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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채에서 양정숙까지, 팔색조! 디즈니+ <파인: 촌뜨기들> 임수정 배우
2025년 8월 27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양정숙 모든 장면 장면이 귀하고 기억에 남아요” 배우 임수정이 연기 인생 25년 만에 첫 악역을 맡았다. <파인: 촌뜨기들> 속 ‘양정숙’은 화려한 언변으로 좌중을 휘어잡고 거친 남자들 틈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인물이다. 빠른 두뇌 회전으로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캐릭터지만, 밉지 않고 묘한 매력을 풍겨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최근 젠지 세대에 다시 소환되어 화제가 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의 ‘송은채’부터 <파인: 촌뜨기들>의 양정숙까지. 팔색조 같은 매력을 지닌 임수정을 만났다. ‘의외로 잘 어울리네?’라는 반응에 기분이 좋다고 공개 소감을 전한다. 김지운, 박찬욱, 최동욱 등의 내로라하는 감독과 함께한 20대 때 느꼈던 연기의 재미를 다시금 맛보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OTT 첫 작품이다. 공개 소감은.
오늘 30일 넘게 디즈니+에서 1위를 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작품에 대한 평가도 좋은 것 같고, 캐릭터 하나하나를 좋아해 주셔서 기쁘다. 특히 양정숙 캐릭터에 대해 많이 언급해 주셔서 감사하다.

한마디로 악녀, 속된 말로 ‘쌍년’이라 할만한 인물인데 (웃음), 이런 악역은 처음 아닌가. 어느 면에 끌렸는지.
제작진에서 원작 웹툰과 각색한 대본을 둘 다 주시며 검토해 보라고 하셨다. 원작도 재미있지만, 각색된 대본이 너무 재밌더라. 원작 속의 양정숙은 내가 느끼기에는 더 악독하고 무시무시한 면이 많은 인물이다. 그야말로 틈이 하나도 없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감독님께 내게서 어떤 모습을 원하시는지 그 의도를 물어보니, 감독님이 해석한 양정숙은 ‘관석’(류승룡) 일행을 비롯한 거침 남자들 틈바구니에서도 기세가 눌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하시더라. 현란한 언변으로 그들을 휘어잡는 인물이면 좋겠다 하셨다. 그래서 원작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센 여성’의 전형성에서 조금 벗어나 보고자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마음껏 끄집어내어 나만의 양정숙을 만들고 싶었다.

새침하고 귀여운 면도 있고, 능구렁이 같기도 하고, 또 지를 때는 한껏 내지르는 새로운 악녀 캐릭터가 아닌가 한다. 디테일을 어떻게 다듬어 갔는지.
악역은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 1~2화를 찍는데 감독님이 쓱 오셔서 ‘눈빛이 아직 착하다’고 하시는 거다. 그래서 대사 톤을 바꿔보고, 포즈도 바꿔보고 또 분장이나 메이크업에 따라 외형적으로 포스를 세게 하기도 하는 등 변주를 거쳤다.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양정숙에게 몰입되더라. 그래서 그런지, 감독님이 내가 뭘 하든 좋아해 주셨다. (웃음) 현장에 들어가면 ‘양정숙처럼 들어온다고, 이제 사모님이 다 되셨다’고 흐뭇해하셨다. 인물에 몰입하다 보니 앙칼진 목소리 톤, 일그러진 얼굴 근육, 매서운 눈빛 등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내적으로는 양정숙이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가 그녀의 가치관, 신념, 사랑관, 욕망, 감정,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등 양정숙이라는 인물을 대변하기 때문에 이런 대사를 어떻게 살릴지에 집중했었다.

