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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빌 Vol 1
삼류극장에서 본 짬뽕 같은 영화 | 2003년 11월 23일 일요일 | 서대원 이메일

삼류극장에 온 듯한 느낌을 전해준 '킬빌'
삼류극장에 온 듯한 느낌을 전해준 '킬빌'
우리네의 골상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어딘가 모자란 듯 보이지만 천재라는 칭호를 세인들에게 받기에 바쁜 타란티노. 그런 그가 <재키브라운>이후 근 6년 만에 전봇대 형의 늘씬한 미인 우마 서먼을 복수의 여전사로 둔갑시킨 채 세상에 내놓은 <킬빌 Vol 1>을 봤더니.... 영화는 참으로 기이하게도 유년 시절에 무시로 들락날락거리던 삼류 극장에 온 듯한 느낌을 시공간을 초월해 안겨다 줬다.

전에 적을 두었던 암살단을 탈퇴하고 한번 잘 살아보겠다고 작심한 브라이드(우마서먼)는 조직의 동료들로부터 부조대신 총알세례를 받으며 하객과 함께 결혼식날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천우신조의 도움인지 그녀는 수 년 만에 코마상태에서 깨어나고 자신을 이 꼬라지도 만든 년놈들을 하나씩 찾아 복수를 자행한다. 머리에 김이 날 정도로 이야기를 이리저리 배배 꼬아 놨던 <저수지의 개들>, <펄프픽션>과 달리 영화의 이야기는 이처럼 무지 간단하다. 물론, 살생부에 오른 자들을 처단하는 순서가 비선형적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닥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다.
오래전 삼류극장과 비디오가 구비된 만화방에서 아이스케키 빨며 봤던, 사부 또는 부모님의 원수를 찾아 복수극을 벌이는, 짱깨 영화가 그랬듯 말이다.

종래의 영화를 통해 언어의 유희가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줬던 타란티노는 이번엔 몸의 운동성에서 비롯되는 쾌감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다시 말해, 금발의 쭉쭉 녀가 그 옛날 검은 머리의 동양인들이 비장한 각오로 임했던 복수 행위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알아서 짜깁기해 실천궁행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숙명의 대결 한 판 한 판에 모든 것을 집중하면서..
오래전 삼류극장과 비디오가 구비된 만화방에서 아이스케키 빨며 봤던, 카리스마 넘실대는 몇 마디만 뚝뚝 던진 채 오로지 몸으로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 짱깨 영화가 그랬든 말이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정조가 유유히 흐르는 장면
마카로니 웨스턴의 정조가 유유히 흐르는 장면
<킬빌 Vol 1>은 오프닝부터 노골적으로 홍콩 무협 영화의 산실인 쇼브라더스의 로고와 음악을 띄운다. 마치 “나 이런 영화들을 좋아하거든,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참조했어, 재미나고 유쾌하게 말이야!, 유치해 보여도 할 수 없지 뭐!”와 같은 출사표를 던지듯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찍이 동양 무협영화에 지대한 관심이 있음을 고백했던 타란티노는 홍콩의 무협영화와 일본의 사무라이, 야쿠자 영화 등 자신과 멀찌감치 떨어진 지역권의 무술을 총 망라한다. 그것도 모자라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의 정조까지 그 안에 짬뽕하면서.

그래서 영화에는 호금전과 더불어 협의 세계를 구축했던 장철의 다리 뎅강 발 뎅강 모가지 뎅강의 몸 절단식과 더불어 사무라이 영화에서 봐 왔던 피로 샤워할 만큼의 가공할 피 솟구침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한다. 그 외에도 외팔이 검객 시리즈의 왕우와 야쿠자 영화의 거성이었던 후카시쿠 긴지의 흔적도 느껴진다. 또한, 우마 서먼이 청엽옥 대결투에서 착용한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이 입었던 노란색 츄리닝과 일본 활극 영화의 대표배우였던 소니 치바, 그리고 소싯적 소림사 영화만 봤다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빡빡머리 유가휘의 출연은 고딩시절 집 나간 고환친구 해후하듯 인생의 무상함과 하염없는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오래전 삼류극장과 비디오가 구비된 만화방에서 아이스케키 빨며 봤던, 어떻게 시간이 간지 모를 만큼 시간의 무상함을 무식하리만치 안겨다 주며 즐거움을 던져준, 짱깨 영화가 그랬듯 말이다.

