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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장풍대작전' 촬영 현장 공개
마루치 아라치는 세상을 구한다 | 2003년 8월 9일 토요일 | 임지은 이메일

집채만한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로 걸음을 옮기는 할머니. 철근을 옮기는 건설현장 노동자, 고층빌딩에 매달려 유리를 닦는 인부들. <아라한-장풍대작전> 가라사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생활도인이라 한단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를 갈고 닦아 막강한 내공을 소유하게 된 이들 덕분에 세상의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 상상부터 벌써 발칙하고 즐겁다. 올 4월 크랭크인했던 <아라한-장풍대작전>이 어제 촬영현장을 공개했다.

이날 촬영은 김포의 R.O.K 세트장에서 진행됐다. 돌기둥과 탑들, 그리고 제단이 어우러진 이 장소는 극중 용산에 위치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얼핏 보면 진짜 돌 같은 바위들의 실제 소재는 발포우레탄. 질감 상으로 돌과 유사할 뿐 아니라 폭파장면에서도 배우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 더없이 적합한 소재라는 게 제작진의 변이다. 미술과 의상은 <화산고>, <지구를 지켜라>에서 이미 현실 속의 비현실을 탁월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바 있는 장근영, 김경희씨가 맡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던가. 촬영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됐다. 주연배우 류승범과 윤소이는 각각 청바지와 흰 트레이닝복으로 가볍게 차려입고 정두홍 무술감독과 미리 합을 맞춰본다. 미리 혹독한 훈련을 거친 탓인지 류승범은 '전설의 마루치'라는 설정이 어색하지 않고, 가냘픈 팔로 칼을 휘두르는 윤소이의 몸놀림도 가벼워 보인다. 이날의 촬영분은 상환(류승범), 의진(윤소이), 흑운(정두홍)이 벌이는 최후의 결전씬. 도의 최고경지인 '아라한'이 되기 위해 힘겨운 수련을 거친 상환과 의진은 대적할 자 없는 무공의 소유자인 '절대악' 흑운에 맞서기 위해 칼을 뽑는다. 물론 새파란 두 젊은이들이 내공 자체가 다른 흑운을 맞아 고전하는 건 당연지사.

극중 설정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류승범과 윤소이는 기합을 넣으며 호기롭게 정두홍 감독에게 덤벼들어 보지만, 아무래도 류승완 감독의 마음에는 차지 않는 모양. 같은 장면을 다섯 번, 열 번 되풀이해도 쉽게 O. K가 떨어지지 않는다. 류승범의 얼굴에는 땀이 맺혔고, 윤소이의 희디 흰 트레이닝복은 분장용 핏자국과 흙먼지로 금세 더러워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디 액션!"을 외치고 나면 금세 펄펄 살아나는 두 배우를 보면서 절로 중얼거리게 되는 말. 젊긴 젊구나. 이날은 류승범의 생일 전날이기도 해서 촬영을 접고 난 스탭들은 일제히 촛불을 켠 생일 케익 앞으로 모여들었다. 케익을 받고 수줍은 듯 웃는 젊은 배우의 얼굴이 참 풋풋해 보였다. 거기 덧붙여 슬쩍 흘려보는 비밀(?) 한 가지. 실제로 본 윤소이의 얼굴은 주먹 반 만하더라. 팔다리? 보통 사람 두 배 길이다.

현재 가장 촉망받는 감독과 배우로 손꼽히는 류승완, 승범 형제가 호흡을 맞추고, 여기에 June CF에서 보여준 상큼한 미소로 일약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윤소이가 가세해 촬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아라한-장풍대작전>. 현재 전체 촬영분 중 약 70퍼센트 정도가 진행된 상태다. 9월경 촬영이 완료되긴 하지만 워낙 후반 작업이 많은 탓에 관객들은 내년 봄 이후가 되어야 영화를 관람할 수 있을 듯. 촬영 후에는 류승완 감독과 네 명의 배우들―류승범, 윤소이, 안성기, 정두홍―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이 마련되었다. 질문과 답변들을 아래 간추려 소개한다.

Q: 감독과 주연배우, 그러니까 류승완, 승범 형제에게 질문. <죽거나... >이후 다시 만나 작업한 소감은?
류승완 감독: 작업이야 계속 같이 했다. 다만 주연으로 만나게 된 건 처음인 듯. 류승범의 경우 그동안 좋은 연출자들을 많이 만난 탓인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있었다. 사실 전에는 낄낄대면서 장난하는, 촬영 자체에 그런 느낌도 있었지만 이젠 보다 연출자와 배우로서의 자각이 확실해졌다.
류승범: 우선 형이니 마음은 좀더 편하다. 그러나 예전처럼 웃으면서 할 수 만은 없다는 것도 느낀다. 서로 힘도 많이 들고, 그만큼 발전하리라는 희망도 생긴다. 지금은 고되지만 밝은 미래를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다(웃음).

