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악마를 지키는 아르바이트? 세상 무해한 위로 <악마가 이사왔다> 안보현 배우
2025년 8월 25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 <재벌X형사> 등 남성적인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 왔던 배우 안보현이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길구’ 역으로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청년 백수 ‘길구’는 아랫집에 새로 이사 온 ‘선지’(임윤아)에게 한눈에 반한지만, 낮과는 다른 밤의 선지(밤선지)를 목격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휘말린다. 얼떨결에 새벽마다 악마로 변하는 밤선지를 지켜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길구. 나름의 아픔과 고충을 가지고 있던 그는 밤선지를 지키며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누군가의 아픔을 듣고, 그 상처를 달래기 위해 과감한 도전을 하게 된다. <베테랑 2>에서 고강도 액션으로 감탄을 자아냈던 그가, 첫 주연작 <악마가 이사왔다>에서는 세상 무해한 웃음을 선사한다. 스크린에 자신의 얼굴이 걸린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는 안보현을 만났다. 너드미와 멍뭉미의 반전 매력을 장착한 그의 말을 들어봤다.

스크린 첫 주연작인데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웃음)
감회가 새롭고 추억도 곱씹으면서 재미있게 봤다. (웃음) 울컥한 부분도 있었고. 열심히 촬영한 작품이라, 2년을 기다렸지만 여름에 개봉하게 되어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스크린에 내 얼굴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감개무량했다. 많은 분이 재미있게 극장에서 봐주셨으면 한다. 내가 느낀 감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

어느 부분에서 울컥했나.
밤선지를 보낼 때 주문 아닌 주문을 외우면서 보내준다. 밤선지에 대한 길구의 마음 때문에, 여동생 같기도 하고 측은지심이 있어서 ‘몸에서 나가라’고 말할 때 굉장히 많이 울었다. 너무 많이 울어 눈이 퉁퉁 부어서 쉬다가 재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그간 강인하고 남성미가 풍기는 역할을 주로 해왔다. 길구는 이전에 보여준 모습과는 다른 캐릭터인데, 어느 부분에 끌렸는지.
강인한 캐릭터를 고집한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신체적인 부분이 맞아떨어져서 자주 찾아 주신 것 같다. 이전 캐릭터와 다른 모습이라 일부러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도전일 수 있다. 안보현과 길구의 교집합이 있을 것 같아 한번 해보고 싶었다. 세상에 있을 법한 친구라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내성적이고 상처를 잘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 어릴 때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확 다가왔던 것 같다. 생각의 기로에 섰을 때, 주변에서 위안받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는 면이 길구와 내가 오버랩되더라. 나만의 길구로 잘 만들어 가고자 했다.

오컬트 로맨스 코믹 드라마 등 복합장르라 흥미롭지만, 한편으로는 각 장르의 색깔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인상이다.
여러 장르가 혼재되어 있어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공포 요소는 사운드와 결합되어 무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극장에서 보시면 좋지 않을까 한다. 또 낮의 선지(낮선지)에게 한눈에 반한 길구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집에 있는 우유를 원샷하고 사러 가는 등 그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설레는 지점이 많다. 길구와 낮선지가 서로 표현은 잘 못하지만, 둘 사이에 충분히 로맨스 텐션이 있다. 또 후반부로 가면서는 힐링의 요소도 있어서 장르가 잘 어우러졌다고 생각한다.

길구는 이상근 감독이 많이 투영된 캐릭터라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 감독님의 디렉션은 어땠는지.
정말 그렇다. (웃음) 그림으로 묘사된 콘티를 받고 실제로 표정을 지으면 어떨지 궁금했는데 감독님이 직접 묘사해 주셨다. 감독님이 투영된 캐릭터라 감독님을 따라하는 것이 답안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따라했다. 그리고 시선, 입모양까지 디테일하게 디렉션을 주신다. 예를 들면, ‘오른쪽 눈썹 올려주세요’ 등등.

이상근 감독은 실제로도 당신과 닮은 점이 많다고.
처음에 감독님이 MBTI를 물어보셔서 INFJ라고 하니 자신도 그렇다고 똑같은 성향이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런지 둘이 있으면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잘 소통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게 해주는, 무해한 분이시다. 그간 강인한 캐릭터를 주로 해 와서 길구에 ‘이입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이 초반에 있었는데, 감독님이 감사하게도 안보현을 이길구로 만들어 주셨다. (웃음)

초반에 인형뽑기에 몰두했던 청년 백수 길구가 점차 적극적으로 되어간다. 특히 제주도로 항아리를 찾아가는 부분에서는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길구를 추동한 힘은 무얼까.
밤선지에 대한 감정이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애정이 있어서 그를 도와주려 했던 것 같다. 더불어 밤선지를 위한 행동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누군가를 구원하면서 자기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무언가 닫혀 있던 마음을 공유하고, 타인의 아픔을 들으면서 과감하게 도전하는 과정에서 이 친구가 성장했다고 느꼈다. 길구만의 방식으로 내면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했다고 본다.

밤선지와 낮선지, 두 명의 상대와 연기한 셈인데 임윤아와 호흡은 어땠나. 무려 소녀시대 아닌가! (웃음)
군대 있을 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기였다. (웃음) 내가 윤아 씨와 같이한다고 하니 친구들이 믿지 않으면서 ‘네가 뭔데?’ 이러기도 하더라. 다가갈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는 분인데 실제로 만난 윤아 씨는 굉장히 털털하고 사람 냄새 나는 분이었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밤선지에서 그 매력이 특히 잘 보였던 것 같고 덕분에 길구의 멍뭉미와 너드미가 부각된 듯하다. 밤새 촬영하고 새벽에 복국집에서 소주 한잔하고 헤어졌다가 다시 밤에 만나는 등 윤아씨 팀과 같이 자리를 여러 번 했었다.

