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평가! 놀라운 감탄 그리고 깊은 탄식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2008년 1월 31일 목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마치 노인 복지를 대변하는 강경한 문구처럼 들리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an>(이하, <노인을 위한 나라>)라는 제목이 의아할 것이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기 전, 혹은 중반부까지도. 한 남자의 회고적 나레이션으로 시작해 강렬한 인장을 찍으며 출발하는 영화는 느릿느릿 걸어가면서도 묵직한 눈빛으로 관객을 한눈 팔지 못하게 만든다. 게다가 우직하게 맞으며 한걸음씩 사정권에 들어오는 인파이터의 강력한 훅처럼 암전된 스크린에 강렬한 잔상을 새기고 뒷모습을 지우듯 마침표를 찍는 결말은 심리적 공백을 형성시킬 정도로 대단하다. 다양한 장르 영화를 시도했지만 <파고>와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와 같은 중후한 고전적 스릴러로 명성을 얻었고, 그에 뛰어난 성과를 보였던 코엔 형제는 다시 한번 자신의 길에서 걸작을 완성했다.

시작부터 극악한 살인 장면을 연출하며 느낌표와 물음표를 동반시키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계몽적인 제목에 대한 호기심을 일단 괄호로 묶어 뒤로 미루게끔 한다. 마치 음향으로 인한 외부효과에 대한 결벽증에 걸린 것처럼 BGM을 한시도 활용하지 않는 영화는 텍사스 사막을 배경으로 한 건조한 화면의 정서를 더욱 말라붙게 하며 이를 통해 관객은 그 사막의 황폐함 속에 한층 더 깊게 빠져든다. 종종 영화의 외부에서 발생하는 효과음과 BGM이 발생시키는 고의적인 감수성은 영화자체가 발생시키는 정서적 효력을 간과하게 만들며 그로 인해 관객의 극적 몰입도 조절을 훼방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심리적인 평형감을 유지하면서도 심장박동을 뛰게 만드는 기이한 장르적 호흡을 지니고 있다. 단지 대사와 소리만으로 채워지는 사운드는 몰입도의 공간을 더욱 깊게 형성시킨다는 점에서 그 기이한 구조적 순환에 일조한다. 널뛰기적인 긴장감을 선사하지 않는 <노인을 위한 나라>에서 외부적인 효과로 인한 평정심의 상실은 되려 악이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외부적인 음향효과를 거세하며 전형성에서 탈피한 장르의 순환을 효과적으로 다스린다.

언제나 긴장감이 펼쳐지는 지대의 중심에 서있는 건 시니컬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살인청부업자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인데 그는 마치 아웃복서처럼 거리를 두고 긴장감을 형성하다가도 인파이터처럼 돌진해서 묵직한 긴장감을 날린다. <노인을 위한 나라>의 중심에 선 세 인물 중 가장 인상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는 영화의 전반적인 서스펜스 구조에 모두 발을 딛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는 저승사자 같은 안톤 쉬거가 긴장감의 진원이라면 그에게 쫓기는 모스(조쉬 브롤린)는 극적 긴장감의 진앙이 되는 인물이다. 우연히 총격전이 휩쓸고 난 자리에 머물렀다가 사건에 휘말리게 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여정에 오르는 그는 결국 영화의 동선을 주도하며 긴장의 거리감을 형성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진원으로부터 발생한 진앙이 발생시킨 긴장감의 규모와 진도를 체험과 관념으로 기록하는 기록계의 역할을 하는 인물은 그 여정을 뒤따르는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이다. 동시에 그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궁극적인 핵이기도 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에서 스릴러라는 장르는 맥거핀이란 신기루가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인을 위한 나라>가 던지고 싶었던 어떤 물음을 위해서 장르는 헌신하고 있다. 그 헌신을 이루는 건 안톤 쉬거와 모스라는 두 축이고 결과적으로 그 축이 세운 지반 위에 지붕을 덮는 건 벨이다. 장르는 메시지를 위한 기둥으로서 단단한 구조를 지녀야 했고 그 의무를 탄탄하게 수행한다. 안톤 쉬거와 모스의 행방을 따라나서는 벨은 제목에서 지칭하는 ‘노인’이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넓은 경험의 시야를 통해 젊은 보안관에게 통찰력을 제공한다. 하지만 깊은 연륜과 함께 진행된 노쇠한 기운은 그를 노인이라는 비애감으로 몰아간다. 마약과 돈이라는 물질적 탐욕에 젖어 들어가는 세상은 갈수록 비도덕적으로 흘러가고 과거의 가치는 현재에서 볼품없는 종이조각보다도 무가치한 것이 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그 표면적인 상황에 대한 직설적인 지적과 세태에 대한 적나라한 일침으로 계몽에 대한 표피적인 근성을 일차적으로 드러낸다.

궁극적으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은퇴하는 노인의 뒷모습을 걱정하는 영화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퇴장하는 노인의 앞모습에 대한 염려에 가깝다. 궁극적으로 성찰의 출발지는 벨이지만 화두의 목적지는 안톤 쉬거와 모스인 것이다. 베트남 참전군인이자 은퇴한 용접공인 모스가 돈가방을 잡게 되는 순간 시작된 그 혼돈스런 사연이 모스의 탈선으로 매듭지어졌음에도 안톤 쉬거의 마지막 뒷모습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은퇴했음에도 물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모스가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처럼 안톤 쉬거 역시 그 육체의 고달픈 생으로부터 이탈되는 순간이 바로 비극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벨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해 벨의 이야기로 끝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노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대에 대한 깊은 한숨이자 노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세상에 대한 근심이다. 물론 세상은 여전히 선의를 품고 있다. 하지만 악의에 잠식당하는 선의는 언제나 희생양의 위치에서 신음한다. 게다가 선의를 품은 노인은 죽어나가고 청년은 악의를 먼저 배운다.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탄식을 금할 수도 없는 건 그 때문이다. 영화는 실로 매혹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너무도 끔찍하여 한숨이 절로 나오게 한다.

2008년 1월 31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이것이 바로 진정한 마스터피스(masterpiece)! 진정한 걸작이 왔다!
-살벌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하비에르 바르뎀, 중후한 깊이를 선사하는 토미 리 존스.
-코엔 형제는 평온을 유지하면서도 격정을 만들어낸다. <파고> 이후, 또 하나의 걸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우리라고 미국과 다를 것 있니? 이제 영어로 수업도 할 판인데.
-리드미컬한 긴장감과 박진감 속에서 우러나는 격조있는 시선과 중후한 성찰!
-산소 호흡 탱크 들고 다니는 남자보면 도망칠지도 몰라!
-세상은 밝아, 뭐 이리 염세적인 영화가 다 있어?
-내 평생 음악하나 안 깔리는 영화는 처음 보네. 그런데 극장에서 봤니?
(총 40명 참여)
loop1434
역시   
2010-07-09 22:40
kabohy
작품성정말 좋앗어요   
2009-03-14 12:45
kyikyiyi
정말 독특하고 볼만했었다는   
2008-05-07 14:11
callyoungsin
최고최고 킹왕짱   
2008-05-07 11:26
wow517
작품성 뛰어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네요..음...   
2008-04-28 15:03
js7keien
노인의 불가항력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飛者上에 有乘者라"   
2008-03-19 21:57
lalf85
이 글도 꽤 이해가 어렵다는..^^;;   
2008-03-02 12:16
mckkw
이해하기 힘들다.   
2008-02-2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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