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작품의 자식, 영화를 통해 성장한다 <수성못> 유지영 감독
2018년 4월 20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단편 <잘하고 싶은데>(2009) 이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온 유지영 감독이 마침내 첫 장편 <수성못>으로 관객을 찾는다. 2015년 KAFA(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지원작으로 제작된 후 3년 만이다. 묵묵히 개봉을 기다려준 함께 한 배우(이세영, 김현준, 남태부)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전하며, 유지영 감독은 <수성못>을 열심히 해도 실패가 컸던 자신의 20대가 많이 투영된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흔히 창작자가 작품을 ‘자식’ 같다고 표현하는 것과는 반대로 감독은 스스로가 자식 같다고 말한다. 작품 속에 그녀가 녹아 있기에, 그 안에서 문제를 던지고 답을 구하려 노력하고 깨닫고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제, 자신을 비춰주었던 영화의 방향을 돌려 사회를 비추려 한다. 해법을 제시할 수 는 없지만 사회 현상을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는 게 창작자의 몫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수성못>

<수성못>을 만든 게 2015년이다. 지금 그 시기를 바라본다면.
지금과 많이 다르다. KAFA 졸업 후 다들 (내가) 서울에서 영화 작업 할 거로 생각했지만, 난 ‘지역 영화를 만들겠다’고 대구로 내려왔다. 나름의 합리화일 수도 있다. 사실 서울에서 살만한 경제적 여건이 안 됐었다. 당시 캐리어를 끌고 내려가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작업실을 구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정말 막막했었다. 그게 2014년 이다. 그런데 2015년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웃음) 바로 지금의 남자친구다. 그의 직장 근처에 작업실을 얻고 우연히 길냥이 다섯 마리를 득템했다. 평소 계획 없이 사는 걸 못 견디는 성격인데 그 시기는 아무것도 안 했었다. 어떻게 보면 나태했을 수도 있고 빡빡하게 살던 내가 느슨하게 살려니 변화의 과도기라 힘들기도 했었다. 항상 계획하에 살았는데 이래도 되나 걱정도 컸다. 그러던 차에 <수성못>을 구상해서 장편제작과정에 지원했고, 다행히 뽑혔다. 나이브하게 보낸 그 시기가 지금 생각해보면 작품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지금은 예전의 나로 다시 돌아갔다. (웃음)

<수성못>에서 죽을 힘을 다해 치열하게 사는 주인공 ‘희정’(이세영)과 최선을 다해 죽으려는 ‘영목’(김현준)과 그 일행들 그리고 무기력한 ‘희정’의 동생 ‘희준’(남태부)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가 개인적으로 애매하게 느껴졌다.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그 이후의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를 그리고 싶었다. <수성못>의 경우 오리배를 탄 남자의 실종 사건으로 ‘희정’과 ‘영목’이 만난다. ‘희정’에게 ‘영목’이 균열을 가져오는 존재라면, ‘영목’에게는 여자 친구가 그렇다. 영목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자 친구와의 드라마를 보충했다면 좀 더 이해가 쉽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영목을 부각하고 싶었기에 불친절한 개연성이 되더라도 여자 친구를 최소화 했다.

‘영목’을 연기한 김현준도 밝힌 바 있듯, 그는 극 중 가장 난해한 인물이 아닐까 한다.
그는 가장 어두운 동시에 가장 밝은 인물이다. 습관적으로 죽고자 하는데, 그 이면에는 여자 친구가 있다. ‘영목’과 그의 여자 친구를 통해 우울함이 얼마나 쉽고 깊게 전염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자살) 관련 자료 조사하며 나 역시 자주 깊은 우울감에 빠지곤 했었다. 또, 자살 시도자들이 평범하게 일상을 살던 이들이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들이 항상 자살만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동반 자살 현장은 공감되지 않더라. 너무 희화됐다고 할까. 솔직히 아무리 자살희망자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우울하고 진지해지지 농담을 주고받진 않을 것 같다.
그 상황에서 그들이 농담을 주고받았었나? 특별하게 우울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었다. 유서 쓰는 것도 마치 밥 먹듯이 일상적인 행동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실패하는 순간이 우스꽝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데 그것조차 사실적인 모습이라고 본다. 죽으려고 갔지만, 중간에 깨어난다면 그땐 정말 살고 싶을 것 같거든. 그런데 마침 창문과 문을 다 테이프로 붙여놔서 문을 열 수 없으니 당연히 우왕좌왕하고 열려고 기를 쓰지 않을까. 그 상황을 관찰자 입장에서 연출하려 했었다. 예를 들면, 달걀을 사서 걸어가던 사람이 넘어졌다고 상상해 봐라. 가까이 옆에서 지켜본다면 당황스럽고 연민이 느껴지겠지만,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 넘어지는 모습이 단지 웃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내가 그 상황에 몰입하지 않고 관조적으로 바라본 거였다.