Q: 정두홍에게 질문. 배우로 출연하는 동시에 무술감독을 맡고 있는데, 이전에 작업했던 영화와 이번 작품의 액션은 어떤 면에서 다른지.
정두홍: 이전에는 리얼리티를 강조했었다. 사실적이고, 그만큼 잔인하면서 폭력성도 있고. 그러나 <아라한 장풍대작전> 경우에는 율동과 리듬이 존재한다. 뮤지컬적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전작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고민을 한 영화고, 그만큼 색다르고 볼만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Q: 윤소이에게는 영화 데뷔작이다. 아까 손에 붙인 무수한 밴드를 보니 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가장 힘들었던 점이라면?
윤소이: 역시 고난도의 액션 연기를 해야한다는 점. 4달 간 검술과 와이어 액션 등을 배웠는데, 현장에서 뿐 아니라 배우는 동안에도 자잘하게 다친 적이 많았다. ("구체적으로?"라는 질문에) 와이어 액션 하다 발목 인대도 늘어나고, 다찌마리 하다 얼굴도 맞고... (웃음)

Q: 안성기씨에 질문. 액션 장면이 있는가? <실미도>와 병행하고 있는데 무리는 없는가?
안성기: 액션이 매우 집약적이라, 또 워낙 체력이 잘 따라주기 때문에(웃음) 별로 어렵지 않다. 말대로 <실미도>와 동시에 출연하고 있는데 정말 이렇게 일정이 딱 겹쳐보긴 처음이다. 두 영화 모두 포기하기 싫을 정도로 좋아서 욕심을 좀 냈다. 초반에 <실미도>를 먼저 시작한 후 <아라한...>에 합류해 곧바로 대부분의 씬을 거의 다 찍었다.

Q: 류승완이 보는 류승범, 류승범이 보는 류승완, 각각 어떤 배우와 연출자인가? 계속 함께 작업할 생각인가?
류승범: 류승완은 좋은 감독이다. 현장에서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적이고 욕심도 많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언제든 함께 하고 싶은 게 내 욕심이다. 그리고 동생이 아니라 100퍼센트 배우로서 하는 말인데 영화를 하면서, 감독을 하면서 포기해야 하는 지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 지점에 다다르면 소리지르고 욕하고 성질을 많이 낸다. (좌중 웃음)
류승완: 류승범은 괜찮은 배우다. O. K만 해준다면 언제든 같이 작업하고 싶다. 그리고 내게는 "배우로서 류승범이 갖춰줬으면 하는 것"에 대한 희망 같은 게 있었다. 예를 들어 안성기 선배님의 현장에서의 성실함, 스탭과의 친화력 같은 것.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류승범이 그런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순발력이 있고, 스스로를 컨트롤할 줄 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류승범, 윤소이 모두 훌륭했고, OK 사인이 날 때까지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주연배우라고 해서 특별대우 받을 수 없다는 확고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서 감독으로서 참 고마웠고.

Q: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전작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류승완: 이전에는 이를테면 땅에 붙은 이야기였다. <아라한...> 경우에는 전작들에서 다뤄왔던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리얼리티에 무협의 요소를 접목한 거고. 말하자면 판타지가 가미된 거다. 이전에는 장르 영화를 만들면서 장르를 비틀기를 즐겼는데 이번에는 최대한 장르 공식에 충실히 가려 하고 있다.

Q: 주성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많은데, 혹시 주성치를 벤치마킹 한 건?
류승완: 주성치를 무척 좋아하기는 한다. 전작들까지는 사실 명백히 벤치마킹하는 대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더 큰 개념으로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서양의 수퍼히어로와는 다르게 인물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게 동양 무협물의 특징이다. 나약한 인물이 스승을 만나 고된 훈련을 거친 후에 다른 사람이 되는 거다. 무대를 도시로 하고 있다는 점이라든지, 질문한 대로 <소림축구> 같은 영화와 닮아보일 수도 있으나 디테일한 것보다는 정서상 어떤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Q: 기획의도는?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나?
류승완: 일단 어렸을 때부터 류승범한테 '마루치 아라치'를 시켜보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일차적 동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간의 영화들은 사실 온전히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나의 욕망들을 좀더 충실히 반영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뭐, 대단한 메시지는 없고... 단지 장인, 그러니까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Q: 안성기에 질문. 이 영화에 끌렸던 이유는?
안성기: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내공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참 마음에 들었다. 저기 카메라를 들고 있는 분만해도 계속 들다보면 내공이 쌓이지 않는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게 특별히 강한 사람들이고. "힘을 좋은 일에 써 바른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어찌 보면 교과서적인 줄거리의 영화에 영화적 재미를 대폭 가미한 즐거운 작품이라는 점에 끌렸다.

Q: 윤소이는 왜 이 역할을 택했는지?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윤소이: 의진은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다. 당차고, 류승범씨나 정두홍 감독님과도 당당히 대치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전에 류승완 감독님이 "생각이 많은 배우가 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정말로 나는 앞으로 생각이 많고 순발력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Q: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인사 한 마디.
류승완 감독: 내가 만드는 최초의 15세 관람가 극장 영화가 될 것 같다. 건전하면서 또한 신나는 영화다. 촬영 회수가 100회에 육박하는 대 작업이라 배우와 스탭들 고생시키면서 찍고 있다. 부상자도 현재까지 스무 명이 넘는다. 이렇게 노력하면서 만드는 이유? 의미를 남기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영화는 의식주가 아니며, 살면서 필수적인 요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 만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자부한다. 후반 작업이 오래 걸리는 터라 개봉은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하지만, 멋진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

취재: 임지은
촬영: 이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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