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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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이 넷플릭스 <수리남>에 이어 두 번째 시리즈 <나인 퍼즐>로 시청자를 찾는다. <나인 퍼즐>은 감독에게 이례적인 작품이다. 다른 작가의 대본 연출은 처음인 데다 최초로 하는 장르인 추리물에, 게다가 주인공 캐릭터가 여성인 점도 처음이다. 이렇게 여러모로 처음이 겹친 <나인 퍼즐>의 세계관을 세우는 데 있어, 윤 감독은 리얼보다는 만화적인 세계에 초점을 맞춰 구현했다. 이에 걸맞은 의상, 공간, 캐릭터, 미술 등의 새로운 시도로 시청자를 현실과 만화 사이 어딘가로 이끈다. 범인이 벌이는 연쇄살인에 대해 ‘어떻게’ 보다는 ‘왜’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라고 소개하는 윤종빈 감독을 만났다. OTT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하며, 차기작은 군인들이 주인공인 윤종빈의 색깔이 뚜렷한 영화라고 귀띔해 기대감을 높인다.
(*<나인 퍼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범행 과정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말에 대해 호불호가 갈린다.
네이버톡을 봤는데 상상력과 추리력이 정말 대단하시더라. ‘한샘’(손석구)을 범인이라고 생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웃음) 처음 대본을 받고 관객 입장에서 읽었는데, 추리 마니아까지는 아니라서 작가님의 의도대로 낚였던 것 같다. 이 사람인가 싶으면 아니고, 계속 범인이 누굴지 궁금해하며 읽었었다. 추리 소설, 추리 드라마, 추리 영화 등을 보면 초반 설정이 세기 때문에 자극적인 면이 있고, 결말에 가서는 반전강박이라고 할지 이런 부분 때문에 무너진 작품이 많은데 <나인퍼즐>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보다 ‘왜’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했다. 관객이 각자 기대했던 엔딩과 달라서, 이에 따른 호불호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수리남> 이후 두 번째 시리즈다. 추리물은 처음인데 해보니 어떻든가.
<수리남> 이후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서 시리즈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월광’의 모회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 이 대본을 봐 달라고 하더라. 전체를 연출할 시간은 안 될 것 같아 처음 1, 2화 정도만 직접해서 전체 윤곽만 잡는 정도로 가려 했다. 그런데 배우들도 그렇고, 플랫폼에서도 원해서 끝까지 다 하게 됐다. 안 해봤던 장르라 재미있었다. 추리물을 여러 번 해봤으면 오히려 힘들었을 것 같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든 느낌이 중요하다고 봤고, 이에 충실하게 연출하고자 했다.
시리즈 연출에 좀 익숙해졌을까. (웃음) 다시 시리즈를 연출할 생각이 있는지.
<수리남> 때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영화를 찍는 사람으로서 6부작인 <수리남>은 평소의 3배, 11부작인 <나인퍼즐>은 5배를 찍어야 했거든. 그런데 촬영기간은 여기에 맞춰 길지 않으니, 물리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떨 때는 공장장 같은 자괴감도 들고! 두 번째라 수월한 점도 있었다. 속도감이 몸에 익었고 이번에는 B팀도 운영했다. <수리남> 때는 A팀만으로 촬영했거든. 요즘은 OTT 시리즈라는 하나의 새로운 매체가 생긴 것 같다. 기존의 극장에서 즐겼던 스릴러나 공포 같은 장르의 니즈를 OTT가 많이 해소해 주는 것 같다. 상황이 맞으면 다시 연출하겠지만, 8부작까지가 맥스다. (웃음) 그 이상은 체력적으로 무리다.
<나인 퍼즐>이 여타 추리 스릴러와 차별점이 있다면.
일부러 차별점을 두려 하지는 않았다. 연출하려고 보니, 이런 일이 현실에서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나’(김다미)와 한샘 같은 인물들이 현실에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추리 소설이 아니라 추리 만화라면 어떨까 하고 한 번 비틀어 생각했다. 리얼보다는 만화적인 세계, 현실과 만화 사이에 있는 어딘가 말이다. 여기에 맞춰 인물도 색다르게 가져갔다. 형사인 한샘은 비니를 쓰고 문신을 하고, 이나는 안경을 쓰고 어린이 같은 면이 있는 행동을 하는 등 변화를 주었다. 이에 따라 공간이나 의상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잘 보면 경찰차나 제복 같은 경우도 현실 그대로 해서 사실감을 살리는 것이 아닌 현실과는 다른 모습이다. 만화적 세계관이라는 걸 초반부터 시청자에게 설득할 필요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지금 같은 스타일이 나오게 됐다.
현실과 만화 사이 어딘가의 세계관이라… 시청자들이 색다르다고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역시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은 호불호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기존의 추리 스릴러 방식대로 연출했다면 너무 많이 봐 온, 진부하다는 피드백이 있지 않았을까. 결국 양날의 검이라는 생각이다. 초반의 낯섦만 조금 견디면 충분히 시청자를 설득시킬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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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부터 붉은색을 배경으로 피에로가 등장하는 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공간이나 미술에 있어서 주안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채도도 낮고 무채색에 가까웠다면, 이번에는 색을 과감하게 많이 써보자 했다. 레드를 주로 쓰다 보니 강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화재, 피 등 붉은 계열을 중심으로 다양한 색을 활용했는데, 경찰서는 주황색, 한샘의 집은 초록색 등 특별한 컨셉트가 있기보다는 전체적인 톤이 무거워지지 않는 데 주안점을 뒀던 것 같다. 공간의 컨셉트는 이 작품의 큰 테마 중 하나가 재개발이라, 옛것과 새것의 대비를 줬다. 잘 보면 경찰청과 더원시티는 완전히 신축이고, 한강 경찰서는 옛날 건물이지만, 내부는 새로 인테리어를 했고, 한샘의 집은 오래된 아파트로 마치 늙은 할아버지가 사는 집 같은 느낌으로 공간의 대비를 줬다.
