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 많은 검은 머리카락 아래 우수에 잠긴 까만 눈동자,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콧날을 따라가다 사랑을 갈망하는 입술에 이르면 그 모든 것의 소유자는 고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말문을 막아버린다. 차마 똑바로 얼굴을 쳐다보지 못해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순간, 당신은 방금 전 행동을 후회할 것이다. 의지와는 반대로 끈적끈적한 ‘탄성’만을 자아내게 할 ‘육체’ 앞에서 도덕적 윤리와 이성은 거추장스러운 모조품이기에.
음탕하고 건방지게 보일지언정, 차라리 그 새까만 눈동자에 그 물기어린 입술에, 말 한마디 못하더라도, 시선을 떼지 말아야 했는데. 이브의 사과를 떠올리게 하는 ‘가슴’ 그것을 지탱하기엔 애처로워 보일만큼 잘록한 허리 밑으로 선명한 라인을 그으며 엉덩이는 넘실대고 두 다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밟고 서 있는 것 마냥 오만하게 뻗어있다.
<말레나>와 <라빠르망>으로 전 세계의 남자들을 굴복시킨 '모니카 벨루치'가 얄팍한 그네들의 관음증의 대상에서 벗어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데 있다. 아름다움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게 유명잡지 표지를 장식하는 배우 중,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나체의 피사체가 될 수 있는 여인은 오직 그녀뿐이다. 어머니의 젓을 땔 무렵부터 모니카 벨루치의 아름다움은 숨긴다고 숨겨질 문제의 것이 아니었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본질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그녀 스스로 현명하게도 먼저 인정했을 뿐.
인정할 수 없는 아름다움! 결코 ‘현실’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모니카 벨루치’는 아름답다. 헤라의 질투로 인해 마르바덴 숲으로 쫓겨 온 ‘여신’이었던 ‘여왕’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층계 없는 성에서 홀로 500년을 보냈다. 살갗은 썩어 들어가도 아름다움의 ‘본질’인 흑단의 머리칼은 제 빛깔을 잃지 않았다. 남몰래 숨어서 하는 몽정의 상상 속 대상으로도 그녀를 정복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차라리 ‘훈장’에 가깝다. 온갖 보석과 장식도 모자라 형형색색의 옷감으로 그녀를 치장한다고 해도 나체의 아름다움엔 비하길 없다.
벗어야 사는 여자! 차라리 그녀가 현실 속 진짜 여왕이었다면 ‘마르바덴’ 숲에서 날라 온 그녀의 ‘전언’을 여기에 옮겨 적고 있는, 간사하게 나불대는 이 손가락을 잘라주었을 텐데. ‘절대미’(美)에 대한 우리의 맹목적 ‘복종’은 진심이어도 언제나 부족하다.
모니카 벨루치(이하, 모니카): 내가 이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당신의 질문한 그 점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나는 늙은 여왕과 어린 여왕을 동시에 연기하면서 연령에 맞게 목소리도 다르게 내야 했다. 분량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그녀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내, 전체적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에 있다. 무엇보다 이 역할에 욕심을 낸 이유는 ‘테리 길리엄’ 감독 때문이다.
Q: ‘테리 길리엄’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모니카: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우들로부터 정확히 요구하고 끄집어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테리 길리엄 감독과 작업하려면 우선 배우가 ‘융통성’, 정확히 말하면 ‘눈치’가 있어야 한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해요.
‘와우~ 네가 방금 연기한 거 굉장했어. 자, 그럼 이제 정반대로 한번 해봐’(호호) 때문에 그와 일하는 배우는 항상 배우는 자세가 갖춰진 겸손한 사람이어야 할 거다.
Q: 모니카, 당신의 역할이 매력적인 이유가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건 거울여왕이 악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비극적이기도 하다...
모니카: 옳은 지적이다. 당신이 몸속(라푼젤 성을 의미하는 듯)에서 500년 동안 지냈다고 생각해봐라. 생각만 해도 불행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캐릭터는 아이러니하다.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지만 영원한 젊음과 미모를 요구하는 것을 깜빡 잊는다. 이런 이유로 인해 '악'이면서도 슬픈 캐릭터로 거울여왕이 비쳐지는 듯 하다.
Q: 당신이 말 한 대로 <그림형제>는 일반적 ‘동화’와는 다르다. 물론 영화여서 그렇지만 말이다.
모니카: 맞아요!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림형제 동화에는 상상의 여지를 주는 단초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로 뭉치게 되면 새로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시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것들이 판타지와 공포의 조화로 탄생했다. 물론,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공포와 판타지로 잡은 ‘테리 길리엄’ 감독의 능력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림형제>를 인지할 수 있었다.
모니카: 화장(분장)이 정말로 힘들었다. 늙은 여왕에서부터 어린 여왕까지 왔다갔다하면서 영화를 찍어야 했기 때문에 특수분장을 하루라도 안 하는 날이 없었다.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 그 고생들이 결코 헛일이 아님을 알고 너무 기뻤다. 만들어낸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물은 최고다. <그림형제> 덕택으로 내가 나이 80 먹었을 때의 모습도 미리 볼 수 있었고(호호).
Q: 주관적인 입장에서 <그림형제>는 어떤 작품인가?
모니카: 모든 동화에는 뜻 깊은 교훈이 담겨 있는데 영화에서는 은유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암시하는 게 있는 듯한, 이미지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이 작품은 충분한 은유(암시)를 품고 있다고 본다.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가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아마 이런 이미지의 혼란을 좋아하는 영화팬들이 무척 많을 것이다. 그 조건에 부합하는 작품이 <그림형제>다.
