 연구를 많이 한 게 느껴졌거든요. 통속적인 인식 속에서의 마냥 철없는 남편이 아니라, 아내를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노력하는 선한 남편으로 묘사되는데 그럼에도 어떤 한계가 있다고 묘사되잖아요. 그것처럼 세련된 방식의 캐릭터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박은영: <82년생 김지영>에선 공유의 비중이 높고 ‘황 팀장’은 조연이니 그 차이도 있지 않을까요. (웃음)

박꽃: 그래도 ‘황 팀장’이 (성평등이라는) 메인 메시지와 직결되는데 이 정도로 막무가내인 캐릭터로 나오면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죠. (웃음) 문제는 ‘지우’가 매번 ‘황 팀장’에게 대쪽 같은 선비처럼 맞받아친다는 거예요. 취지는 알겠지만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지우’도 덩달아서 납작하고 평평한 인물로 보여요.

이금용: 저도 ‘지우’가 ‘황팀장’의 구시대적인 발언에 반박할 때마다 몰입이 와장창 깨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웃음) 어느 정도 판타지를 다루는 영화이긴 하지만 너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많은 분이 이런 장면에서 영화에 대한 호감이 떨어질 거 같아요.

박은영: 그것과 별개로, <모럴센스>뿐만 아니라 많은 콘텐츠가 너무 중년 남성에 대해 편향적으로 그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남의 말은 신경도 안 쓰는 ‘꼰대’처럼 그려진다는 거죠. 그런 방향성은 지양해야 한다고 봐요.

박꽃: 저는 성별을 떠나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동안 대체로 중년 남성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보니 매체에서는 꼰대 중년 남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 거고요. 여자도 높은 위치에 오르면 비슷한 양태를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남자라고 유세 떠냐”나 “남자들보다 내가 일도 더 잘하는데” 같은 ‘지우’의 대사가 마음에 살짝 걸리더라고요.

박은영: 여러분은 실제로 여자라서 차별 받았다는 걸 체감한 적이 있나요?

이금용: 제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 IT나 금융권 같이 남성 비율이 높은 회사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승진 누락 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거죠. 그래서 ‘지우’ 캐릭터 자체는 현실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봐요. 다만 너무 진부한 방식으로 묘사된 것뿐, 해당 이슈 자체는 현안이라고 생각해요.

박꽃: 결론적으로는 캐릭터를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려주길 바란다… 이런 뜻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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