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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 자리 잡기 위한 고민과 노력 <설계> 오인혜
2014년 9월 18일 목요일 | 서정환 기자 이메일

<설계>는 어떤 이유로 출연을 결심했나요?
감독님이 적극적으로 같이 하자고 말씀하신 게 시작이었고,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알려진 이미지가 강할 뿐, 그동안 연기했던 캐릭터는 강한 게 없었어요. 그런 면에서 저와 완전 다른 민영 역할이 재밌을 것 같았어요. 다양한 역할이 주어진다면 지금은 다 해봐야하는 입장이니까 해보고 싶었죠. 신은경 선배님이 같이 한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고요.

감독이 집까지 찾아와 출연 승낙을 받기 위해 애썼다고 하던데요.
너무 감사했죠. 그런 경우는 처음이어서요.

<소원택시>를 함께 작업하면서 다음 작품도 같이 하자는 공감이 형성된 건가요?
그때는 감독님하고 그렇게 가깝지 않았어요(웃음). 몇 개월 만에 연락이 와서 시나리오를 읽어보라고 한 거죠. 그래서 더 감사했어요. 많은 배우가 있는데 저를 또 찾아주셨으니까요. 작품을 하든 안하든 찾아준 것만으로 너무 감사해서 인사드리러 나갔다가 시나리오를 봤는데,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됐죠.
<설계>의 민영은 가시 없는 장미처럼 매혹적이지만 독을 품은 칼처럼 치명적인 여인이라고 소개가 되고 있어요. 캐릭터 설정과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민영은 남자를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 하에 유혹하잖아요. 실제 이런 여자가 있을까요? 제가 볼 땐 평범하진 않더라고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여자잖아요. 저와는 성격이 극과 극이에요. 실제 저는 워낙 무뚝뚝한지라(웃음).

본인 성격과 전혀 다른 면을 표현해야한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부담이 됐겠네요.
맞아요. 기존에 했던 영화나 드라마는 기본적인 저를 갖고 연기를 했어요. 물론 민영도 제 본연의 모습을 완전히 버리면 안됐지만, 그래도 확연히 저와는 다르게 표현해야했기 때문에 정말 연구를 많이 했어요. 제 말투는 완전 털털이잖아요(웃음). 근데 민영은 너무 교태가 넘치니까 연기하면서도 손이 오그라들어 죽겠더라고요. 어색하게 연기하면 정말 어색해질 것 같아서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찌 보면 저의 모습이 조금도 안보이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말투 하나, 손짓 하나까지 모든 걸 만들었어요. 독특한 캐릭터를 오래 연구해서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제가 갖고 있는 것만 너무 고집하면 도전을 못할 것 같아요. 버리고 바뀌어야 다른 모습도 소화가 되는 것 같아요. 정말 저를 놓아버리고 연기했죠.

외모, 말투, 몸짓, 행동에서 포인트를 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눈빛에 포인트를 줬어요. 저는 눈을 꾸벅꾸벅 뜨는데 말이죠(웃음).

민영의 전사는 어떻게 잡았나요? 편의점 알바하며 사채 빚에 시달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 인물이라는 추측은 가능한데,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보고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설명이 안 되어 있어서 부족하다고 말씀들 많이 하더라고요.
일방적으로 사채업자들에게 당하고, 말도 없고 조용한 인물처럼 보이다가 큰 변화가 있잖아요. 민영의 내재돼 있던 부분이 드러난 건지, 그런 면이 전혀 없었는데 확 돌변한 건지 궁금했어요.
사채업자에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빚을 갚는데 편의점 알바를 한다는 건 한두 푼도 아니고 솔직히 말이 안 되죠. 살아왔던 방식대로 해결해가다가 너무 시달리니까 잠재되어 있던 독기가 나온 것 같아요. 원래 그런 인물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도와주고 믿어준 세희(신은경)에게도 ‘어쨌든 당신도 사채업자 아니냐. 다 똑같다’고 말하잖아요. 사채업자에 불신이 많았던 거죠.

민영은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건가요, 아니면 힘들 게 살아왔던 건가요?
그건 제 마음이니까요(웃음).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으니까 편의점에서 일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전부터 알바를 했다면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걸 했어야죠. 시급이 더 센 알바도 많은데 편의점을 고집하는 친구인 걸 보면 잘 살았을 것 같아요.

화류계에 발을 들여 놓고 세희를 만나 사채업계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민영의 흐름은 어떻게 잡아갔나요?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아니면 확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감독님의 의도는 ‘확’이었어요. 중간 중간 대사가 없어도 신은경 선배님이 연기할 때 리액션을 통해 암시를 줘야하지 않을까, 의견을 말씀드렸는데 감독님은 다 배제를 하자고, 갑자기 돌변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의 의도대로 연기를 했죠.

초반에 대사가 거의 없잖아요. 그런 이유로 일부러 대사를 없앤 건가요?
후반부의 반전을 위해 초반에는 어떤 리액션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배우니까 많은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조금 서서히 올라와야하지 않을까, 표정에 뭐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감독님은 아무것도 암시를 주지 말자고 하시더라고요.
민영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 궁금증을 유발하는 부분은 분명 있었어요.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못 드러내는 캐릭터로 각인될 수도 있어서 후반의 큰 변화가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감독님이 배우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도 있지만 애초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있잖아요. 저는 감독님의 의도에서 많이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리고 아직 그럴 위치도 아니고요. 일단 감독님을 믿고 다 따라갔어요. 후반의 변화에 관객들이 예상하지 못했다는 느낌만 받아도 좋을 것 같아요.

