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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특별한 배우 <협녀, 칼의 기억> 김고은
2015년 8월 18일 화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해당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첫 번째 15세 관람가 영화다.
기쁘다(웃음). 중학생이 된 사촌 동생이 두 명 있는데 내 행보에 관심이 굉장히 많다(웃음). 그런데 이제까지의 영화는 보여줄 수가 없었다. <차이나타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이모는 얄짤 없더라(웃음). <협녀, 칼의 기억>은 시사회 때 동생들을 모두 초대했다.

촬영한 지가 오래됐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어떤가?
촬영할 때는 몸에 와이어를 매달았는데 영화에서는 CG처리가 돼 와이어가 모두 지워진 걸 보니 색달랐다.

기자간담회에서 전도연과 유독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협녀, 칼의 기억> 촬영 이후로도 전도연과 자주 연락하고 지내나?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사적으로 만나 뵈었다. 자주까지는 아니어도 시간 맞을 때 선배의 촬영 현장에 찾아갔다. 선배도 <차이나타운> 촬영 현장에 놀러 왔고.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서 전도연은 단순한 선배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 같다.
학생 때부터 도연 선배의 필모그래피를 찾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실제로 뵀을 때 나에게 애정을 담아 이야기 해주는 부분이 많았다. 한 마디를 하더라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 느껴졌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이미 겪은 분이라 내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많았다.

촬영하면서 전도연이 특별히 자극을 주거나 힘이 된 부분이 있다면?
촬영할 때는 도연 선배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배들이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 저렇게 했으면 좋겠어, 라고 조언하지 않았다. 그런데 <협녀, 칼의 기억> 촬영이 마친 뒤 편집본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부족함이 많더라. 당시에는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보는 시각이 부족해 감정 분배를 잘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영화가 나오지 않아 충격을 심하게 받았다. 내가 연기를 이렇게 했었나, 생각도 들고. 속상해서 도연 선배에게 전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제서야 연기에 대한 조언을 해주더라. 내가 그동안 해 온 것처럼 매 신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지만 영화 전체를 보는 시각도 넓혀야 한다고 했다. 어떤 장면을 촬영할 때는 연기를 조금 덜 한 것 같고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럴 때면 한 번쯤 물러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영화 전체를 봤을 때 어떤 식의 연기가 적합한지 고민해 보고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연기하는 방법을 연구해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겨우 세 번째 작품이니 너무 속상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충분히 잘 했다고 격려도 해줬다. 선배의 말을 마음에 품어 <차이나타운> 때는 촬영 전부터 감독님을 많이 괴롭혀 더 열심히 했다(웃음).
<협녀, 칼의 기억>에서는 어떤 장면이 가장 만족스러운가?
마지막 액션신이 좋다. 실제로도 촬영 후반부에 찍었기 때문에 검이 가장 익숙하고 단련된 상태였다. 시퀀스 쇼트(커트 없이 연속된 하나의 테이크로 촬영한 장면)로 촬영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촬영할 때가 가장 많이 고생했다. 여러 사람과 합을 맞춰야 했는데 합이 너무 길어 어려웠다. 가장 오랫동안 촬영한 장면이자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가 홍이였다. 전반부에서는 해맑게만 보이던 홍이가 후반부에서 갑자기 진지하게 변하는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변화의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홍이의 행동에 쉽게 동의하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홍이의 행동에 동의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쉽게 납득이 되는 부분이 있더라. 이해가 안됐으면 선택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물론 촬영할 때는 관객들에게 캐릭터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지 않나.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신념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을 거라 생각했다. 월소가 힘들지만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죄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속죄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했던 거다. 그래서 친딸을 영화에서처럼 키우고 자신의 뜻을 이뤄낸다. 반면 홍이 같은 경우는 태어났을 때부터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 정해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월소에게 ‘옳은 일은 모두에게 옳은 일’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복수를 할 때는 사사로운 감정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를 항상 들었을 거다. 그것이 월소의 모성애다. 홍이가 부모를 죽이고 나면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계속 홍이에게 한 거다. 홍이는 월소의 신념을 이해했기 때문에 월소가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거다.

