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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일선 감독 조은숙 인터뷰
'플라스틱 트리'는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 | 2003년 8월 23일 토요일 | 서대원 이메일

프랑스 자본으로 제작비 일체가 마련돼 화제가 된 어일선 감독의 영화 <플라스틱 트리(제작:알지프린스필름)>가 유럽에서 호평을 받더니만 드디어 걔들 지역 3개국에 수출돼 말로만 인정받은 작품이 아님을 증명했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기묘한 동거 아래 인간의 관계 속에 숨죽이고 있는 진실성에 대해 천착한 <플라스틱 트리>는 멜로와 스릴러를 변주하며 넘나드는 핏빛 멜로 영화다.

이처럼 호조를 띄고 있는 영화의 수장 어일선 감독과 여주인공인 조은숙을 얼마 전 무비스트가 만나 소소하나마 <플라스틱 트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영화를 전체적으로 조율하고 책임지는 감독의 머릿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한 회로가 자리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회로가 밖으로 뻗치지 못하고 폐쇄회로로서만 작용을 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한 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영화매체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무비스트가 이들을 만났고, 이들의 영화에 대한 지혜와 생각을 퍼다 날았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를 보고자 하는 예비관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플라스틱 트리>는 8월 29일 개봉 예정이다.

Q: 제작비 일체가 해외자본이다. 어떠한 수순을 거쳐 여기에 이르게 됐나
어일선: 영화는 대중예술이다. 때문에 상업성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본다. 한데, 한국의 제작사들은 <플라스틱 트리>를 받아주지 않았다. 포맷에 맞춰진 흥행코드를 선호하다보니 작품성은 인정해줬지만 흥행성에는 평가를 해주지 않은 것이다. 그런 가운데 프랑스 제작자를 만났고 다행히도 투자를 결정해줬다.

Q: 영화 제목이 요즘 유행하고 있는 제목들과는 사뭇 달라 어떤 영화인지 선뜻 잘 와 닿지 않는다.
어일선: 나의 의도보다는 보시는 분들이 판단할 문제인 거 같다. 어쨌든, 답을 하자면 이렇다. 가짜 나무인데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사람의 관계 역시 시야에 따라 가짜가 진실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우리들은 상처를 많이 받는다. 결국, 사람 관계의 진실을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에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것이다.

Q: 영화는 멜로로 가다가 미스테리로 흐른다. 그래서 '핏빛 멜로'로 홍보가 되고 있다. 굳이 나누자면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었나
어일선: 뭐 어느 장르에 더 비중을 두었다기보다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장르 실험과 미장센 실험 두 가지를 시도했다. 그 이유는 으레, 중국 영화하면 빨간 색깔이 연상되는 반면에 한국 영화하면 딱히 떠오르는 색깔이 없다. 그래서 한국적인 색깔을 가져보고자 한국에서 인기 있는 장르인 멜로와 호러물 스타일의 미스테리를 융합했다. 특별한 장르라기보다는 새로움을 추구했다 볼 수 있다. 미장센 실험은 캐릭터와 공간에 색감을 넣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나중엔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시도했다. .

Q: 참고한 작품은 있는지
어일선: 그런 건 없다. 다만, 프랑스 자본을 가지고 범유럽적인 지역에서도 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만 아는 것은 할 수가 없었다. 서양의 그들이 봐도 같이 느낄 수 있는, 그러니까 인간의 절대적 가치관 같은 것을 영화 안에다 넣고 함께 한국적 정서와 장르를 혼용해 넣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들 역시 한국적인 영상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고, 또 그 실험을 인정해주고, 영화의 느낌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Q: 이발소라는 공간, 그리고 살인 등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지만 문득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가 겹쳐졌다.
어일선: 그럴 수 있다. <감각의 제국>같은 영화도 떠오를 수 있고.

Q: 시사회를 마친 소감을 듣고 싶다.
조은숙: 개봉이 늦쳐진 점이 가장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그때 당시 인대를 다쳐 에너지를 많이 못 쏟아부었던 점이 변명이긴 하지만 너무 안타깝다.

Q: 어떤 캐릭터인가
조은숙: 퀵서비스 일을 하는 아주 순진무구한 친구다. 남이 보기엔 불행하다 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제일 행복한 캐릭터다. 남들은 안 믿지만 원형은 가짜를 진짜라고 끝까지 믿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친구니까.

Q: 전작들의 캐릭터와 비교하자면
조은숙: 내 안에서 끄집어 낼 것이 많은 캐릭터였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인물과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도 그 영화의 캐릭터를 좋아하고.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원형과 닮은 점이 군데군데 있다. 대학교때 오토바이 MX를 타고 다닌 것도 그렇고. 머리를 빡빡 깎아 본 적이 있는 것도 그렇다.

Q: 평상시와 달리 긴머리던데 진짜였는지
조은숙: 진짜는 아니고 갖다 붙인 거다.

