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세상을 떠난 101번째 날, 언니 정 경(양은용)은 동생 후경(공예지)을 찾아 남강휴게소로 간다. 하지만 동생의 행방은 알 길이 없고, 보일 듯 말 듯한 동생의 흔적에 애가 탈뿐이다. 한 편 휴게소에는 다른 인물들도 있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창(이호영), 사진 기자 김박(최희진), 휴게소 직원 온아(문하인), 만물상 트럭 운전수(김태운) 등. 이들은 각기 전혀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지만 사소한 일을 통해 조금씩 소통하기 시작한다. 창은 컴퓨터로 트럭 운전수의 아내를 찾아내고, 김박의 카메라에는 후경의 사진이 찍혀 있고, 온아는 알고보니 후경과 채팅 친구다. 쉽게 스쳐 지나가는 공간인 휴게소, 그리고 낯선 타인들,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던 장소와 인물은 하나의 이야기로 모여든다.

<경>은 영화평론가로 잘 알려진 김소영 평론가가 김정이라는 이름으로 찍은 첫 번째 장편 극영화다. 영화는 우리의 일상을 뒤덮는 디지털 기기와 디지털 문화가 사람들을 얼마나 고립시키고, 동시에 어떻게 연결하는 지를 보여준다.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정 경이나 노트북이 전 재산인 창은 물론, 디지털 카메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가는 김박 등은 서로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들이지만, 디지털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한다.

감독은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개인화를 조장하는 디지털 문화에 새로운 시각을 던진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디지털 매체들은 어떤 의미로는 모두를 연결할 수도 있다는 것.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그저 지나가는 공간인 휴게소를 무대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지를 색다른 관점으로 보여준다. <경>은 근본적으로는 상실이나 부재에 대한 화두를 꺼내지만, 그 해답이나 치유 방법이 의외의 곳에서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피사체를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보는 것이 다르듯, 휴게소의 뒷공간이 멋진 자연과 자연스럽게 연계된 것을 모르듯,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 다른 시각적 기준을 제시할 때 그동안 모르고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경치의 경, 경계의 경, 거울의 경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제목 <경>은 주변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과 함께 그들의 경계를 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이러한 다양한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중간에 애니메이션을 삽입해 독특한 분위기도 연출한다. 각자 독립 단편 애니메이션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갖춘 애니메이션은 영화의 의도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나윤선, 강허달림, 손지연 등이 참여한 음악 역시 인상적이다. 여기에 최근 독립영화계는 물론 상업영화에서 주목받고 있는 양은용, 이호영 등의 배우들도 신선하다.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가? 관점이 달라지면 안 보이는 것이 보인다. - 휴게소를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재주. 각 인물들의 연결고리도 흥미롭다. - 중심 사건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전개되진 않는다. - 배우들의 다소 심심한 연기, 촘촘하지 못한 살짝 아쉬운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