기자간담회에서 홍이에게는 첫 번째 반전이 두 번째 반전보다 더 큰 충격이었을 거라 설명했다.
첫 번째 반전은 홍이가 18년 동안 마치 엄마처럼 자신에게 검을 가르치고 부모의 원수를 갚아야 된다고 이야기한 사람이 원수라는 걸 알게 되는 거다. 그때 홍이가 느끼는 충격은 18년 세월의 무게만큼 클 것 같았다. 두 번째 반전도 충격이 컸겠지만 그때는 홍이가 스승과의 훈련을 통해 이미 성장한 뒤다. 그때는 홍이가 조금 더 월소에 가까운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스승에게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홍이는 월소가 왜 본인이 자신의 친엄마인 것을 숨겨가면서 자신에게 검을 가르쳤는지가 궁금했을 거다. 하지만 곧 그 모든 것이 엄마의 뜻이었고 자신이 그동안 엄마의 뜻을 따르기 위해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다.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거다. 아, 어렵다(웃음).
선배 복이 많은 편인데 또래 배우와의 호흡은 어떤지 궁금하다. 이준호와의 호흡은 어땠나?
일단 편했다. 하지만 다른 선배들과 호흡을 맞출 때와 비교해 특별히 다른 건 없었다(웃음). 선배들에게는 깍듯하지만 편하게 대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준호는 나보다 영화는 늦게 접했지만 나이도 조금 더 있고 데뷔도 빨리 해서 다른 선배들에게 대하듯이 깍듯하지만 편하게 대했다.

키스신도 있다.
뽀뽀다, 뽀뽀(웃음). 서로 짧고 굵게 하자 했다(웃음).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이다. 데뷔한 이래 또래 친구들에 비해 환경에 많이 변했을 것 같은데 동기들과의 생활은 어떤가?
생활은 변하지 않았다. 똑같다. 촬영 중간에도 학교를 다녔고.

데뷔도 일찍 했고 그 이후로도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물론 본인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운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여러 배우 지망생들이 졸업하고 나서 기회를 못 잡아 불안해하고 연기를 포기하는 경우를 봤다. 아직 학교에 남아있는 친구들도 있을텐데 데뷔를 일찍한 만큼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남다를 것 같다.
그런 부분은 운이 좋았다. 하지만 <은교>로 데뷔할 당시에는 또다른 시선이 있었다. 도박이라는 말도 있었고.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운이 좋은 것이 됐다. 진심으로 위하는 친구들과 만나면 각자의 타이밍이 있는데 그게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기회가 와서 오디션을 본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배우들에 비해 주의깊게 봐주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친구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길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친구들에게 일과 관련된 어려움이나 고민 같은 걸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대신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나 친구들이 알고 싶어하는 부분은 많이 이야기해 주려고 한다. 그런 부분은 내가 예전보다 조금 더 신경쓰지만 일 외적으로 지내는 많은 부분은 여전히 데뷔 전과 마찬가지다.

본인은 일에 대한 고민과 불안을 누구에게 털어놓나?
성격의 장점이라 생각하는데 단순하다. 깊게 생각해 불안감을 느끼는 편이 아니다. 불안감은 조급함에서 온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갑작스런 주목이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를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단지 현장에서 연기를 못하면 내가 열이 받으니까 열심히 하는 것 뿐이다.
어떤 종류의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나?
다양하다. 장르적이고 강한 소재의 시나리오가 많은 것 같다. 20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는 시나리오는 의외로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

캐릭터가 강한 역할에 유독 끌리는 건가?
굳이 그런 역할에 끌리는 건 아니다. 시나리오에서 좋은 부분이 보이면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생각이 깊지 않아서 작품을 선택할 때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웃음). <몬스터>처럼 재미있겠다 싶어 선택했다가 막상 해보고 나서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 <협녀, 칼의 기억>도 이렇게까지 고생할지는 몰랐다(웃음). 이제는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이 힘들지 대충 예측할 수 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이 안됐기 때문에 시나리오가 재밌으면 단순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작품 선택 기준이 달라졌나?
그렇지 않다. 조금 또 구르겠지, 하고 만다(웃음).

캐릭터보다 시나리오를 우선적으로 보고 작품을 선택하나?
그때마다 다르다. 어떤 시나리오는 캐릭터보다 전체의 이야기가 보이지만 또 어떤 경우는 캐릭터가 먼저 보인다.