1970년대 부잣집 사모님 스타일링이 일단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때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분장팀, 의상팀과 여러 레퍼런스를 함께 보면서 결정해 나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70년대 유행했던 메이크업이 다양했는데 그 중에 일관된 것이 있어서 포인트 삼았다. 바로 날카롭고 각도가 높은 눈썹이다. 지금보다 눈썹을 높이 그리는 것이 특징이라, 원래 눈썹과 이미 사이에 새롭게 그렸다. 이 외에 볼륨감을 준 머리, 붉은 입술 등 당시 한국 여성의 문화 취향을 보여준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관석’같은 거친 남자들, 능구렁이 같은 남편 ‘천 회장’(장광) 앞에서도 쫄지 않는 인물인데, 현장에서 연기하면서도 마음을 다잡았을 것 같다. 워낙에 연기 달인들 아닌가.
연기 베테랑 선배님들, 그리고 신인이나 후배님들과 같이 작업하다 보니 내 (연기) 능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나는 서울팀이고 관석 일형은 목포팀이라 직접 만날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감독님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와 짧은 영상을 통해서도 얼마나 연기를 찰지게 하는지! 대사와 애드립을 넘나들면서 실제 상황처럼, 실제 인물처럼 연기하고 있는 거다. 작품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나도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다. 서울팀은 주로 실내촬영이라 한 번씩 놀러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목포팀이 진짜 멀리 있어서… 가지는 못했다. 무더위에 그렇게 호흡 맞춰가며 연기하는 것이 부럽기도 했고 동시에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더 잘해야 한다는 동기부여도 됐었다.

양정숙이 ‘오희동’(양세종)에 대해서는 나름의 순정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다. 그녀의 감정은 무얼까.
사랑에 있어서 양정숙은 조금은 서툰 인물이다. 그녀의 인생에 스쳐간 전남편 ‘전출’(김성오)과 현 남편인 천 회장을 보더라도, 오희동은 결이 다른 남자 아닌가. 최소한의 양심과 선함을 지닌 인물이기에 양정숙이 대번에 끌렸을 것 같다. 감독님께 ‘정숙이 희동을 사랑했을까요?’라고 물어봤었다. 감독님과 내린 결론은, 처음에는 선물로 생각하고 지나갔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속에 조금씩 그 감정이 자랐을 거라는 거다. 그래서 100만 원을 꿔달라는 희동의 부탁에, 평소 정숙답지 않게 ‘갚지 않아도 된다’고 선뜻 돈을 내주지 않나. 이 부분은 원작과 다른 양정숙의 모습이다. 원작에서 양정숙은 관계에서도 능수능란하고 무심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감독님은 여기에 인간적이고 여성적인 결을 덧입히셨다. 돈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양정숙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여전히 순수하고 서툰 인물, 바로 이 지점에서 캐릭터의 입체감이 드러나는 것 같다.

양정숙을 응원하는 시청자도 많던데. (웃음)
솔직하게 욕망을 드러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지금 시대에 맞는 인물인 것 같다. 유튜브 쇼츠를 봤는데 누군가 ‘테토녀’(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기질이 두드러지는 여성)라고 하길래, 이렇게도 바라보는구나 싶어서 재미있었다. 악역이지만, 시원시원하고 멋있어서 양정숙이 다 가지면 좋겠다는 반응도 있더라. (웃음)

연기하면서 힘들었던 장면은.
사실 힘든 장면도 있었다. 소리 톤을 높이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이 몇 번 있는데 이 장면에서 승부를 봐야 했거든. 관석과 희동이 서사의 중심이라면, 양정숙은 그 곁에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장면과 대사를 통해 켜켜이 서사를 쌓기보다 장면 하나하나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재미있게 촬영했는데 다행히 시청자도 좋아해 주시더라. 역시 스스로 즐겨야 캐릭터와 일체감이 생기고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은 현장이었다.

희열을 느낀 장면이나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장면을 꼽는다면.
양정숙의 모든 장면이 귀하고 소중하다. 말했듯이 장면 하나로 인물의 감정과 신념, 여성으로서의 면모 등 모든 걸 보여줘야 해서 그렇다. 그럼에도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양정숙이 목포로 관석을 만나러 가서, 관석과 김 교수(김의성) 등을 앞에 앉혀 두고 흥정의 대가로서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그들을 설득하는 장면이다. 대사가 너무 길어서 몇 테이크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선배님들도 그런 마음으로 각오하고 들어오신 것 같더라. 그런데 내가 3~4분 정도 좌르르 대사를 쏟아 내어 첫 테이크에 오케이가 나서 빨리 끝나니 ‘잘했어’, ‘수고했어’ 하며 박수 쳐주셨다. (웃음) 이때 정말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임했었다. 앞에 선배님들이 쭉 앉아 있는 데다 양정숙이라는 인물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라 시청자를 설득해야 했거든. 그녀의 영리함, 언변, 포스를 모두 보여줄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양정숙의 엔딩이 명확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지가 있다.
모호하게 열린 결말처럼 연출하신 거로 알고 있다. 그의 생존 여부를 확실하게 비추지 않는다. 엔딩에 대해서 감독님이 정말 많이 고민하셨다. 디즈니+, 윤태호 작가님과 결말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누셨고, 그 결과 지금의 결말에 다다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후는 생각하지 않고 그 순간에만 몰입해서 촬영했었다.