‘희정’과 ‘영목’이 만난 계기가 된 자살 미수 사업가(강신일)의 이후 행보도 아리송하다. 그가 결국 의도치 않게 죽게 되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맞다. 테마가 있으면 극 중의 모든 인물과 사건이 그 테마에 부합해 간다.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었기에, 사업가는 퇴장이 아이러니해야 했다. 바람 핀 아내 때문에 자살을 결심했던 그가 마음을 고쳐 먹고 새로운 여인을 만나서 살만하다 싶을 때, 어이없게 죽는 거로 아이러니를 표현하려 했다.

<수성못>은 당신에게 어떤 작품일까?
극 중 인물들 아무도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그들의 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난다. 노력은 많이 하지만 실패가 많은, 노력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했던 (내) 20대가 많이 투영된 작품인 거 같다. 마치 처음 운전대를 잡은 초보운전자 같은, 방향을 잘 못 잡았던 내 20대 말이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좀 더 빠른 길, 수월한 방법을 체득했다고 할까.(웃음)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 있다면.
<수성못>을 계기로 연을 맺은 (주) 인디스토리와 (기자 주: (주) 인디스토리가 <수성못> 배급을 담당함) 장편 작업을 준비 중이다. 5월까지 시나리오를 마감할 계획이다.

어떤 내용인가.
아직 시나리오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한 가족을 중심으로 그 가족 구성원들의 에피소드가 어우러지는 얘기다. ‘화’를 주제로 각각의 상황과 균열, 해체를 그리려 한다. 가족을 내세우지만, 가족을 통해 사회 변화를 보여 주려는 것이지 가족 드라마는 아니다.

‘화’란 분노를 의미하는지. 소재로 택한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뉴스를 통해 ‘묻지마 범행’이 정말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분노지수가 높다는 걸 의미한다. 그 부분에 꽂혔던 거 같다. 이후 내가 화나는 상황을 돌아보고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보통 40% 정도 구상되면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수성못>에서는 일상에서 균열을 마주한 인물을 그렸었고, 이번에는 ‘화’를 통해 균열을 보여주려고 한다. <수성못>보다는 코믹 요소가 적고 좀 더 하드하게 표현할 것 같다.


요즘 꽂힌 주제가 ‘화’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요즘 ‘1일 1재앙’ 시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왜 나날이 사건 사고가 잦아질까. 예전 같으면 깜짝 놀랐을 패륜 범죄에도 어느새 무감각해졌을 정도로 사건 사고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 사회는 불안이 만연하고 개인은 화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화는 어디서 올까. 무시와 차별, 갑질이 판을 치는 부조리한 사회가 그 원천이라고 본다.

‘화’를 다스리는 혹은 줄일 수 있는 당신이 생각하는 해법이 있다면.
진실에 직면하는 경우 사람은 불편하기에 본능적으로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현상을 보고 불편하더라도 질문을 던지는 게 창작자로서의 (내) 역할이다. 답을 찾고 내놓는 것은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나 정치인의 몫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사회적 약자에게 노력하라고 독려하며 유리 천장을 씌우고, 계층 간의 사다리는 치우고 있다. 그러면서 개인끼리의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곤 한다.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임에도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고 어찌 보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난민과 다름없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간 터질 것이다. 나는 작품을 통해 이러한 사회 현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다. 여러 상황과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엮어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게 영화라고 본다. 이런 면에서 영화는 사회의 거울이다.




# 유지영

<수성못>의 배경이 대구 수성유원지이다. 현재 대구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고향을 탈출하고 싶어 했던 주인공 ‘희정’(이세영)과는 반대의 선택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는데, 내가 원하던 학교가 아니라서 그랬는지 별로 맞지 않았다. 그래서 자퇴하고 편입 준비를 했고, 미술을 전공했기에 홍익대 영상학과로 진학을 했다. 영상학과라 뮤직비디오와 애니메이션 관련 수업이 많았는데 당시 교수님께 F만 면하게 해달라고 하며 다녔었다. (웃음) 편입하기 전에 영화 관련 수업을 많이 들었었고 마침 지도교수님이 KAFA 출신이라 졸업 작품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그 작품 <졸업>으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이후 포트폴리오로 제출해 KAFA에 입학할 수 있었다.

