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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통역사가 바라본 니콜 키드먼 '인터프리터'
활동중인 현역 동시 통역사가 본 <인터프리터> 감상 후기 | 2005년 4월 21일 목요일 | Kimmie KIM 이메일


여자는 아픈 과거를 안고 산다. 자기를 지켜 주겠다던 오빠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아프리카의 소년 게릴라에게 총에 맞아 죽는다.
남자는 아픈 과거를 안고 산다. 항상 자기 곁으로 돌아와주던 부인은 자신을 떠나 다른 남자의 차를 타고 가다가 죽음을 맞고 만다.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마토보’는 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하겠다던 민중의 영웅은 대통령이 되지만 국민을 위한 대통령과는 멀어진 지 오래다. 이것이 새로 개봉될 영화 “인터프리터”의 기본 설정이다.

뉴욕에서 살고 있는 통역사 실비아(니콜 키드만)와 연방요원 토빈(숀 펜)은 서로 다른 아픔을 간직한 채 보호 받는 자와 보호해야 하는 자로 만나게 된다.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국가가 가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국민이 한 국가를 수호해 나가고 지켜야 하는 것인가? 아프리카의 한 나라인 마토보에서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시민들과 정부는 부패하고 썩어 있다. 우연히 마토보의 대통령의 암살계획을 들은 실비아는 암살범들의 표적이 되고 그들로부터 그녀를 보호 해줘야 하는 토빈은 오히려 자신의 아픈 과거를 그녀에게 토로하며 슬픔을 반으로 줄인다. 관객들은 두 주인공들이 누가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지 모르게 만들려는 시드니 폴락 감독의 의도에 알면서도 빠져들게 된다.

일단 사건의 발단은 실비아가 UN 통역사라는 점 때문에 일어난다. 그녀가 통역사였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던 마토보라는 나라의 대통령 암살 음모를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도 통역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관심이 생겼고 무비스트를 통해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약 5년 이상 통역사로서 일을 하면서 이러 저러한 우여 곡절을 겪었을 것 때문에 보는 관점이 달랐고 그렇기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일단 이 영화의 내용이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여러 기사들에 의해서 이미 알려 졌을 테고, 필자의 직업과 관련된 관점에서 한가지 에피소드에 관해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생의 통역사 역할로 설정 된 니콜 키드만의 모습은 아름답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아프리카의 햇살에 익숙해진 듯한 금발 머리가 리얼하다. 니콜 키드만이 “마토보”라는 가상 국가의 언어인 “쿠” 어(語)를 통역 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 언어가 혹시 가상 언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 만큼 그녀가 얼마나 이 영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을지 통역을 다년간 한 선배의 입장에서 짐작이 간다. 아니 옛 추억이 떠올라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통역을 처음 시작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유럽의 한 대기업의 의뢰로 덴마크까지 날아가서 통역을 했던 그 날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통역을 해줘야 할 대상은 덴마크인들을 상대로 협상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로 통역 언어는 영어였다. 통역 첫날. 점심은 회의를 계속 하면서 빵 몇 조각으로 때우며 약 8시간의 마라톤 통역을 했었다. 덴마크 회사는 물건을 파는 입장 이었고 한국 회사는 물건을 사는 바이어의 입장 이었다.

필자를 고용한 회사는 덴마크 회사였고 유럽제품을 한국에 런칭 하겠다는 큰 계획을 가지고 덴마크까지 온 한국 회사의 사람들은 최선의 조건으로 그 제품을 수입하려고 했다. 첫날 길고 지루했던 미팅이 끝나고 코펜하겐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같이 했다. 이 자리에는 덴마크 회사의 네 명의 임직원이 동행했다. 그들은 식사와 휴식이지만 필자의 업무는 이런 자리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저녁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독일어가 모국어인 한 직원이 상사에게 이미 한국 판권은 다른 회사가 사 버렸는데 괜찮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 누구도 독일어를 알아 듣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그들은 독일어로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미 한국 판권은 지금 계약을 하기 위해 달려온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 일 년 전에 넘겨졌었다. 하지만 덴마크 회사는 한국의 두 회사를 저울질을 좀 더 하자는 것이었다. 판권을 이미 준 회사와의 거래를 끊으면서 계약 파기 벌금을 준다 해도 괜찮을 만큼 지금 만나고 있는 회사에게는 충분히 비싸게 물건 값을 불렀기 때문에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고 덴마크 회사 사람들은 계속해서 말을 나누고 있었다.