<범죄도시>, <카지노> 등 강윤성 감독님의 전작을 보면 여성 캐릭터가 많지 않다. 스스로 여성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고 밝힌 적도 있는 감독님인데 옆에서 지켜본 감독님은 어떤 분이든가.
그러잖아도 그간 여성 캐릭터가 거의 없었고, 유명한 여배우와 함께한 것은 처음이라고 겸손하게 말씀 주셨다. 그래서 양정숙을 연기하면서 조금은 다른 악역, 여성에게 공감받거나, 흥미있는 악역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있었다. 감독님은 평소에도 굉장히 겸손하시다. 그리고 내가 해석한 양정숙을 아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다. 계속 ‘좋아요, 좋아요’의 연발이었다. 메이킹 필름을 보면 이런 감독님의 모습이 잘 담겨있다. 감독님이 좋다고 하니, 나 역시 진짜 잘하는 줄 알고 (웃음)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었다. 배우들이 신나게 놀 수 있게끔 감독님이 판을 잘 펼쳐주셨고 편안하게 해주셨다.

최근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가 젊은 세대에게 다시 인기인데 알고 있는지.
너무 감사하다. 사실 지난해가 방영 20주년이었다. 웨이브에서 감독판으로 리마스터링해서 공개되기도 했다. 예능 ‘지구오락실’(지락실)에서 언급해서, 당시의 ‘미사 폐인’들이 다시금 추억속에 잠긴 것 같다. 새로 유입한 MZ, 젠지들이 막 울면서 봤다고 해서 정말 고맙고 귀여웠다.

지난 20년을 돌아본다면.
사실 시간의 흐름을 잘 인식하지는 못 하며 산다. 다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언급이 되고 다시 보여지고 하니까 내가 ‘꾸준히 배우로서 잘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 다시 연기가 너무 재미있다. 이번 <파인: 촌뜨기들> 할 때도 스스로 너무 재미있게 했기에, 그만큼 잘 담긴 것 같고, 시청자도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다. 내가 배우랑 잘 맞는 사람인 건가 다시 조금씩 느끼는 중이다. 앞으로 올 10년에도 20년에도 흥미로운 캐릭터를 막 보여주면서 (웃음)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다.

연기가 다시 재미있어졌다는 건, 재미없던 시기가 있었다는 건가. 언제쯤일까.
재미없다기보다 연기에만 직진해 왔다면 어느 시점부터 개인의 생활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대때는 내 모든 삶이 연기로 가득했었다. 하나하나 필모를 쌓아가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때 만났던 김지운, 박찬욱, 허진호, 최동욱, 민규동 감독님까지 대단한 감독님과 함께하면서 연기를 많이 배웠고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으로 청룡상을 수상하고 그 뒤부터 무언가 온도가 미지근해지더라. 이때부터 일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개인 생활과의 벨런스를 맞춰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시 20대 같은 재미를 느낀 작품은 드라마 <검블유>(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다. 대본을 읽자마자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배우로서 재미를 다시 찾은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속도가 느리고 띄엄띄엄일 수 있지만, 재미를 느끼는 작품이 찾아와주고 있다는 데 너무 감사함을 느낀다. 차기작인 블랙 코미디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도 정말 재미있게 찍고 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송은채부터 <파인: 촌뜨기들>의 양정숙까지 회자되는 캐릭터를 선보여 왔다. <파인: 촌뜨기들>의 필모상 의미는 무얼까.
제대로 보여드린 첫 악역이라 하겠다. 김지운 감독님의 영화 <거미집>에서 살짝 빌런을 연기했지만, 그때도 70년대 배경으로 참 재미있게 연기했던 기억이 있다, 양정숙을 통해 장르와 캐릭터가 확장된 느낌이다. 다양한 장르와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싶고, 시청자 또한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25년 8월 27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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