Q: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드는 장면이 있어 자칫 여성들의 불만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던데
어일선: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많은데, 음 글쎄다. <플라스틱 트리>는 우선적으로 소외된 자들의 욕망이나 진실을 탐구해 부각시킨 영화다. 그리고 한국이 가부장적인 사회다보니 그런 여성을 선택한 거다. 또한 인물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워낙이 외진 바닷가라 그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어쨌든, 보시는 분들이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본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Q: 같은 이야기이지만, 특히 퀵 서비스맨들의 노골적 성희롱이 상당히 거슬렸다.
어일선: 형식미학으로 리얼리즘을 추구하다보니 남성사회에서 소외된 여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왕이면 사람들, 그들의 관계에 포인트를 두고 봤으면 한다.

Q: 원형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해가면서 중간과정없이 극단적으로 변해간다. 연기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조은숙: 큰 계기가 없이 그러한 연기를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원형의 내면이 밖으로 돌출되는 원인을 말하자면 바로 머리다. 병호(김정현)는 섹스 때문에 깎으라고 하고, 수(김인권)는 안 된다고 하고, 주변인들은 냉대를 하고. 어찌됐든, 촬영 초반에 다친 불행 때문에 영화에 악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어 많은 분들에게 죄송하다.

Q: 상반신만 잡은 채 수가 원형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롱테이크 장면, 정말이지 소리가 섬뜩하더라.
어일선: 그 신은 배우의 작은 디테일의 감정묘사와 소리 변화를 컷 없이 가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해 그렇게 작업했다.

Q: 정사장면이 개인적으로는 약했다고 생각되는데.
조은숙: 보기 나름인 것 같다.

Q: 조은숙씨를 캐스팅한 이유는
어일선: 원형의 캐릭터인 보이쉬하면서 단순함이 느껴지는 순수 천진 발랄 아동 같은 느낌이 조은숙씨와 겹쳤다.

Q: 옥상은 영화 안에서 굉장히 전형적인 의미로 쓰여왔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옥탑방 고양이>도 그렇고. 그럼, <플라스틱 트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옥상공간의 특징은 무엇인가?
어일선: 우리 영화 안에서의 옥상은 원형이 삶을 느낄 수 있고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공간으로 복무한다.

Q: 엔딩 부분에서 나레이션이 등장하는데 그 의도는
어일선: 첫 장면의 나레이션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영화를 마치는데 너무 슬프고 서운했다. 그래서 포인트를 주고 싶었다. 다시말해, 원형이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는 말이다.그것이 영화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거 같고.
조은숙: 그 마지막 대사는 녹음실에서 작업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슬픈 순간이었다.

Q: 전작과 비교해 이번 영화에서의 모습이 가장 어리게 보이더라.
조은숙: 원래 어려 보이는데.....원형이의 캐릭터에 맞게끔 감독님이 잘 담아줬다. 일부러 어려 보이려고 노력한 적은 없다.

Q: 유럽쪽의 반응은 어떠한가
어일선: 좋다고 들었다. 한국에선 이 영화가 낯설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이해가 된 거 같다.
조은숙: 전에 영화 때문에 독일에 갔었는데 하루 종일 인터뷰가 있을 정도로 진짜 반응이 좋았다. 또 몬트리올 영화제에도 초청됐고. 상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를 떠나 인정 받았다는 사실이 기분 좋다.

Q: <플라스틱 트리>는 파국으로 끝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또 해피엔딩이라 볼 수도 있다.
어일선: 맞다 해피엔딩이다. 절망속에 희망을 노래한 거다. 원형은 자신이 소망했던 자유를 찾았고, 수는 남성의 성 정체성을 회복했고, 병호는 정착하고자 했던 자신의 바람대로 됐다. 또 다른 희망을 보여주면서 이런 사랑의 방식도 있다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Q: 마지막 질문이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영화를 보면 좀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지 예비 관객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어일선: 같은 이야기지만 <플라스틱 트리>는 관계에서 느껴지는 진실성을 연구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영화다. 장르실험과 레드블루하이트의 색깔을 캐릭터에 맞춰 다양하게 시도한 미장센 실험 영화이기도 하고. 바로 이 점을 주시해 보길 바란다. 또 호러와 멜로가 섞였는데 그걸 의식하지 말고 흘러가는 데로 몸과 마음을 놔두길 부탁드린다.
조은숙: 원형은 "옥상에 나무를 심을까" 영화 초반에 얘기를 한다. 그 나무는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 즉 희망이다. 항상 꿈을 가지고 있고 노력하는 것이 희망이라 생각한다. 욕심을 부리면 사고가 난다. 바로, 수나 병호가 그러한 케이스다. 하지만 원형은 계속 꿈을 꾼다. 더도 말고,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자기 관점에서 어떤 사물을 볼 때 다 가지려는 욕심을 너무 부리지 않았으면 한다.

취재: 서 대원
촬영: 이 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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