필자는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를 고용한 회사는 덴마크 회사이고 앞으로도 많은 일을 약속 받은 회사이지만 들은 얘기를 해주지 않으면 한국에서 온 회사가 큰 손해를 보게 생겼으니 이럴 때 내가 처해야 하는 최선의 방법이 뭘지 말이다. 아마도 영화 속에서 미국 대표와 마토보의 대사가 나누는 대화를 조용히 읇조리 듯 통역을 하던 실비아 입장처럼 말이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미팅은 계속 진행되었고 필자는 마음은 그렇지 않았으나 그저 단순한 통역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통역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계약이 어쨌든, 한국 회사가 손해를 보던 말던”하며 마음 속으로 계속 되뇌이며 일을 하다 보니 사흘이 흘렀다. 계약은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끝내 한국 회사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아무 말도 못했다. 그들을 공항까지 바래다 주는 마음은 암살범 때문에 괴로운 실비아보다 더욱 괴로운 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덴마크의 일을 마치고 내가 살던 파리로 다시 돌아 갔을 때 한 장의 팩스가 와 있었다. 덴마크를 방문했던 한국회사의 대표가 손수 손으로 정성스레 써서 보내준 팩스
“키미(필자의 영문 이름)님. 열정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나이도 어린 분이 외국에 살고 있으면서 확실한 사명감과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좋았어요.”라고 쓰여진 그 글을 읽고서 한참을 생각하다 답장을 보냈다. “사장님. 제가 듣기로는 그 덴마크 회사는 이미 한국에 판권을 팔았던 상태 입니다. 그래서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던 것이고요. 유럽의 다른 경쟁회사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이다. 필자는 그때의 그 일이 어떤 것이 옳았던 것이지 모른다. 통역으로만 머물렀던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답장의 팩스를 보낸 것이 옳은 것인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마치 실비아가 우연히 들은 암살범의 자신이 아는 언어로 들은 것을 밝히기 어려웠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서도 그런 점 때문에 사서 고생하지 않았던가

필자는 매번 통역을 하면서도 아직 자신이 통역사로서의 자질은 있는지, 인격은 되는지 자문 하곤 한다.
영화에서 실비아는 말한다.
“우리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 주는 것을 사명으로 안다고”

통역이라는 단어를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통역 (通譯): [명사] [하다형 자동사•하다형 타동사] (서로 통하지 않는 양쪽의 말을) 번역하여 그 뜻을 전함, 또는 그 사람. 통변(通辯). 통어(通語). 통역을 맡다./ 통역으로 근무하다….”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도 오해가 생기고 싸우는 판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양쪽의 말을 번역하여 그 뜻을 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언어의 전달, 말의 뜻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말하는 이를 충분히 배려하고 이해한 이후에 그 사람의 감정까지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통역사가 되기 위해선 언어적 능력 향상뿐만 아니라 사람됨을 스스로 다시 한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이번 <인터프리터>를 통해 다시 한번 환기하게 되었다.

필자는 <인터프리터>의 실비아처럼 유엔에서 일하면서 세계 평화를 위해 일을 하거나 조국의 미래를 위해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현재 하고있는 이 일을 사랑한다는 것이고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것이다.

함께 자리를 했던 다른 통역사 분들은 기술적인 측면을 보고 영화에서의 통역사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들 했다. 필자도 그런 부분을 모두 공감한다. 하지만 직접 보고 난 후의 <인터프리터>의 통역사가 본 입장에서의 매력은 통역사들의 고충과 마음, 심리를 잘 묘사하고 통역사도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며 단지 일 때문에 일반인들과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아주 쉽고 직설적으로 묘사해 일반인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터프리터>의 최고의 장면은 니콜키드먼과 숀펜이 첫 만남을 가지면서 통역사와 일반인으로서의 단어 표현의 문제를 놓고 논쟁하는 모습과 서로 가까워지면서 언어의 전달 즉 비슷한 단어의 활용에 대해 다투는 장면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간혹 통역사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묻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필자를 힘들게 하지말고 <인터프리터>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총 2명 참여)
kpop20
오랜만에 본 키드먼 모습이군요   
2007-05-17 16:18
hmj9
기대기대 중... 내가 어떻게 통역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틀려진다고 하는 니콜키드먼.. 멋있음... 매우..!!!   
2005-04-2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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