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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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 한국 권력 구조의 치부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우민호 감독이 디즈니+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로 돌아왔다. 1970년대 격동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거대한 악의 탄생과 그를 둘러싼 인간 군상의 욕망이 빚어낸 처절한 사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특히 영화 <하얼빈>에서 안중근으로 호흡을 맞췄던 배우 현빈과 곧바로 재회해, 이번에는 시대가 낳은 괴물 ‘백기태’로서 전혀 다른 얼굴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제작 단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우민호 감독은 영화와는 또 다른 시리즈라는 긴 호흡을 통해 캐릭터의 내면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는 한편, 현대사 속 비극의 기원을 찾아 70년대로 다시 한번 거슬러 올라가 질문을 던진다.
◆ 중학생 시절 읽은 ‘남산의 부장들’, 70년대라는 거대한 기원을 향하여
우민호 감독이 70년대라는 시대에 천착하게 된 뿌리는 꽤 깊다. “중학교 때 동아일보에 연재되던 실화 소설 ‘남산의 부장들’을 읽었는데, 그게 내 인생을 바꿨다. 미국의 마피아 이야기 같은 충격을 받았고, 어린 마음에도 언젠가 꼭 이걸 영화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는 게 그의 회상이다. 결국 판권을 구입해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의 탐구는 멈추지 않았다. “재작년 계엄 등의 상황을 거치며 ‘왜 우리는 이 비극을 반복하는가’라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 기원을 찾아가다 보니 다시 70년대로 향하게 됐다”는 고백이다.
이번 작품의 디테일한 에피소드는 그가 수집한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다. 1화에 등장하는 일본 적군파의 장검 사진, 2화의 미군 마약상 부부 살해 현장 사진이 대표적이다. “담요 밑으로 삐죽이 드러난 발과 옆에 놓인 아이 사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처참한 시대상이 개인을 어떻게 박살 내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는 이어 '장건영'(정우성) 가족의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강제징용자에게 실제로 약을 먹이며 노동력을 착취했던 전후 일본의 심각한 비극이 한 가족을 어떻게 처참하게 만드는지 파고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전작인 <마약왕>이 소시민의 욕망을 관조했다면, 이번에는 시청자들이 “백기태라는 인물의 욕망에 직접 올라타 그 전차의 속도감을 느끼길 바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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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드 인 코리아’, 한국이라는 국가 권력이 빚어낸 브랜드
작품의 제목이 ‘메이드 인 코리아’인 이유는 명확하다. “백기태라는 괴물의 상표는 결국 코리아이기 때문”이다. 우 감독은 “결국 개인의 욕망을 파고들다 보면 사회 구조적인 시스템의 문제와 맞닿게 된다. 백기태라는 괴물은 한국이 만든 브랜드이며, 제목은 이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이번 작품에서 미장센의 힘을 빼고 스타일을 살리는 데 집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욕망을 상징하는 ‘레드’와 그에 대비되는 ‘푸른색’을 배치하되, 특히 붉은 색을 촌스럽지 않게 표현해 내는 걸 주안점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시각화했다.
특히 현빈에 대해서는 “<하얼빈> 때보다 지금의 얼굴이 더 좋은 것 같다. 대중에게 현빈의 이런 아이러니한 얼굴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우 감독은 이번 시즌 1의 엔딩 장면에 대해 커다란 만족감을 드러냈다.
사실 이 엔딩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원래 계획한 엔딩은 따로 있었는데 쓰지 않았다. 시즌 2를 암시하는 엔딩으로 하려다가, 현장에서 즉석으로 찍은 지금의 엔딩으로 바꿨는데 정말 잘한 선택인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이때 화면이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연출에도 깊은 의미를 담았다. “우리가 흔히 흑백은 과거, 컬러는 현재라고 생각하지만, 컬러로 바뀌는 순간 이 괴물이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언제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싶었다”는 것. 우 감독은 “현빈 배우의 즉흥적인 연기와 이 연출적 장치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이건 되겠다’ 싶은 확신이 들었다”며 개인적인 만족도를 숨기지 않았다.
◆ 논란 속의 ‘돈키호테’ 장건영
한편, 백기태와 정반대에 위치한 장건영의 경우, 그 연기 톤에 호불호가 갈린다. 냉철한 백기태와 대척점에 서 있는 ‘장건영’으로 분한 정우성의 연기를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신선하다”는 평과 “과하다”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대해 우민호 감독은 회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답을 내놨다. “우리는 만드는 사람이고 대중의 평가는 당연히 수용한다”고 입을 뗀 그는, 장건영을 통제 불능의 ‘돈키호테’ 컨셉으로 설정했음을 밝혔다.