들어오는 시나리오의 대부분이 장르적인 성격을 지닌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있나?
그런데 정말 시나리오가 없다. 나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만 장르적인가 싶어 개봉하는 영화를 모두 눈에 불을 켜고 살펴봤는데 그렇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다.

20대 여배우를 중심으로 한 시나리오가 다양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신의 중성적인 이미지가 요즘 한국에서 성행하는 장르영화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은교> <차이나타운> <협녀, 칼의 기억>에서 모두 여성보다 소녀에 가까운 중성적인 느낌이 부각됐다. 나이가 들면 그런 류의 역할을 계속해서 맡는 게 지금보다 어려워질 수도 있을텐데 조금 더 여성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
작품을 선택할 때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별 다른 의도 없이 작품을 선택했는데 내가 계속해서 그런 특정 이미지로 보인다는 건 내가 가진 특유의 느낌,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시간이 흐르거나 어떤 특별한 일을 겪으면 변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바뀔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 사람은 변하니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겠지.
근래 본 영화 중 본인이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느낀 영화가 있다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어떤 점에서 해보고 싶나?
남녀가 티격태격하는 이야기가 좋다. 남녀가 다툴 때는 약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웃음). 나도 그렇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런 것 같다.

맞다. 언제나 이성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웃음).
그렇다니까. 연애 초반에는 얼마든지 모습을 꾸며댈 수 있겠지만 오래 사귀다 보면 그런게 어딨나. 사랑은 깊어져도 본성은 재깍재깍 드러난다(웃음). 그런 포인트들이 너무 재밌다. 직접 연기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애의 온도>도 좋아했겠다.
봤다.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청순 가련형 여주인공은 어떤가?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을 것 같다. 예쁘게 보여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들면 미치겠더라. 그래서 CF가 힘들다. 얼굴도 예쁘게 보여야 하고, 말도 예쁘게 해야 되니까. 정말 접시물에 코 박아 죽고 싶은 느낌이다(웃음). 그런 역할은 내 영역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다. 예뻐 보여야 하는 역할 말고 그냥 움직이는 와중에 예쁜 느낌이 나오는 역할이 편하다. 에이, 무슨 말인지 알면서(웃음).

그게 가장 어려운 거다. 가만히 있는데 그냥 예쁜 거.
그런데 그게 정말 예쁜 거다. 너무 예쁘게 생겼는데 자기가 예쁜 걸 알아서 막 예쁘게 행동하면, 예쁘긴 한데 재수없어 보인다(웃음). 그런데 예쁜 애가 조금 털털하면 더 호감이 가고 예뻐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덜 예뻐보여도 그런 역할이 더 매력적이다.
같이 작업해 보고 싶은 배우나 감독이 있나?
차기작이 정해져 있다. 지금은 그분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싶다(웃음).

우문현답이다(웃음). 자신을 계속해서 배우의 길로 이끄는 힘이 있다면?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연기는 살면서 가장 욕심나는 부분이다. 왜냐고 물어보면 사실 그냥 좋아서다. 연기할 때가 좋고 행복하다. 행복하니까 잘 하고 싶다. 잘 한다고 해서 시쳇말로 ‘미친 연기’를 하고 싶다는 게 아니다(웃음). 배우 중에서도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연기를 잘한다는 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지 않나. 잘하는 사람도 너무 많고.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왜 특별한지를 고민해본다. 전도연 선배, 김혜수 선배는 유독 특별하지 않나. 그들처럼 특별한 배우가 되고 싶다.

전도연, 김혜수는 어떤 부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나?
뭐라고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딱 꼬집어서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그들이 특별하다는 사실에는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 특별함이 무엇인지는 앞으로도 계속 찾아 봐야지. 그런데 일단은 두 분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는 거.

어떨 때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 느끼나?
인간적인 존경심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연기를 하다 보면 못된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아직 그런 사람들을 만나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연기를 잘할지는 몰라도 절대 특별한 배우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전도연, 김혜수 선배는 정말 영화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배들이 다른 스태프를 대하는 모습에서도 많이 배운다. 선배들을 보면서 나의 연기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도 있다.

배우로서 살지 않는 시간에 김고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부분이 연기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연기하는 게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연기를 봐주기 때문이다. 내가 나온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것이 큰 행복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2015년 8월 18일 화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 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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