<수성못>은 KAFA 장편영화지원작으로 당신의 첫 장편영화다. KAFA에서의 학습과 지원작 선정 후 제작, 개봉까지 과정을 좀 더 설명한다면.
이론보다는 실습이 주인데 그 과정에서 배우게 된다. 단편을 한 두편 계속 찍으면서 내 성향을 알아갔던 시기다. KAFA 정규 과정 1년을 이수하면 이수자 중에 몇 명을 뽑아 장편 영화를 찍을 기회를 준다. 물론 졸업 후 몇 년 이내로 지원 자격에 제한은 있다. 당시 경쟁률이 약 15대 1 정도였던 거 같다. 일단 선정되면 ‘크리틱’이라고 대학원처럼 1년을 다녀야 한다. 시나리오를 쓰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는다. 이후 프리프로덕션부터 프로덕션까지 총 7천만 원 지원을 받는다. 믹싱과 색보정 등의 후반 작업 비용은 상황에 따라 지원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수성못>의 경우 선정자 중 한 명이 중도 포기했기에 예산을 좀 더 받을 수 있었다.

영화를 완성해서 졸업 작품전을 끝으로 비로소 그 과정이 마무리된다. 장편지원작 중 한편은 CGV 아트하우스를 통해 개봉하는데, 당시 CGV 아트하우스가 <아기와 나>(2016, 연출 손태겸)를 개봉작으로 선정했었다. 이후 기획전을 돌며 사실상 개봉하는 건 포기했었는데, 기획전 끝내고 새로운 시나리오 들어갈 때 즈음 연락을 받았다.

자신을 알아갔던 시기라 했는데, 스스로 어떤 성향이든가.
평소 미술과 글 쓰는 것에 관심이 많고 항상 이미지가 떠올랐었다. 영화라는 매체가 두 가지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어서 영화에 끌렸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좋아하고 잘하는 걸 빨리 만났다고 볼 수 있는 게 영화 작업은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다.

학창시절에 흔히 ‘또라이’, 독특하다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아마도 내 감정과 마음을 중시해서인 것 같다. 주관이 뚜렷해서 그 점이 영화에 드러나니 연출색이 강해진다. 사실 성격은 소극적이고 조용하고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우울한 면도 있다. 그런 점들이 콤플렉스인 적도 있었다. 사회적인 나로 발돋움 하려고, 계속 나를 바꾸려고 시도하다가도 꼭 그래야 하는 건가라고 자문하기도 한다. 극과 극의 생각이 공존하는데 내 영화도 그렇다. 외피만 보면 즐겁고 명랑한데 알맹이는 어두운 사회적 문제를 다룬다.

<잘하고 싶은데>(2009) 이후 꾸준히 작품을 내놓고 있다. 독립영화를 고수한다는 게 경제력인 면을 포함해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독립영화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찍다 보니 매니악하고 비대중적이 된 거다. 일부러 독립영화를 찍어야지 이건 아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다. 지금까지 항상 세컨 잡이 있었다. 영화는 언제든지 돈 좀 모아서 하지 이런 생각이다. 그렇기에 경제적으로 힘든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 작업 중에 경제 외적으로 힘든 점은.
영화는 나 혼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의 협동 작업으로 완성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인 거다. 그런 면에서 피로감이 높았다. 영화 현장은 프리프로덕션부터 갈등과 조율의 전쟁이다. 그렇다고 내가 스태프들과 의견 충돌이 잦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충돌 없이 평화로운, 유한 현장이었다. 다만 어느 순간 현장에서 눈치 보고 있다고 할까. 분위기를 살펴서 스태프를 아울러야 하고 의견을 조정해야 하는 데 그게 너무 힘들더라. 내가 에너지가 낮고, 그다지 사회적인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비사회적인 편인데 얼마나 힘들었겠나. 바로 그 때문에 영화 일이 적성에 맞는지 고민했고, 어떤 때는 혼자 작업할 수 있는 비디오 아트나 영상 작업으로 마음이 기운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촬영하면 또 재미가 있다. 그러니까 떠날 수 없는 거지.

