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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향을 주는 영화를 생각한다 <걸캅스> 이성경
2019년 5월 17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이성경에게 최근 강한 인상을 남긴 영화는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2018)이다. 레바논 빈민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이 부모를 고소하는 상황에 이르는 일련의 이야기를 보고 난 그는 영화의 역할을 생각한 것 같다. 아주 먼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 평소에는 알기조차 어려웠던 일을 생각하게 만드는 게 영화의 힘이라면, 그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일 것이라고 말이다.

라미란과 함께 형사 오락물 <걸캅스>를 선보인다. <레슬러>(2018) 이후 두 번째 영화 주연작이다.
<레슬러>때보다는 조금 더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았다. 첫 촬영을 시작할 때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끼던 시기였다. 마치 침체기처럼 내가 작게 느껴지고 대사 한 마디 떼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감성으로 다가가야 할 장면까지 이성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균형을 잃게 되더라. 자유롭게 카메라 앞에 서 있기 어렵던 시기에 작품을 하게 돼 부담감이 컸다.

모델로 데뷔해 연기자로 전향했다. 업계를 바꾸며 새로운 일에 적응해나가는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모델 때는 정말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몰랐다. 기사도 잘 안 봤고 TV 앞에 앉아있던 적도 별로 없다. 집이 일산이었고 일터는 주로 강남이었기 때문에 할 일을 다 하고 집에 돌아오면 늘 밤이었다. 그러다가 배우가 되어 머리를 하러 갔는데, 내가 누구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더라. 샵에 따로 부탁을 했다. 내가 인사를 해야 할 만한 분들이 오면 꼭! 미리 알려달라고…(웃음)

데뷔작인 <괜찮아, 사랑이야>(2014) 이후 <치즈인더트랩>(2016) <역도요정 김복주>(2016) 등 여러 편의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하며 여러모로 현장감을 익혔으리라고 본다.
첫 작품인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부터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좋은 감독님과 작가님을 만나서 그랬을 것이다. 날라리 고등학생 ‘오소녀’가 했던 “하룻밤안 재워줘요. 아저씨 집 넓잖아” 같은 대사는 아직도 생각난다. 그때는 내가 카메라에 어떻게 보이는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야 할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역할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어쩌면 차라리 이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서 더 순수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새 영화를 통해 라미란과 긴밀한 호흡을 맞추는 게 걱정도 됐을 듯싶다. 그가 워낙 베테랑 배우인 데다가, 스스로의 연기에 대한 고민도 있었던 때였다고 하니…
미란 선배가 출연한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같이 연기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이었고, 선배에게 좋은 파트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내 고민때문에) 흔들리면 절대 안 돼, 영화와 ‘지혜’역에 집중해야 해! 하는 생각이 제일 강했다. 다행히 선배가 현장에서 많은 걸 알려주셨고, 연기가 잘 안 풀려서 처져 있으면 먼저 알고 다가와서 마음을 풀어주려 하고, 장난도 많이 쳐주셨다. 선배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나 느껴져서 너무나 감동했다. 단단하게 굳어 있던 내 마음이 그때 풀어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최근 문제가 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떠올린 관객이 많을 것 같은데.
<걸캅스>는 이미 작년 여름에 촬영을 끝낸 작품이다.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쓴 건 3~4년 전으로 안다. 본의 아니게 어떤 사건과 겹쳐 보이게 됐다. 당연히 누구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질문이 계속해서 나오는 걸 보면 요즘 사회가 이런 문제를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다만 영화 자체가 메시지를 엄청 (노골적으로) 드러낸다고 하기에는, 너무 유쾌하다고 본다. 영화를 만든 모두의 바람은 그저 사람들이 재미있게 웃고 스트레스를 풀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 영화가 다룬 문제에 관해 어느 정도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

당신도 영화 촬영 전부터 디지털 성범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나.
많은 사건이 터졌고 뉴스로 보도됐다는 건 알았지만, 아무래도 직접 겪은 일이 아니다 보니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돼 병실에 누워 있는 신을 찍었는데, 무의식중에 네 살 밑 여동생이 생각났다. 내가 연기하는 피해자가 동생 또래라고 생각하니 눈이 질끈 감기더라.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소름 끼쳤다. 분명 누군가는 이런 피해를 봤고, 평생 아픈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때 내 속에서 불같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런 울분의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도 등장한다.
진심을 드러내야 하는 신이라 처음에는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감독님이 빨리 오케이 사인을 주시더라. 감독님은 그런 사인이 아주 확실한 편이다. 자신이 중심에 서서 배우에게 주저없이 맞다, 아니다를 말해줘서 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다. 감정을 터뜨리는 신에서는 내 진심이 느껴졌다고 하시더라. 보는 분들도 그랬으면 한다.


개봉 전부터 인터넷 일각에서는 영화가 뻔할 거라는 지적이 일었다. 누리꾼들이 예상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든가…(웃음)
나도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다 봤다.(웃음) 만약 영화가 그들이 쓴 내용과 비슷했다면 나도 당황했겠지만,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영화만의 매력이 있다고 본다. 좀 진지해질 만 하면 웃겨버리고, 오그라들 것 같으면 틀어버리는 식이다. 그저 보고 좋아해 줬으면 한다.

라미란, 수영, 염혜란 등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는 맛이 꽤 좋은 편이다. 연기하면서 당신도 많이 웃었을 것 같다.
워낙 웃음을 못 참는 편이다. 실제로 웃은 장면이 영화에 그대로 담기기도 했다. 미란 선배가 영어 투로 “30분 뒤에 솨라나~”라고 말할 때 그게 너무 웃겨서…(웃음) 다행히 감독님이 그냥 웃어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주로 미란 선배의 코믹 연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내는 걸 임무처럼 생각했다. 욕심을 부린다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만한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힘주기보다는 걷어내는 연기를 했다.

최근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나.
<가버나움>을 봤다. 굉장히 신기했다.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한 아이들도 아니고 실제 난민인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발음, 눈빛, 표현까지 저렇게 대단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여러 생각이 들더라. 영화라는 게 평소에는 생각할 수 없던 것들을 알게 하는 것 같다. <가버나움>을 통해서 저 멀리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생각하게 됐다. 그런 건 분명 좋은 영향 아닌가. <걸캅스>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만 주었으면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얼마 전 존 메이어의 라이브 공연 영상을 틀어놓고 있는데 기분이 좀 좋더라.(웃음) 얼마 만에 느끼는 감정인지 모른다. 요즘에는 우울함에서 벗어나려고 이쪽저쪽으로 많이 움직이는 중이다. 나만의 감성을 되찾아야 연기할 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테니까.

사진 제공_CJ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17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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