민영의 욕망, 배신은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나요? 민영의 그런 감정과 선택에 공감은 됐나요?
욕망과 배신이 일반적인 건 아니잖아요. 쉽게 공감할 순 없죠. 사채업이라는 것도 생소했고요. 민영도 처음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욕심이 계속 생기는 거죠. 야망이 자꾸 커졌던 것 같아요. 세희에게 ‘결국 너도 사채업자 아니냐’는 말로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시킨 걸 수도 있고요. 큰돈이 오가는 걸 보고 있으니 돈에 허덕이던 아이라 욕심도 야망도 커졌겠죠. 세희의 남자를 뺏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어요. 영화에서 덜 표현되긴 했지만요.

숍에서 세희가 남자와 웃으며 이야기할 때 멀리서 보는 민영의 눈빛에서 민영의 남자에 대한 욕망이 느껴지긴 했어요.
그런 장면이 한 신이라도 더 있었다면 좀 더 설명이 됐겠죠. 그 남자를 민영이 짝사랑하고 있다는 걸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이번 작품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연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어요.
저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가능성은 항상 보여줬던 것 같아요(웃음).
대중들에게 각인된 제 이미지가 그렇지 극중에서 강한 캐릭터를 한 적은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왜 차분하고 어두운 역할만 하냐고 이야기해요. 어두운 이미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꽤 돼요. 생각해보면 그렇기도 한 거예요. 그게 다가 아닌데. 물론 밝진 않아요(웃음). 차분한 쪽에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어두운 느낌으로 고정되고 싶진 않았어요.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느낌이 어떻든 저는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더 밝고, 밝지만 중성적이고 털털하고 발랄한 모습도 보여드려야겠지만 지금은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게 이런 느낌이니까요. 다음 작품에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시크하지만 발랄한 느낌, 그러다 통통 튀는 로맨틱 코미디도 하고 싶고요. 순서가 있는 것 같아요. 180도 바뀌면 가장 좋겠지만 그건 관계자 분들도 모험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우선 저를 많이 알려야죠.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야하는 것 같아요. 제 본연의 모습이 이렇다, 많이 보여야하는데 영화로 표현되면 가장 좋겠지만 영화를 1년에 몇 편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보통 1년에 두 편 정도 했어요. 지금은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제가 맡을 캐릭터보다는 일단 어느 정도 작품이 괜찮다 싶으면 출연을 했는데, 앞으로는 변화를 줄 수 있는 영화를 조금 더 신중하게 찾아봐야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 이후 어떤 방향성을 갖고 활동해 온 건가요?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 이후 회사와 계약을 하고, 제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서 ‘마의’에 출연했어요.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방송국에서 세트 촬영을 처음 해봤으니까요. 드라마와 영화는 비슷할 것 같지만 완전 다르더라고요. 사람들과의 관계가 정말 좋았어요. 오랫동안 촬영하니까 정도 들고, 선생님들, 선배님들, 동생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연기를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고요. 저는 아무래도 영화로 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이 크다보니 다시 영화 쪽으로 돌아왔는데, 그게 제 나름의 노력이었던 것 같아요. 쉬지 않고 영화를 계속했거든요. 제게 들어온 시나리오 중 가장 괜찮은 영화를 선택해왔고, <설계>라는 첫 상업영화를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온 거죠. 이번 영화가 제가 출연했던 영화 중 규모면에서 가장 대중들에게 저를 알릴 수 있을 영화잖아요. 새로운 시작인 것 같아요. 앞으로 조금 더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상업영화를 많이 해보고 싶어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영 같은 역할을 주면 좋지만 더 작은 역할도 할 마음이 충분히 열려 있어요. 기회가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안에 갇혀서 연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영화 관계자분들도 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의’가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했어요.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날 순 없지만, 그래도 다른 모습을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기대만큼 결과가 나오진 않았던 것 같아요. ‘마의’를 보면서 오인혜가 얼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요. 얼어있었어요.

물론 첫 드라마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줄 거란 기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능성에 비해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마저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이거 뭐지? 내가 왜 이렇게 못 하지?’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너무 낯설고, 따라가지 못하는 거예요. 회차가 지나며 나아지긴 나아졌지만, 스스로에게 실망을 많이 했죠. 물론 크게 연기를 보여주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도 충분히 감칠맛 나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선배님들을 보니 이런 역할이 아닌데도 본인들이 다 만드시더라고요. 정말 대단한 게, 대본이 그날 나오는데도 순발력으로 그것들을 만드시더라고요. 저는 시나리오를 보고 몇 달간 연구하고 연습하고 만들어서 슛 들어가면 연기했던 경험만 있어서 드라마 현장이 생소했어요. 게다가 대본이 당일 새벽에 나오면 멘붕이 오더라고요. 많지 않은 대사인데도 따라가지 못했어요. 처음이라서 혼란스러웠어요. 순발력이 정말 없다는 생각도 들고 아쉬움이 컸죠.

‘마의’ 이후 영화에 연이어 출연했는데, 자극적인 소재의 소위 부가판권용 영화들이었어요. 경험을 쌓는데 비중을 두고 출연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외부에서 볼 때는 영역이 한정된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 수 있거든요.
들어온 시나리오 중에서는 그 작품들이 가장 좋아서 출연을 한 건데, 내가 이 방향으로 밖에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건 절대 아니에요. 조급한 마음에 작품 선택에 조금 신중하지 못했던 건 분명 있을 거예요. 제가 극의 중심이 되고 연기 분량이 많으니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연달아 작품에 출연하고 경험을 쌓으며 처음보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은 쉬지 않고 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면,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바꿔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시기에요. 경험을 몇 번 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작품 보는 눈이 달라지겠죠.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듣고 싶네요.
<설계>를 전환점으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해서 많은 분들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저의 숙제인 것 같아요. 좋은 작품, 좋은 캐릭터를 만나서 또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 그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2014년 9월 18일 목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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