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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가게 같은 감독이 되고 싶다” <하이파이브> 강형철 감독
2025년 6월 17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어렸을 때 비디오 가게에서 살았어요.” 학교 끝나고 재미있는 영화를 빌려서 집에 가는 길이 그렇게도 행복했다는 강형철 감독이다.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 신의 손> <스윙키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여 온 감독인데 언젠가는 만화 같은 오락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하이파이브>다. 장기이식으로 초능력이 생긴 평범한 사람들의 거창한 히어로물이 아닌 소소하고 하찮은 이야기를 만화틱하게 그린 작품이다. 첫 번째 관객으로서 스스로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감독을 만났다. 재미있고 다양하고 진정성 있는 영화가 있는, 후지고 부끄러운 영화는 없는 비디오 가게 같은 감독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국내에서 슈퍼히어로물은 거의 불모지와 같은데 어떻게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나.
재미있는 상상, 그러니까 망상과 상상 중간의 어딘가에서 혼자 노는 편이다. 처음에 구상은 <과속스캔들>(2008)때 같이 한 유성권 PD가 <타짜: 신의 손>을 찍을 즈음, 장기기증으로 초능력이 생긴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길래 재미있겠다 하고 넘어갔다. 그러다 <스윙키즈>(2018)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써볼까 해서 만들게 되었다. 오락영화, 만화 같은 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이 강했거든. 이 생각은 처음부터 변함이 없다. 어렸을 때 비디오 가게에서 살았었다. 학교 끝나고 재미있는 영화를 빌려서 집에 가는 길이 그렇게 행복했다. 운 좋게 영화감독이 되고 운 좋게 영화를 찍게 되었는데, ‘저란 감독이 비디오 가게’ 같은 감독이 되고 싶다. 거기 가면 재미있고 다양한 영화가 있는 곳 말이다.

액션 연출은 처음이고 과장된 액션이 주인데, 해보니 어떻든가.
힘들더라. 무한 반복하며 많이 배웠고, 이번에 부족한 부분을 꼼꼼히 메모해서 다음에 업그레이드해 더 잘하고 싶다. 무술 감독님과 스탭들 모두 먼지를 많이 뒤집어쓰고, 일부 건강을 반납하면서 (웃음) 촬영했다. 특히 재인과 진영에게 정말 큰 박수쳐주고 싶다.

하이파이브 5인 방과 빌런까지 6명의 초능력자가 등장하는데 어느 캐릭터를 먼저 구상했는지.

유성권 PD가 처음 제시했던 캐릭터가 ‘완서’(이재인) 였다. 어떤 한 소녀가 언덕길을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가는 그림이었다. 아, 이 친구가 주인공이 되겠구나 싶었다. 엉뚱하고 독특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이로부터 시작하였다. 하드웨어적으로 제일 약해보이는 소녀가 센 힘을 가졌다는 언밸런스 함이 흥미롭겠다 싶었다.

2021년에 촬영했는데 코로나와 배우(유아인) 이슈로 개봉이 많이 지연됐다. 혹시 편집해서 덜어낸 부분이 많은지.
극장에서 개봉하게 되어 ‘이제야 됐다’는 생각이다. 당시 아주 난감했다. 많은 스탭과 자본이 투입되어 많은 시간과 인생의 한때를 바친 작업 아닌가. 영화 외적인 이유로 관객을 못 만날 수 있는 위기에 처했으니, 큰일이구나 싶었다. 만든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후반작업을 다듬고 세상에 내보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한 인물이 주인공이 아닌, 여러 인물의 앙상블인 영화라 외적으로 건드리면(편집하면) 다른 부분이 다치겠더라. 배우는 물론이고 작품으로 봐서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관객에게 큰 잘못을 하는 거라, 덜어낸다기보다 불편할 분이 계실 것 같아 미세하게 다듬은 정도다.

보통 히어로물하면, 거창한 목표나 대의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데 ‘하이파이브’ 5인방은 참 소소한 일에 움직인다. (웃음)
모든 캐릭터는 나로부터, 그러니까 작가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내 욕망이 딱 그 정도인 것 같다. 동네사람들이 초능력이 생기면 무슨 일을 할지 상상해보니, 자기 몸보신이나 이웃들을 도와주는 정도가 아닐까 싶더라. ‘지성’(안재홍)이 폐지 줍는 할머니가 끄는 리어카를 뒤에서 바람으로 살짝 밀어주고, ‘기동’(유아인)이 전자파를 제어해 신호등 시간을 연장해 주는 정도 말이다.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세계관 안의 빌런과 맞서 싸우면서 서로를 지켜주는 정도의 선으로,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했다.

장기 기증자가 누군지, 약간의 운만 띄우고 구체적으로 풀어내진 않았다. 드러나지 않은 세계관이 더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꿈을 크게 그렸다. (웃음) 문신의 기원, 고대로부터 살아온 자, 우리가 아는 신화 속 인물이 실존해 때론 신으로 추앙받고 혹은 악마로 불리기도 했고, 대륙(공간)과 시간을 넘어 초능력을 이어왔다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다 풀려면… (웃음) 이야기의 시작은 지금 정도의 수준으로 미스터리하게 시작해서 코믹한 버전으로 풀어나가는 게 좋겠더라. 이 정도에서 우선 관객을 만나고 나중 일은 미래에 맡기기로 했다.

