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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리들이 전하는 뜨끈뜨끈한 위로’, 1999년 세기말로 간 넷플릭스 <원더풀스> 유인식 감독
2026년 5월 29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고,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로 전 국민에게 따뜻한 휴머니즘을 선사했던 유인식 감독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원더풀스〉로 돌아왔다. 〈원더풀스〉는 1999년 세기말, 우연히 초능력을 가지게 된 동네 모지리들이 평화를 위협하는 빌런에 맞서 세상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초능력 코믹 어드벤처다. 장르를 넘나들며 탁월한 캐릭터 구축과 대중성을 입증해 온 유인식 감독의 첫 OTT 도전작이라는 점에서 공개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전작의 거대한 성공을 뒤로하고, 오랫동안 품어온 로망을 펼쳐낸 유인식 감독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2020년 초고에서 시작된 오랜 로망, '세기말과 모지리들'을 택한 이유

유인식 감독에게 〈원더풀스〉는 오랜 시간 노트북 한편에 묵혀두었던 보물 같은 작품이었다. "노트북 랩탑을 뒤져보니 초고 저장이 2020년으로 되어 있더라고요. 당시에는 여러 가지 물리적 제약과 스케줄이 맞지 않아 잠시 접어뒀다가, 감사하게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글로벌 히트를 한 후에 다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하필 '1999년 세기말'이라는 배경을 고집한 데에는 명확한 스토리텔링의 의도가 있었다. "모지리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콘셉트가 가장 잘 올라앉을 수 있는 시대를 고민해 봤어요. 1999년 12월 31일 카운트다운을 하던 당시, Y2K나 지구 멸망 루머,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등으로 인간의 연약함과 종말의 공포가 가득했던 분위기가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또 하나는 아날로그 시대여야 했다는 점입니다. 요새 같으면 초능력을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찍어서 SNS에 올리면 되니까요.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시대 속에서, 모지리들이 스스로 사건을 해결해야만 하는 설정을 위해 스마트폰이 없는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났습니다."

국민 드라마를 연달아 히트시킨 그였지만, 흥행 보증 수표가 없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프로젝트를 생각할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내가 두근두근하느냐',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으냐' 하는 욕구입니다. 저는 좀 둔하고 잘 잊어버리는 타입이라 그런지, (웃음) 끝난 작품을 좋아해 주시면 그동안 고생한 걸 싹 잊어버려요. 새로운 장르를 하면 기존의 노하우가 없어지면서 막막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참 재미있습니다. 〈원더풀스〉는 준비 단계만 해도 검증된 장르가 아니라 흥행을 개런티할 수 없었지만, 열심히 만든 만큼 좋은 반응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박은빈의 과감한 돌파구, 차은우의 미스터리함이 만든 완벽한 조합

〈원더풀스〉의 중심축에는 유인식 감독이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기다려 온 배우 박은빈과 신비로운 매력의 차은우가 있다. 특히 박은빈의 캐스팅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절 오고 간 가벼운 대화에서 물꼬를 텄다. "당시 오며 가며 한 이야기에 은빈 씨가 흥미를 보였어요. 차기작 캐릭터는 우영우와 정반대여야 하니까, '재미 삼아 볼래?' 하면서 대본을 줬죠. 우영우는 한번 보면 사진처럼 기억하는 인물인 반면, 은채니는 돌아서면 다 까먹는 인물이라 딴판입니다. 하지만 과감함, 용기, 저돌성, 그리고 나름의 정의감은 닮았어요. 박은빈 배우 본체에 내장된 기질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배우가 돌파구를 찾아서 멋진 은채니를 보여주겠구나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완벽하게 증명해 줬습니다."

그는 박은빈의 남다른 저력과 신체 연기에 대해서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박은빈 배우는 좋은 의미로 굉장히 조심성이 철저한 친구예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촬영했는데, 혹여나 다쳐서 촬영에 지장을 줄까 봐 밥도 차 안에서 혼자 먹고 바로 집으로 갈 정도로 철저한 자기 관리를 보여줬죠. 이번 작품에서는 와이어를 정말 많이 달아야 했는데, '이게 되네?' 싶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탁월하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본인이 직접 해준 덕분에 훨씬 좋은 장면들이 많이 탄생했습니다."

미스터리한 존재인 '이운정' 역의 차은우 캐스팅에 대해서는 "이운정 캐릭터가 가진 미스터리함과 신비함이 이야기 초반을 끌고 가는 거대한 동력입니다. 제가 원했던 미스터리함과 동화 같은 느낌을 완벽히 채워줄 수 있는 배우라 꼭 합류했으면 하는 마음에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운정이가 쓰고 다니는 안경은 마치 슈퍼맨의 안경 같은 장치인데, 각성의 순간에 안경을 집어 던지는 쾌감을 주고 싶어 심혈을 기울여 골랐어요. 차은우 씨와 함께 무려 100개 정도의 안경을 시착해 보며 완성한 비주얼입니다."