자만심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연기를 한 배우이기에 앞서 이 영화에 반한 첫 번째 팬이기에 하는 소리다. 영화가 내가 말한 것과 다르다면 나 자신이 첫 번째 피해자다(호호) 내가 길게 말을 해서 그렇지 결국엔 은유가 매우 강한 작품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이 은유가 이 영화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Q: 모니카, 당신의 얼굴로만 보자면 나이를 판별하기 어렵다(하하). 여전히 아름답고 세월의 주름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나이 드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나 특별한 감정이 있을 듯한데....
모니카: 잘 모르겠다.
Q: 역시! 축복 받은 외모의 소유자인 당신에겐 이런 질문이 통할 리가 없지~
모니카:(하하) 오해하지 마시길. 그러니깐, 내 생각엔 늙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어리고 날씬한 채로 평생 살기를 바라지 않는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에 직접 부딪혀보지 않는 이상 쉽사리 단언하기 힘들다.
모니카: 근대 나이 드는 문제에 있어서 유럽 배우보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샬롯 램플링’, ‘까트리느 드되브’ ‘이자벨 아자니’ 같은 유럽 여배우들만 보더라도 나이 때문에 역할의 한계를 겪진 않는다. 반면에 연기력보단 배우의 겉모습을 먼저 평가하는 할리우드 풍토 속에서 많은 (여)배우들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는 듯하다. 그 결과, 할리우드엔 어린 배우들만 수두룩하다.
Q: 대답을 듣고 보니, 미국에서 영화를 찍고 있지만 당신의 마음은 유럽에 두고 왔다는 소리로 들린다.
모니카: 맞다. 영화홍보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미국을 방문할 뿐이다. 할리우드에 살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일 때문에 미국을 오곤 한다. 사실, 단 한 번도 난 미팅이나 약속 이외의 일로 미국에서 3개월 이상 체류한 적이 없다. 그럴 계획은 앞으로도 없을뿐더러.
Q: 다들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싶어 난리인데 당신은 마치 별 관심 없다는 투다. 비즈니스적인 욕심이 없는 건가?
모니카: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멜 깁슨’은 로마에서 만났고, ‘스파이크 리’는 파리에서 만났으면 ‘테리 길리엄’은 프라하에서 만났다. 그들 모두 누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안다. 만약에 그들이 나를 만나길 원한다면 내가 있는 곳으로 연락하면 된다. 굳이 미국까지 올 필요가 없다.
가끔 유럽영화를 들고 미국을 방문하는 나처럼 말이다. 유럽영화 <돌이킬 수 없는>, <말레나>, <늑대의 후예>를 홍보하러 미국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매우 흥미로운 경험들이었다. 미국과 유럽은 상대방의 영화를 수입하거나 수출한다.
알다시피 난 유럽인이고 기질 또한 유럽인이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국제적인 배우로 활동하고 싶다면 정체성이 뚜렷해야 된다. 난 미국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훌륭한 감독들을 만나 작업하는 건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물론 좋은 유럽영화에 출연하고픈 열망도 강하다. 내가 이렇듯 유럽영화에 애착은 가지는 이유는 유럽영화 시장은 굉장한 에너지로 꿈틀 대는 곳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예술이 결합한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유럽배우로서 그런 문화를 존중하면서 유럽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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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실제로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엄마로서 동화를 아이들에게 읽어준 적 있는가? 아이들에게 미칠 동화의 영향력을 가늠하면서 동화책을 선택하진 않는가?
모니카: 동화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면, 모든 상상들이 현실을 기반으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면 아이들은 공포에 휩싸이거나 슬픔에 잠기는 등, 다양한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아이들이 대게 무서운 이야기를 즐기는데 사실 현실이 더 무서운 존재다. 아주 아주 무서운 동화더라도 세상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거죠. 아이들은 현실 속에서 동화를 계속해서 찾게 될 거다.
Q: 아이를 낳은 후, 자기 자신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모니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이를 갖는 일. 이건 진짜 비교대상이 없을 만큼 중요한 일이다.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고 무엇보다 나 개인에겐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나에게 있어 내 딸은 내 삶의 전부다.
그애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다. 내 딸로 인해 내가 강해졌고 완벽하게 변했다고 느껴왔다. 딸에게 난 항상 최고만을 해주고 싶다.
Q: 딸이 몇 살 인가?
모니카: 이제 11개월째다.
Q: 당신 딸에게 어떤 동화를 읽어줄 건가?
모니카: 『잠자는 숲 속의 공주』부터 읽어 줄 계획이다.
Q: 엄마가 ‘여왕’ 혹은 ‘여신’ 같은 이미지여서 그런지 그에 걸맞게 아이에게 읽어줄 책마저 『잠자는 숲속의 공주』다.
모니카: (하하) 농담하지 마라. 이 이야기는 아주 로맨틱한 사랑이야기다. 이 책을 다 읽어준 후에 좀 더 강한 이야기들을 읽어주고 싶어 그럴 뿐이니, 오해마시길(호호)
Q: 그럼 엄마로서가 아닌 모니카 벨루치,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동화는?
모니카: 『잠자는 숲 속의 공주』(하하~) 우리 모두에겐 왕자님이 필요하기 때문에....
Q: 마지막으로 거울여왕처럼 아직도 어두운 캐릭터에 더 맘이 끌리나요?
모니카: 난 나쁜 여자다(웃음). 좋은 엄마지만 동시에 나쁜 여성이기도 하다. 이상하게 어두운 역할이나 그런 분위기의 영화에 호감이 간다. 어두운 부분이 더 흥미롭지 않은가.
자료협조: 쇼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