이나와 한샘의 캐릭터에서 어느 면을 부각하고자 했는지.
우리가 프로파일러라 하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보통 프로페셔널하고 엘리트적인데 이나는 이런 부분에서 벗어난 인물이라 낯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걸크러시 혹은 퇴행한 아이 같은 느낌 사이에서 아마도 걸크러시 같이 갔다면 진입장벽은 덜했을 텐데 진부하다고 느꼈을 것 같다. 김다미 배우와 여러 차례 의논해서 지금의 버전으로 최종 결정했다. 대신에 아이 같은 모습이 지속되면 시청자가 물리는 순간이 오기 때문에 서서히 톤에 변화를 주었다. 굉장히 유아적인 느낌에서 점차 성장하는 방향으로 미세하게 설정했다. 한샘은 허당미를 보이려 했다. 되게 T(사고형) 같고 까칠해 보이는데 F(감정형) 같은 모습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유교보이 이기도 하다.
결말에 여지를 남겨두는데…
시청자 입장에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모방범죄가 일어난 것, 또 다른 하나는 범인과 함께 퍼즐 연쇄살인을 기획한 누군가가 있어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개인적으로 후자 쪽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범행을 준비했기 때문에 혼자보다는 조력자가 있다는 가정이 좀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개성과 색깔이 강한 캐릭터와 세계관을 구축했고, 마무리도 확장성이 있다. 혹시 시즌2를 염두에 둔 건가.
확장성을 염두에 뒀다기보다 연출하는 입장에서 시즌제의 가능성을 닫아 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시즌2는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야 나오지 않을까. 시청자, 플랫폼, 제작진이 모두 원해야 가능할 거다. 특히 <나인 퍼즐>은 내가 쓴 대본도 아니라서 작가의 의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10~11화에서 재개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올 때 용산 참사가 떠오른다는 의견도 있는데.
그렇잖아도 작가님께 그 의도를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하더라. 용산참사는 공권력이 무력으로 제압하다가 발생한 참사이고, <나인 퍼즐>은 용역업체가 사고를 친 주체라 차이점이 있다. 오히려 용산참사보다 한국의 재개발 사례에서 특정업체가 굉장히 악질적으로 원주민을 내쫓은 경우가 있어서 이런 부분을 참고했다.
지진희, 이성민, 박성웅, 황정민 등 유명 배우가 총출동했다. 그간 쌓은 인맥을 총동원했다고. (웃음)
퍼즐 희생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고, 다들 시체로만 나오고 대사도 없다. 한데 뒤에 이 사람들 얘기가 나오거든. 때문에 처음 등장에서 시청자에게 각인이 돼야 했고, 그래서 존재감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정민 선배의 경우, 같이 식사하다가 시리즈를 하게 됐다고 하니, 도와줄 일 없냐고 물어봐서 부탁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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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은 넷플릭스, <나인 퍼즐>은 디즈니+와 협업해서 두 글로벌 플랫폼을 모두 경험해 봤는데 차이점이 있을까.
플랫폼에 따라 제작방식이 다르기보다는 공개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넷플릭스는 한번에 전체 공개하고, 디즈니+는 나누어서 공개하지 않나. 어느 방식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각기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나인 퍼즐>의 경우는 한 번에 공개하는 방식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스포일러도 있고, 여러 반응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한편으로는 나눠서 공개되면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 관심과 기대치를 높이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영화 <공작>(2018)이 벌써 7년 전이다. 영화가 그립지 않은지.(웃음)
어쩌다 보니 시리즈를 연달아 연출했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본업이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시리즈를 하면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영화는 뭘까, 요즘에는 OTT 영화도 많은데, 그렇다면 두시간 내외이면 영화인가 하는 물음도 해봤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극장 상영을 전제로 한 작품이 영화라는 거다. 스크린으로 볼 때 느끼는 예민함과 섬세함이 있다. 이렇게 스크린 상영을 전제로 모든 부분을 세팅해서 만든 것이 영화가 아닌가 한다. 사실 영화가 그립다. 요즘 극장 상황이 좋지 않고 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영화로 내년 봄에 촬영에 들어간다. 내 원래 색깔로 돌아가서 (웃음) 군인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재미있게 해보려 한다.
영화인들과 근래의 위기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는지.
다들 너무 힘들어하더라. 외국은 코로나 이전의 7~80% 관객을 회복했다는데 우리나라는 절반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양한 문제가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OTT가 너무 빨리, 보편화됐기 때문인 것 같다. 크리처, 액션, 추리 등 장르 영화의 많은 부분을 OTT가 해소해주는 것 같다. 극장을 찾지 않으니 관객수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투자가 안 되고 제작을 기피하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인 것 같다. 제작비가 너무 올라 힘든 부분도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여러가지 지원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업계도 합병 등 여러 상생의 길을 모색하려 노력하는 것 같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025년 6월 23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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