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함께 동행 하고픈 시대착오 음악여행 (오락성 8 작품성 7)
이탈리아 횡단밴드 |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 양현주 이메일

풍력발전기라는 형편없는 이름의 재즈 밴드가 연주 투어를 시작한다. 노선은 바실리타카 해안선을 기점으로 재즈 페스티발이 열리는 마을까지. 네 남자는 차로 가면 열흘 거리지만 굳이 도보를 택했다. 투어라고는 했지만 관객도 잠자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여정에 원칙도 세운다 이동수단은 두 발, 짐은 말과 수레가, 비상시를 제외하고 휴대폰은 사용 금지, 음식도 식당은 금물이다. 지방 삼류 신문 기자까지 합류하면서 제법 투어다운 행렬이 꾸려진다. <이탈리아 횡단밴드>는 짐작 했겠지만, 음악 로드무비다. 21세기에 떠나는 시대착오적인 여행은 아날로그의 재미를 쌓아간다.

왕년에 TV 스타였지만 지금은 동네 노는 형인 로코(알렉산드로 가스만), 교장 자리를 거절하고 아내에게 구박받는 수학 선생 니콜라(로코 파팔레오), 7년 동안 여자와 한 번도 못 해본 살바토레(파올로 브리구그리아), 실연의 아픔으로 입을 닫은 프랑코(맥스 가제)까지, 밴드의 구성원을 보면 이 황당한 여행에 수긍이 간다. 연주하는 음악도 거창하지 않다. '우리 엄마 오믈렛이 최고'라는 생활형 가사에 콘트라베이스와 기타, 멜로디언이 불쑥 끼어들어 즉흥 연주를 만들어간다. 영화는 쉬지 않고 음악이 연주된다. 약수통이 악기로 변신하고, 때로는 코믹한 혼잣말이 대사인지 노래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심지어 야외에서 샤워하는 순간에도 남은 한 명이 벌거벗은 채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해준다. 관객에게 ‘이것은 음악 영화다’라고 주지하기 위한 편집이 아니라, 그야말로 음악을 삶처럼 즐기는 중년 악동들의 기행이 의뭉스러운 웃음을 제조한다.

로드무비가 보통 선택하는 것이 있다면, 호사스러운 풍광을 몽타주로 담는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바실리타카를 횡단하는 영화는 로드무비가 빠지기 쉬운 관광영화의 함정에서 물러나 있다. 그보다는 이탈리아 마을 특유의 개성과 스치는 사람들의 면면이 풍광을 대신한다. TV스타도 알아보지 못하는 오지, 남자 둘에 여자 하나씩을 커플로 즐기는 마을 축제, 산사태로 버려진 마을에서 만나는 농부, 어부, 바람난 신부가 이 황당한 여정을 여행답게 한다. 이들의 발자취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무모하게 미국을 횡단하던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레닌 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탈리아 횡단밴드>는 니콜라로 출연한 로코 파파레오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첫 작품의 무대를 고향으로 정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녹였다. 프랑소와 트뤼포의 <쥴 앤 짐> 오마쥬가, 카를로 레비의 소설 속 문장이 튀어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목적지는 있으나 목적은 없어보였던 연주 여행은 어느새 네 남자들에게 삶의 해답을 제시한다. 로코는 허세를 벗고, 잃어버린 사랑에 입을 닫았던 프랑코는 사랑과 말을 다시 시작하고, 니콜라는 아내와의 권태기를 극복하고, 살바토레는 의대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흥청망청 삶을 즐기는 듯 보였지만 저마다 가슴 속의 상처 앞에 인생여정을 중단했던 남자들은 진짜 본격적인 삶에 엔진을 켜둔다. 음악 로드무비는 대개 안이하고 느슨한 태도를 장르적 특성으로 용인하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 횡단밴드>는 음악의 힘에 기대는 여타의 음악 로드무비 영화들을 반성하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뻔하지 않게 흘러가는 유머와 여유로운 품새, 단 한 순간도 버릴 것이 없다.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부럽다는 말을 연발하게 되는, 지금 당장 어디로든 가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오아시스다.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진심으로 같이 떠나고 싶다, 여행욕구 유발자
-‘이게 사는 건가’ 싶은 그대, ‘이게 즐기면서 사는 거다’
-당신은 이미 은둔자 프랑코의 매력에 사로잡힌 노예
-부러우면 지는 거다.
-매일이 야근인 직장인에게는 괴로움을 안겨줄지도.
-음악도 여행도 별로라면(근데 그런 사람이 있나)
0 )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