“당시 사법고시 합격자가 6~70명뿐이던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지만, 사실 그는 아버지와 관련된 비극적인 가족사를 지닌 인물이다. 그 깊은 트라우마를 감추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기제가 바로 과장된 웃음과 행동이었다. 처음엔 이 웃음이 논란이 될 줄 몰랐지만, 그 본질이 무엇인지 지금은 잘 살펴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우 감독은 장건영의 ‘진짜’ 반격은 이제부터라고 자신했다. “시즌 2에선 장건영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컴백한다. 일용직으로 7년을 살며 칼을 갈았고, 똑같은 방식으로는 백기태를 무찌를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즌 2에서는 30년 차 배우 정우성의 진짜 얼굴, 그 서늘한 변신을 제대로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해 기대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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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집사 우민호의 변신
그간 ‘마초 감독’이라 불려왔던 우민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결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자꾸 마초라고 하는데, 사실 나 집에서 고양이 세 마리 키우는 집사다(웃음). 3 화에서 여 수사관(서은수)이 위장 수사를 하며 뜨개질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찍으면서도 ‘아, 나 이런 거에 소질 있네’ 싶더라. 조여정 배우가 나보고 이제 여자 배우랑 작업해도 되겠다고 하더라”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조여정에 대해서는 “가장 연민이 갔던 캐릭터가 배금지였다. 매우 가부장적인 시대에 희생당했던 그녀들의 욕망도 남자들 못지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신예 서은수와 원지안에 대해서는 각각 영화 <마녀 2>와 넷플릭스 시리즈 < D.P. >를 보고 캐스팅했다고 전했다. ‘이케다 유지’로 분한 원지안의 경우, “시즌 2에서는 장검을 휘두르며 활극을 펼칠 예정이니 기대해도 좋다”고 귀띔했다.
매화가 한 편의 영화 같은 미장센을 지닌 <메이드 인 코리아>다. 우 감독은 시대의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타협 없는 고집을 부렸다. 시대극 연출의 고충을 묻자, 그는 “한국에는 이제 70년대 느낌의 건물이 다 사라져서, 결국 일본 고베로 넘어가 한 달간 로케이션 촬영을 강행했다. CG의 인위적인 느낌을 좋아하지 않아 그 시절 특유의 실제 질감을 화면에 꼭 담고 싶었다”며 남다른 집념을 드러냈다. 또한 폭력 묘사에 있어서는 “직접적으로 폭력을 전시하기보다 카메라를 옆으로 비껴가게 찍었다. 그게 역사를 다루는 윤리적 선이다”라며 확고한 소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 시즌 2에서 마주할 파멸의 대가, 그리고 70년대와의 작별
“70년대 이야기는 이번 <메이드 인 코리아>가 마지막이다. 더 이상은 안 할 생각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변곡점들을 집요하게 파헤쳐온 우민호 감독이 돌연 ‘70년대와의 작별’을 선언했다. 그는 이번 시리즈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음을 시사하며, 올 하반기 공개 예정인 시즌 2를 통해 그 기나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다.
애초 12부작으로 기획되었던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보다 치밀한 완성도를 위해 시즌을 나누게 되었다. 우 감독은 “시즌 1이 시청자들이 백기태와 함께 욕망의 전차에 신나게 올라타는 과정이었다면, 하반기 공개될 시즌 2는 그 전차에 올라탄 것을 처절하게 후회하며 파멸해가는 과정을 다룬다”고 예고했다. 시즌 2는 시즌 1로부터 9년이 흐른 1979년을 배경으로 하며, 백기태·백기현(우도환) 형제의 숨겨진 전사와 함께 한층 확장된 욕망의 충돌을 그려낼 예정이다.
감독은 끝으로 우리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재작년부터 느낀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애국자다. 그런데 누구의 애국이 진짜인지를 두고 서로 싸우는 과정에서 비극이 생긴다. 그 갈등의 기원이 70년대인 것 같아 자꾸 파게 됐다.” 70년대라는 거대한 굴레에서 벗어난 우민호 감독의 다음 시선은 이제 현대로 향한다. 차기작은 하이브미디어코프와 함께 현대물 탐정이나 첩보 영화를 준비 중이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26년 2월 3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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