여기에 최대훈, 임성재 등 연기파 배우들이 합류해 극의 코믹 밸런스를 꽉 잡았다. "최대훈 배우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때 함께하면서 너무 유연하고 센스가 뛰어나면서 그 발성에 놀라 언젠가 꼭 다시 하고 싶었어요. 임성재 배우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경찰서 통역관으로 짧게 나올 때 눈여겨보고 직접 찾아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어 이번에도 함께했습니다. 자기 존재감을 조절할 줄 아는 굉장한 경지의 배우죠. 다만 은빈 씨와 친구로 나오기엔 나이가 조금 많아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구경하다 보면 넋을 잃을 정도로 너무 깜찍하고 귀여운 ‘로빈’을 완성해 줬습니다."

◆ 병맛 코미디 속 리얼한 초능력, 어두운 동굴을 지나야 모험이 즐겁다

유인식 감독은 장르물의 컨벤션을 따르면서도, <원더풀스>만의 독창적인 시각적 톤앤매너를 유지하기 위해 연출 공력을 쏟아부었다. 최근 쏟아지는 타 히트 히어로물과의 차별점에 대해 그는 '거친 병맛 속의 리얼리티'를 꼽았다. "<원더풀스>의 장르는 굉장히 메이저한 히어로물인데, 캐릭터와 대사는 마이너한 '허술함'이 있어요. 작가님이 새콤하면서도 찌릿찌릿한 코미디를 잘 써주셨죠. 거칠게 요약하면 병맛인데, 일반적인 병맛과는 다른 한 끗 차이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내용이 만화적이다 보니 오히려 초능력을 구현하는 질감은 아주 리얼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화면의 화려한 그래픽 이펙트는 최대한 억제했습니다. 주인공들이 당혹감과 무서움을 뚫고 탈출해 나가는 과정이 '진짜'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인체 실험이나 세기말 빌런들의 무거운 분위기와 모지리 4인방의 코미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또한 연출자로서의 숙제였다. "어드벤처 장르에는 기본적으로 다크한 구간이 존재해야 합니다. 놀이기구를 탈 때, 가령 ‘신밧드의 모험’ 같은 어트랙션은 타고 들어가면서 어두운 구간을 거치며 모험이 시작되잖아요. 빌런의 어두움과 위험함이 확실히 존재해야 모지리들의 낙천적인 코미디와 밸런스가 맞춰질 거로 생각했죠.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가 영화 < E.T. >나 <구니스> 같은 80년대 명작을 차용했듯, 저 역시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같은 괴짜 어드벤처물의 바이브를 오마주하며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한편, 극 중 박은빈과 차은우의 로맨스에 대해 존재할 수 있는 호불호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과거 <낭만닥터 김사부>를 할 때도 '바쁜 병원에서 무슨 연애냐'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피 끓는 청춘들이 생사의 현장에서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채니와 운정은 각자 깊은 아픔과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들입니다. 각자의 섬처럼 고립되어 살던 두 사람이 서로를 강제로 세상 밖으로 소환해 내며 쌓아가는 감정은 평범한 연애와는 결이 달라요. 무엇보다 채니의 인생 버킷리스트에 '연애와 키스'가 있는데, 눈앞에 차은우가 있으니 당연히 직진하지 않겠습니까! (웃음)"

◆ 넷플릭스 첫 도전, 엔딩 마개를 열어둔 이유

처음으로 한번에 공개되는 OTT 시리즈를 연출한 유인식 감독은 엔딩과 리듬감에 대한 고민이 유독 깊었다고 털어놨다. "한 번에 몰아보는 시청자들을 배려하려다 보니 러닝타임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습니다. 리듬감을 위해 속과(편집)된 장면도 꽤 많았죠. 일주일 동안 기다리는 여운과는 다른 OTT만의 엔딩 리듬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마지막 회의 경우, 억지 클라이막스를 쥐어짜기보다는 시리즈 전체를 통해 남겨두고 싶은 따뜻한 기운을 푸짐하게 보여주다 보니 분량이 조금 길어졌어요."

마지막 회 엔딩이 시즌2를 염두에 둔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애초부터 시즌제를 전제하고 캐스팅을 하거나 기획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세계관의 마개를 조금 열어두어야 서사의 일관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분더킨더 3인방’(정이서, 최윤지, 배나라)에게 일어난 일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실마리를 남겨두는 편이 작품의 세계관을 지키는 길이라 판단해 엔딩을 조금 열어두었습니다."

한편, 공개를 앞두고 불거진 배우(차은우) 관련한 부정적인 이슈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유 감독은 연출자로서의 책임감을 담아 정공법으로 답했다. "편집이 거의 완료된 시점에서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했을 때, 작품을 만든 입장으로서 곤혹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우리 드라마는 팀워크가 정말 중요하고 캐릭터가 핵심인 작품입니다. 연출자로서 제가 고민하고 판단한 지점은 스토리텔링 측면의 완성도를 최대한 높여서 보여드리고, 이 판단이 적합했는지를 시청자분들께 직접 평가받을 기회를 드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수많은 관계자가 관여되어 있고, 이 작품의 성패에 몇 년간의 노력을 걸고 있는 분들이 계시기에 일단 약속대로 작품을 온전히 보여드리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현재 또 다른 도전인 클래식 시대극 <100일의 거짓말>을 촬영하며 악전고투 중이라는 유인식 감독. 대중이 〈원더풀스〉를 어떻게 기억해 주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장 명쾌한 답변을 남겼다.

"시청자분들이 다 보시고 나서 '야, 그거 참 볼만해. 꽤 괜찮아'라는 한마디만 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오락물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하니까요."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6년 5월 29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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