어떤 성격인지 이해된다. 외부에서 힘을 받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뺏기는 성향인 거다. 그렇게 힘들 때 의지가 되는 사람이 필요하겠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남자 친구가 오래된 친구인 동시에 연인이다. 나는 관객석에서 지켜보는 게 좋은데 마치 내가 무대 위에 올라간 느낌, 낯설고 어렵다.


특별히 독립영화만 고수하는 게 아니라면 상업 영화로 넘어갈 생각은 없나. 상업 영화 스태프로 참여한다든지.
솔직히 생각을 안 해봤다. 다만 현장에 나가 있는 친구들로부터 다른 영화의 스태프를 해봐야 경험이 쌓인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들 말이 상업영화에 비하면 독립영화는 말 그대로 소꿉장난이라고 하더라. 혼자 영화를 하는 건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고 경험을 쌓으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귀에 다가오지 않았다. 경험을 쌓는 것을 목적으로 다른 현장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시간에 글을 쓰고 싶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찾아보고 싶다. 확실한 누군가가 있어 나를 불러 주지 않는 한 아직은 생각 없다.

좀 전에 세컨 잡에 대해 언급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었는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최근 일은 인문학 도서관에서 영화와 미술 부문을 담당하여 어린이부터 성인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거였다. 지금은 시나리오 작법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시나리오 강의 같은 경우는 자체적으로 SNS에 홍보해서 수강생을 모집했었는데 이를 본 대구 미디어 센터, 여성영화인 협회에서 연락이 와서 특강 형식으로 진행 중이다.

주로 강의를 해 온 것 같다. 강의하는 게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하는데 적성에 맞던가.(웃음)
아니, (웃음) 지루할지라도 너무 많이 알려준다 싶을 정도로, 많은 내용을 전달하는 게 내 수업 스타일이다. 농담하며 재미있게 혹은 설렁설렁 못 하겠더라. 성인을 대상으로 수업할 경우에는 그나마 ‘무대화된 나’ 즉, 나를 덜 포장해도 되는데, 아이들 대상 강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작업이 잘 안 풀리는 중에도 ‘밝은 척’ 하는 게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해당 관장님이 참 잘 해 주셨고, 5년이나 해왔음에도 얼마 전 그만뒀다. 일주일에 한 번만 수업하면 되고, 시간 대비 강의료도 상당했는데 하루 수업으로 일주일 전체가 힘들어져서 안 되겠더라.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보통 ‘자식같은 작품’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내 경우에는 내가 영화의 자식이 아닌가 한다. 영화가 나를 키워준 것 같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그 안에 다 녹아 있으니 말이다. 고민하고 답을 구하려 노력하고 그러다가 깨닫고 성장하고 그 모든 것들이 영화를 통해 가능했었다.

좋아하는 영화를 꼽는다면.
차이밍량 감독의 <애정 만세>(1995)를 비롯해 그의 모든 영화를 다 좋아한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이 고립돼있고 관계를 원하면서도 막상 맺으려고 하면 회피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나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그의 연출이 포토제닉하고 미술과 시각적인 면이 강한데 그런 면도 아주 마음에 든다. 특히, <구멍>(2000)은 사운드라는 게 뭔지를 체험한, 영화를 시작한 계기가 된 작품이다. 그의 영화는 조작조각 돼 있음에도 확 끌어당기는 그래서 그 앞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추상적인 그림 같다. 힘든 순간에 틀어만 놔도 위로가 된다. 개인적으로 차이밍량 감독을 모르지만, 왠지 감독과 영화가 닮았을 거라고 본다. 아직 나와 내 영화는 그다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점차 닮아갔으면 한다.



최근 인상적인 일이나 행복한 순간은.
<수성못>이 개봉해서 진심으로 기쁘다. 언론시사회에서 함께 해준 배우들이 스포트라이트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 좋았다. 그들이 나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간 얼마나 개봉을 기다리며 속이 탔을지! 또, 평소 무뚝뚝한 남동생과 엄마가 개봉해서 자랑스럽다고 말하는데 순간 울컥했었다.

소울메이트 남친의 칭찬은 없었는지?
사실 그가 없었다면 <수성못>을 만들지도 못했을 거다. 정말 얼굴만 봐도 휴식처다! 내가 영화 작업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따로 칭찬은 없더라. 다만 사진 이상하게 나왔다고 놀리더군. 아마도 올해 결혼할 거다.


2018년 4월 20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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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주)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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