‘선녀’(라미란)의 능력은 초능력을 이동시키는 능력이다. 색다른 능력이다.
초능력과 그 능력에 따라 문신의 모양을 달리갔고, 각 장기의 기능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지성은 강풍을 쏘니 바람, 기동은 전자파 조절이라 와이파이 같은 모양, 선녀는 신장이라 몸의 순환을 도와주는 장기라서 원형으로. 그리고 한쪽 기능이 떨어지면 다른 쪽 신장이 기능을 보완해 주니까 이를 인간에 대입하여 그들의 관계를 이어준다는 설정이다. 평소 라미란 배우를 너무 좋아해서 꼭 같이 작업하고 싶었고, 역시나 너무 잘해서 놀랐다. 정말 감탄해마지 않았다. 현장에서 모니터링하면서 디렉션을 줘야 하는데 멍때리면서 지켜만 봤던 것 같다.

췌장의 초능력은 어떻게 구상한 건가.
췌장의 초능력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무협지에서 따왔다. 무협 만화에서 보통 악인들이 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인데 남의 능력을 흡입하는, 빨아들이는 능력이다. 영화적 허용 범위 안에서 무협지의 힘을 빌렸다.

췌장을 이식받은 사이비 교주로 무려 신구 선생님이 등장한다. 귀한 경험이었겠다.
선생님을 너무 모시고 싶었고,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영광을 놓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선생님이 선선히 수락해 주셨다. 선생님은 어떤 영화를 드려도 어마어마한 연기를 해 주실 분이다. 선생님이 평소에 식사자리에서 말씀하시는 것만 봐도 흥분이 되고 빠져들더라. 음식의 맛이나 메뉴에 관해 말씀하셔도 명배우의 연기를 보는 느낌이었다.

후반부 사이비 교주인 신구 선생님과 박진영이 체인지 되는 것이 영화의 킥이 아닌가 한다. 캐스팅 비하인드가 있다면.
지성이 완서에게 ‘왜 자긴 아저씨라 부르고, 저 사람은 오빠로 부르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그때 완서가 ‘잘 생겼잖아’ 이러는데, 이 대사를 꼭 쓰고 싶었다. (웃음) 처음에 박진영이라는 배우를 미팅하고 리딩해보니 너무 괜찮고 놓치고 싶지 않더라. 신구 선생님의 말투를 완전히 따라하는 것도 아니고 젊은 버전으로 어색하지 않게 표현하는 점이 정말 좋았다. 완서와 교주가 벌이는 액션씬에서 진영이 공중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 보면서 ‘하늘에서 진영이가 떨어졌다, 복이 떨어졌구나!’라는 생각을 매일 했었다.

방금 말한, 막바지에 벌이는 완서와 교주의 액션이 극의 하이라이트인데, 이재인이 너무 잘하더라.
캐스팅 기준이 역할과 어울리냐였다. 아무리 스타 배우이고, 미남 미녀여도 적역이어야 했다. 재인 배우는 영화 <사바하>로 신인상을 탔을 때 처음 봤다.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는데 어린 친구가 반짝반짝 빛나면서 너무 매력적인 거다. 당시 <하이파이브>를 구상 중이라, 그때부터 인스타를 팔로우하면서 지켜봤었다. (웃음) 기회가 되면 꼭 같이 작업하고 싶었고, 그 후 오디션을 통해 만났다. 완서 역에 다른 후보도 있었지만, 역시 제일 적역이었다. 액션도 너무 훌륭하게 소화해 주었다. 기초체력부터 차근차근 무술 감독과 함께 그 능력을 키워나가는 등 정말 많이 노력해 주었다. 참, ‘완서’라는 이름은 평소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의 이름에서 따온 거다. 평소 작가님의 글을 참 좋아하는데 마침 초고를 쓸 때 책장에 작가님의 책이 눈에 띄더라.

영화 초반의 카트체이싱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웃음)
하이파이브들의 소품을 이용하여 억지스럽지 않은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선녀’가 프레시 매니저라 요구르트 카트가 있고, 여기에 그들이 타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은 거다. 카트 자체는 느리지만, 완서가 엔진 역할을, 기동이가 내비게이터를, 그리고 지성이 요구르트 폭탄을 싸주는 식으로 하면 괜찮겠더라. 동네방네 다 돌아가면서 꽤 오랫동안 찍은 시퀀스인데 관객이 부디 재미있게 봐 주셨으면 한다.

영화의 웃음 상당부분을 안재홍이 책임진다. 평소 친한 사이라고.
<하이파이브> 대본을 제일 먼저 재홍에게 주었다. 무명 때부터 잘 알던 사이고, 내 영화에 살짝 나오지만 여하간, 세 번 같이 작업한 적이 있다. 동네 친구라 자주 만나는데 ‘나 사실 이런 거 썼는데 나와주면 좋겠다’고 얼른 글을 주었다. 코미디 때문에 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아름다운 연기와 가장 부합되는 배우이기에 그렇다. 단순한 코믹을 넘어 유머가 출중한 명연기를 하는 배우다.

캐릭터가 여럿 등장시만, 설명적이지 않은 점도 <하이파이브>의 장점이 아닌가 한다.
설명적인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의상이나 말투, 하다못해 상처 하나로도 그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고 설명을 대신할 장치는 많다. 그간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를 해와서 숙달되어 그런지 힘들지 않았다.

<스윙키즈>(2018) 이후 7년 만에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그 사이 업계 상황이 많이 변했는데 체감하고 있는지.
관객이 극장을 가지 않는다, 극장 산업이 죽었다 같은 말이 많은데 안타까운 부분이다. 극장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만약 극장이 사라진다면 너무너무 슬플 것 같다. 극장은 어렸을 때부터 놀이터였고, 돈만 생기면 극장에 갔다. 극장의 냄새며 설렘이 너무 좋다. 이런 극장에 내 영화가 걸린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다.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 관객이 극장에 와서 볼 수 있는 영화, 여럿이 함께 웃고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게 극장에서 보는 맛이지’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 영화 말이다. 열심히 만들 것이고 <하이파이브>가 그 작은 마중물이 되기를 기원한다.


사진제공. NEW


2025년 6월 17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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