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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팽팽한 긴장감으로 무장한 명품 스릴러
블랙 아이스 | 2009년 4월 17일 금요일 | 하성태 이메일


간만이라 반갑다. 이다지도 관객의 심리를 꽉 쥐어짜는 느낌의 스릴러는 오랜만이다. 게다가 불륜극이다. 남편의 정부를, 아내의 애인을 만나러 가는 영화들은 종종 있어 왔다. 그러나 <블랙 아이스>는 그렇고 그런 치정드라마와는 수준이 다르다. 노출이나 섹스에도 별 관심이 없다. 핀란드에서 날아 온 이 심리 스릴러는 온전히 두 여자의 파국과 예상할 수 없는 내면을 시종일관 차갑게 응시한다.

남자에게 애인이 생겼다. 한낮 불륜 상대가 아닌 것 같다. 진지한 상대이니만큼 더욱 불안하다. 그래서 이제 막 마흔 살이 된 중년의 산부인과 의사 사라는 남편의 애인을 직접 만나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사라가 알아낸 사실은 건축가 교수인 남편의 애인이 그가 가르치는 학생이며, 태권도장에서 일하는 툴리라는 것. 사라는 크리스타라는 가명으로 위장한 채 툴리에게 접근한다. 어느새 친구가 되어버린 사라와 툴리. 남편의 불륜 행각을 직접 들으며 분노와 질투를 억누르던 사라는 고민 끝에 자신만의 복수를 감행하게 된다.

<블랙 아이스>는 가장의 드라마다. 가면을 쓴 채로 환하게 웃고 있는 포스터 속 사라의 얼굴을 보라. 영화는 시종일관 감정을 억누른 채 가면을 쓰고 있는 사라의 농밀한 심리를 쫓아간다. 영화의 긴장은 모두 다 그러한 가장에서 비롯된다.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사라와 관객만이 공유한 진실. 외로운 툴리가 사라, 아니 크리스타에게 마음을 열어갈 수록, 그리고 애인에게 변심한 남편이 사라에게 돌아오려고 할 때 묘한 분노와 쾌감을 사라와 함께 공유하게 된다. 더욱이 재미있는 것은 툴리 또한 상처받은 영혼일 뿐이라는 것. 남편이 결혼 이후부터 줄곧 바람을 피워왔다는 사실을 툴리의 입으로 들어야 하는 사라지만 이내 그의 진심을 알아채게 된다. 혹시나 이 두 사람이 무언의 결탁을 벌이지는 않느냐고? 영화는 그리 쉽게 스릴러의 공식을 따라갈 생각이 없다. 아니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라의 의중을 놓고 관객들과의 심리 게임을 벌이고 있을 정도다.

6년 간 시나리오를 갈고 닦았다는 페트리 코트비카 감독은 후반부로 갈수록 두 여성에게 좀 더 가혹한 심리적 형벌을 내리고 있다. 뒤늦게 임신 사실을 사라에게 알려주는 툴리, 산부인과 의사로서 낙태를 권유할 수 없는 사라는 그런 툴리가 진짜 임신을 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긴장감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 바로 그런 예다. 레즈비언마냥 키스를 하는 척 하며 툴리의 사타구니에 손을 가져다대는 사라. 약에 취했던 툴리가 갑자기 깨어나자 당황하는 사라. 그리고 뒤이어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 비정상적으로 흔들리는 카메라와 비관습적인 앵글이 이 둘의 어처구니없는 관계와 상태를 더욱 극적으로 강조한다. 결국 어이없는 파국을 맞게 된 두 사람은 각자의 선택대로 치닫는다.

결국 이러한 심리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연기에 기댈 수밖에 없을 터.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들에서 얼굴을 내비쳤던 사라 역의 우티 마엔타는 핀란드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주시 어워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녀는 남편의 애인 앞에서 젊은 남자와 하룻밤을 보낼 정도로 도덕적인 상처를 입은 중년의 여인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특히나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남편 앞에서 눈물을 짓다가 툴리의 전화를 받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은 우리가 사라에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탁월한 연기력이 바탕이 됐음을 확인시켜주는 예다.

‘살얼음’이란 뜻의 <블랙 아이스>는 제목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인 두 여성의 심리를 제대로 그려낸다. 이 가장의 드라마 안에는 그래서 섹슈얼리티와 모럴, 결혼에 대한 문제제기가 천연덕스럽게 녹아들어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불륜의 정당함을 제기하는 남편 레오는 결국 도덕적인 심판을 받게 되지만 그것이 절대로 규범적이고 도덕적인 단죄를 뜻하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영화가 심심해졌을 터.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는 <블랙 아이스>는 결말 또한 의외의 형국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특히나 추운 핀란드의 날씨만큼이나 싸늘한 영화의 분위기와 느와르 특유의 차가움이 잘 매치되어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두 금발의 팜므파탈에게 경배를, 그리고 상처받은 영혼 사라에게 응원을!

2009년 4월 17일 금요일 | 글_하성태(무비스트)




-종종 등장하는 한자 ‘風’자나 태권도장의 풍경이 흥미롭다. 감독의 아시아권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대목.
-아, 노출! 중년 여성의 노출도 이렇게 섹시하고 화끈하게 그릴 수 있다면야! (음모노출까지 있다는)
-팽팽한 긴장감에 있어서 <원초적 본능>에 버금간다.
-상대적으로 불륜 상대인 툴리의 외모나 매력이 떨어져 보이는 건 왜일까.
-클라이막스에 급작스런 몇 몇 대목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는 결정적 약점.
17 )
kisemo
잘 읽었습니다 ^^   
2010-04-04 14:05
nada356
명품 스릴러 기대됨.   
2009-12-05 22:49
iamjo
오 기대 영화평은 상대 적이지요   
2009-05-06 23:34
ldk209
모든 복수가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다...   
2009-05-04 19:16
sprinkle
난 왜케 별루였지.ㅡㅡ;   
2009-04-28 16:14
sdwsds
작품성과 오락성이 괜찮네   
2009-04-21 09:51
snc1228y
이글을 보니 더 흥미진지해 지네요..   
2009-04-21 08:41
hyosinkim
평점 괜찮네요   
2009-04-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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