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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더 재밌다?
젠틀맨리그 | 2003년 8월 12일 화요일 | 심수진 이메일

해마다 여름이면 지구의 모든 숨겨진 공포와 기괴함 등을 호출하며 흥행에 더욱 안달을 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대개 반복되는 장르와 관습, 고정된 플롯, 어디서 본 듯한 캐릭터들, 진부한 대사 등으로 실망을 주기 일쑤지만, 일단 스크린 앞에 앉으면 순간순간 짜릿한 쾌감을 맛보게 하니 정말 반갑지 않은 요물이다. 그럼에도 절대 빠져들지 않겠다는 심각한 정신으로 무장한 당신이라면, 여기 지적인 자극과 물리적인 쾌감을 동시에 주는 영화 <젠틀맨리그>가 있다.

이 영화는 <프롬헬>의 원작 소설을 쓰기도 한 알란 무어, 또 캐빈 오닐의 공동 만화 ‘이상한 신사들의 리그(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an)’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악의 무리 때문에 위험에 빠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은 멋지긴 했지만 혼자 대적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젠틀맨리그>는 그 일인 영웅의 패턴을 비틀어 아예 7명의 영웅이 악과 맞서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연륜과 카리스마로 충만한 전설적인 사냥꾼 ‘알란’과, 여자 뱀파이어 ‘미나’, 투명인간 ‘로드니’, 기계와 무기의 총아인 선장 ‘네모’, 그리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 불사신 ‘도리안’과 ‘톰 소여’. 이들이 악과 싸워 각각 세계를 구하는 모습을 담아내자면 어림잡아도 14시간(2시간 러닝타임 기준)이 필요하니, 팀을 이루어 활약하는 건 당연하다.

더욱이 두 시간 안에 세계 평화를 지켜야 하므로, 영화는 그들의 태생과 성장에 대한 묘사를 거세하며 쾌속질주를 감행한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쩐지 개운치 않은 기분을 쉽게 떨칠 수 없게 된다. 캐릭터들의 이름이 어딘가 친숙한 대로,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모두 명작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이다. 익숙한 소설의 배경을 빌어 캐릭터들에 대한 생략과 비약을 완충시키는 효과를 유발하는 것. H. 라이더 헤거드의 『솔로몬왕의 비밀』, 쥘 베른의 『해저2만리』,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H.G 웰즈의 『투명인간』등 제목만 들어도 구미가 당기는 소설 속에서 각기 다른 사연을 지녔었던 7명의 캐릭터들. 하지만 웬만한 독서광이 아닌 다음에야 캐릭터의 매력을 십분 이해하며 영화를 즐기기엔 무리가 따른다. 물론 캐릭터들의 전사(戰士)로서의 기능만 쏙 빼내와 영화에 활용하므로 원작 소설들의 함의가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원작 만화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이 영화가 기대고 있는 상상력은 비단 명작 소설에 국한되지 않는다. 악당 ‘팬텀’을 가스통 르루의 추리소설 『오페라의 유령』에서 인용한 것은 물론, 7명의 영웅을 규합하는 역할인 ‘M’은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에게 임무를 부여하던 직속상관 M의 패러디이니 서구 대중 문화에 대한 교양이 없다면 영화가 슬쩍 깔고 있는 유머에 웃지도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이렇게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런 저런 문화 욕구를 자극시키니 <젠틀맨리그>는 본의 아니게 꽤 ‘생각 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알란은 마약중독자, 투명인간은 섹스광, 네모 선장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인물 등으로 영웅의 이미지를 모두 인간적인 결함을 지닌 독특한 반영웅으로 묘사했던 원작 만화의 신선한 재미는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톰 소여’(『톰 소여의 모험』)의 캐릭터는, 노쇠한 영국 출신의 영웅 알란(숀 코너리)과 연관되며 이 영화를 결정적인 할리우드표 영화로 자리매김시킨다. 알란이 총에 맞아 죽어가며 젊은 미국인 톰에게 “미래는 자네의 것이네.”라고 내뱉는 대사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세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영국을 거쳐, 20세기 이후 전 세계를 장악한 미국의 패권을 노골적으로 정당화시키고 있어, 익살스럽긴 하지만 어쩐지 씁쓸해진다. 게다가 흥행성공을 염두에 두어선지 속편을 암시하는 장면(죽은 알란의 무덤이 주술사의 주문에 흔들리는 장면)을 결말 부에 배치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블레이드>에서 재기 넘치는 독특한 스타일과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인 감독 스티븐 노링턴은 이 영화에서도 환상적인 액션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종이조각들이 눈처럼 휘날리며 팬텀 일당과 싸우는 도리안 저택 안에서의 액션 신은 단연 압권이다. 또한 뱀파이어 영화로 데뷔한 감독답게 결말부에 등장하는 뱀파이어 미나와 불사신 도리안의 결투장면이 눈길을 모으는데 화려한 액션 속에 살짝 유머 감각을 가미하는 절묘한 연출력이 일품이다.

그러나 <젠틀맨리그>는 암울함을 잘 표현해 주는 세련된 톤과 몇몇 잔재미에도 불구하고, 악의 정체를 쉽게 노출하며 미스테리적 분위기를 싱겁게 무너뜨리는 엉성한 내러티브 때문에 커다란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다. 상상력 넘치고 스피드한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의 탄력은 여지없이 떨어지고 마는 것. 런던, 파리, 베니스를 오간 해외 로케이션, 액션 신을 위한 58개의 세트, 특별히 만들어진 운하, CG와 실사로 재현된 폭파신 등 무척이나 공들인 이 영화에 전혀 재미를 느낄 수 없다면, 너무 투덜거리기보다 앞서 말한 수많은 책들로 독서삼매경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뭐니뭐니해도 그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니 말이다.

3 )
ejin4rang
젠틀한 영화   
2008-10-16 09:51
ldk209
괜찮게 나갈 듯 하더니.. 맥없이 끝나네....   
2007-01-22 10:30
js7keien
문학의 주인공들로 엑스맨 번외편을 만들려고 하다가 맛없는 비빔밥이 되었다...   
2006-10-0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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