길구와 밤선지가 한강으로 뛰어드는 장면은 하이라이트 중에 하나인데, 한 번에 촬영했다고.
그때 비가 왔던 걸로 기억한다. 구조대원분들과 협조가 잘 되어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윤아 씨가 너무 과감하게 뛰어드는 걸 보고 ‘나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다시 찍을 수 없는 촬영이라, 과감하면서도 재미있게 찍었었다.

영화 <베테랑 2>에서는 파워풀한 고강도 액션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도 액션이 있기는 한데 때리기보다 많이 맞았다. (웃음)
맞는 것에는 자신 있다. (웃음) 액션씬이라기보다 뚜까 맞는 씬이라고 생각하고 ‘길구스럽게’ 맞았다. 멋있게 맞기보다 좀 아파하고 귀엽게, 신음 소리도 내는 등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길구화되더라. 상대역인 신현수 배우가 잘 해줘서 편안하게 촬영했다.

<악마가 이사왔다>를 통해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 같다.
이 작품으로 인해 제일 크게 얻은 건 자신감이다. 나도 이런 연기를 해보고 싶다, 도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물을 보고 나니까 앞으로 또 다른 새로운 역에 도전할 수 있겠다 싶다. 어차피 새로운 장르와 역할은 늘 있는 건 아닌가. 이번 경험을 통해 다방면으로 스스로를 알아갈 수 있었다.

의리파로 유명하더라. 연기력뿐만 아니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가 있다면.
다른 선배들처럼 많은 작품을 한 것은 아니지만, 현장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다. 모가 난 분도 있고 편한 분도 있겠지만, 잘 어우러져야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 나 역시 가능한 한 잘하려 노력하고 있다. 의리라기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 남자들 사이에서는 의리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무명 시절에 고향(부산) 친구들의 도움도 컸다고. 당신의 첫 주연작 개봉에 크게 기뻐하겠다.
부산은 물론이고 제주도에서도 오겠다는 친구가 있다. 농담처럼 단체 티 맞춰입겠다고 하기도 하고. (웃음) 스물네 살에 서울에 올라와서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보내준 적도 있고, 또 도배사 하는 친구는 내가 이사할 때마다 항상 올라와 도배해주었다. 생각해 보니 처음 집의 냉장고도 친구들이 곗돈으로 해준 거다. 툭 던지듯이 무심하게, 응원하는 친구들의 마음이 내게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서 내가 영화배우라는 걸 좀 더 피부로 느끼는 것 같다. 부산 남포동 영화 거리에 내 포스터가 걸리니까, 신기하다고 찍어 보냈더라. 드라마와는 또 다른 설렘이다. 지금은 편하게 소주 한잔에 삼겹살을 살 수 있는 위치가 되어서 뿌듯하기도 하다.

‘보현아 잘했다!’하고 스스로 칭찬할 때가 있는지. (웃음)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지나갈 때마다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곤 한다. 여기서는 일용직 알바를 다녔지, 저기서는 천정에 쥐가 다녔는데, 또 태풍에 침수돼 이사비를 받고 나간 적도 있지 하면서, 그 당시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가 인복이 있는 것 같다. 한번은 아르바이트했던 가게의 점주분을 찾아뵌 적도 있다. 옛 기억이 떠오르면서 ‘잘 버티었다’ 싶다.

복싱선수 출신인데, 어떻게 하다가 연기와 인연이 닿았나.
뼈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많이 당해서 부모님이 반대하셨었다. 복싱을 그만두고 직업 군인을 하려고 하다가, 군대 가기 전에 키가 크다는 이유로 모델일을 하게 됐다. 당시에 영화 <주먹이 운다>(2005)를 보고 내가 연기는 못해도 복싱하는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여러 인생을 살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오더라. 복싱한 덕분에 끈기 하나는 뒤지지 않는 것 같다. 당시 내게 서울은 굉장히 타지라, 고민 끝에 힘들게 올라온 거였다. 마음속으로는 10년을 잡고 온 거였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버틸 수 있었다. 어릴 때 훈육한 코치님의 고된 훈련이 지금의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완전히 새로운 길을 걷게 됐는데 연기는 어떤가.
팔자 같다. (웃음)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빨리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갔을 것 같거든. 사실 처음 서울에 와서는 사투리를 쓴다는 데 부끄러움이 있었다. 알바하면서, 또 지하철을 타면서 계속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니 어느 날 마치 영어처럼 표준어가 되더라! 이때 노력하면 된다고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 비록 연영과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부닥쳐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또 역할을 위한 증량과 감량도 운동했던 덕분에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운동할 때 키가 187cm인데 64kg 체급에 나갔을 정도로 왜소했는데 지금은 83~84kg 정도다.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관리하지 않으면 100kg까지 나갈 수 있다. 평소 신경 쓰다 가도 왜 입이 터진다고 하지 않나. 한 번 꽂히면 라면 4~5개, 치팅데이 잡으면 초코파이 한 박스씩 먹곤 했었다. 그래서 관리와 운동을 꾸준히 한다. 지금도 주 3회 이상, 많이 할 때는 일주일 꼬박 운동하기도 한다. 연기 9년차인데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다. 계속 도전해 갈 것이 있어서 앞으로도 즐기면서 할 것 같다.



사진제공. ㈜CJ ENM


2025년 8월 25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