이렇다 할 번뜩이는 내용도 이렇다 할 반전도 없이 구차함을 다 덜어내고 오로지 단순하게 휘두르면 찔리고 휘두르면 절단되고의 들끓는 피의 혈투만에 집착한 영화는 어떻게 보면 좀 심드렁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바로 요러한 구멍을 메우고 있는 것이 영화적 맥락을 잘 살리며 때로는 촐싹 맞게 때로는 갑빠 어리게 때로는 헛웃음을 유발시키며 등장하는 귀를 때리는 음악이다. 촌스러움이 느껴지는 브라스 밴드적인 유쾌한 소리부터 엉덩이를 살짝 흔들어 주고 싶을 만큼 경쾌한 플라멩고, 우아함이 느껴지는 장 피에르의 팬플루까지 <킬빌 Vol 1>의 사운드 트랙은 자칫 늘어질 수 있는 영화의 맹점을 성공적이다 싶을 만큼 잘 상쇄하고 있다.
오래전 삼류극장과 비디오가 구비된 만화방에서 아이스케키 빨며 봤던, 졸음이 올 때 여지없이 귓가를 때리며 뚜둥~~~하며 등장하는 효과음이 인상적인, 짱깨 영화가 그랬듯 말이다.

스즈키 세이준의 미장센과 무협 활극의 객잔 결투신이 키치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묘사된 우마 서먼의 청엽옥 일당백 사투와 육중한 철퇴를 장난감 다루듯 휙휙 돌리며 교복을 입은 채 브라이드와 맞장을 뜨는 고고의 모습이 아주 재미난 <킬빌 Vol 1>은 잔혹함과 단순함, 촌스러움, 유머러스함이 뒤죽박죽으로 얽히고설킨 짬뽕 영화다. 것두 매우면서도 개운한 청요리집의 삼선 짬뽕 같은 영화. 때문에 기존의 타란티노식의 지적인 놀이 비스무리한 그런 걸 기대하고 갔다간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냥 별스런 준비 자세 취하지 말고 관람길에 나서는 것이 오히려 이번만큼은 더 큰 미덕으로 남을 여지가 많다는 말씀이다.
오래전 삼류극장과 비디오가 구비된 만화방에서 아이스케키 빨며 봤던 짱깨 영화가 그랬듯 말이다.

*브라이드가 일명 살모사였던 여자 킬러와 식칼들고 쌈질을 하다가 살모사의 딸이 집에 오자 둘이 식칼을 등 뒤로 숨기는 장면에서는 <첩혈쌍웅>의 주윤발과 이수현이 눈먼 엽청문을 대할 때의 그것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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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amajov
"오래전 삼류극장과 비디오가 구비된 만화방에서 아이스케키 빨며 봤던, .......짱깨 영화가 그랬듯 말이다." 은 청산별곡에서의 "얄리얄리 얄라셩"과같은 후렴구의 기능을 하고있는거겠죠? 글의 표현뿐 아니라 구조에도 이런 독특한 방식을 도입하다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2010-01-23 19:17
gaeddorai
난 액션물 정말 안 좋아하는데 요건 재밋게 봤다   
2009-02-21 21:42
ejin4rang
킬빌추천   
2008-10-16 09:32
callyoungsin
잡탕같은 삼류영화라 비교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게봤던 영화   
2008-05-22 14:19
bjmaximus
<킬빌 Vol 1> 온갖 재료가 섞인 맛있는 잡탕 같은 영화라는. "오래전 삼류극장과 비디오가 구비된 만화방에서 아이스케키 빨며 봤던 짱깨 영화가 그랬듯 말이다." <--- 이 글이 반복되면서 자주 사용됐군요.ㅎㅎ


  
2007-04-18 11:13
ldk209
화려한 액션의 향연.....   
2007-01-2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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