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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함을 나누고 따뜻함을 공유하는 코미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이계벽 감독
2019년 9월 24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흔히 ‘코미디’로 통칭하지만, 그 안에 자리한 웃음과 눈물의 페이소스는 서사와 연출자 그리고 배우에 따라 다채로운 얼굴을 지니게 된다. 사고 후유증으로 지적 장애를 갖게 된 ‘미스터 리’를 주인공으로 관객을 찾은 이계벽 감독. <럭키>(2015)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이전에도 그는 꾸준히 비하 없는 선한 웃음을 선사해왔었다. 소외당하고 불리한 상황에 놓인 인물에 애정이 간다고 멋쩍게 웃으면 밝힌 이 감독의 마음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이제 그가 조심스럽지만, 진정성 있게 대구 지하철 참사 관련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고통의 시간 속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위로를 보내고자 한다.

다소 뜬금없지만,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볼 관객에게 보낼 한마디로 인터뷰를 시작해보자.
영화 관련 리뷰가 올라오면서 편견이 생기고 걱정이 많은 것 같은데 미리 선입견을 갖고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 초점 맞춘 따뜻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다.

초반 미스터 리 ‘철수’(차승원)의 코믹하고 엉뚱한 행동에서 유발되던 웃음이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진지해진다. 특히 대구 지하철 참사를 직접적으로 다룬 부분이 그렇다. 연출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 픽션화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내보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연관 장면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했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 완성한 영화의 소구점은 무얼까.
세상사라는 게 100% 괴롭거나 또 완벽하게 즐거운 순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영화를 볼 때 유쾌하고 따뜻함을 느끼고 나아가 가슴 벅찬 영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이 가진 선함과 따뜻한 시선을 공유했으면 한다. 이웃 간에 어우러져 즐거움을 나누고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벌새>도 영화의 분위기와 서사는 전혀 다르지만, 1994년에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주요 변곡점으로 작용한다. <벌새>와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보고 그동안 아파서 외면했던 참사를 마주할 시기가 됐나 싶었다.
그런가. 시나리오를 받고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참사 관련자들을 만났다. 당시 근무했던 소방관들을 뵈었는데 그분들의 공통점이 사고 당시 구조상황과 분위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는 거였다. 그만큼 떠오르기 싫은 기억일 테다. 그분들을 만난 이상 외면할 수 없더라. 대중들은 잊었지만, 그들은 계속 힘든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죄송했고 마음에 남았다.

<커플즈>(2011), <남쪽으로 튀어>(2012) 각본, <야수와 미녀>(2005)와 <럭키>(2015) 그리고 이번 <힘을 내요, 미스터 리>까지 꾸준히 코미디 장르를 작업해왔다. 이계벽 표 코미디의 톤앤 매너는 뭘까. 개인적으로 비하 없는 착한 웃음을 꼽겠다.
음, 조금은 소외받고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고 애정이 기울여진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역시 그런 모습이다. 예를 들면 <남쪽으로 튀어>의 경우 세상에서 옳다고 믿었던 것에 내몰리고 내몰려 섬까지 가게 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의 행복찾기를 응원하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영화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초반 ‘철수’가 그야말로 미스터리한 모습을 보인다. 정신 연령 수준을 가능하기 힘든데, 의도적인 것인가.
사고 후유증으로 얻은 장애와 일반적인 지적장애는 그 양상이 다르다. 대체로 정상인데 어느 부분에서 특히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가령 다 정상인데 방향 감각만 잃어버린다든지 유독 숫자에 힘들어 한다든지다. ‘철수’(차승원) 역시 비슷한 경우인데 초반 궁금증이 극이 진행되면서 점차 해소될 것으로 생각해 일정 부분 의도한 것도 있다.

얼굴 근육을 꿈틀거리며, 주먹 끝을 꼬면서 팔뚝을 과시하는 모션이야말로 ‘철수'의 시그니처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다분히 만화적인 모습인데 어떻게 탄생한 건지. 보는 내내 궁금했었다.
위협적인 존재나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본능적인 방어력이 발동한다고 생각했다. 또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는다면 그에 반응하겠지. 그래서 양팔을 벌리고 근육 자랑하는 모습을 생각했는데 세부적인 표정과 동작은 모두 (차) 승원 형님이 준비해 온 거다. 워낙 캐릭터 분석에 철저하신 분이라 나는 그냥 믿고 따라갔다. 코믹하다고 다 같이 웃었지만, 감독 입장에서 배우의 노력과 연구가 보여 아주 고마웠었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스틸컷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스틸컷

코믹하게 나가다 반전을 꺼내 들어 눈물 혹은 감동을 자극한다는 시선도 한편에선 있다.
그렇다. 장르적 구조 혹은 일종의 클리셰라 할 수 있는데, 유사 장르를 다루는 영화에서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견해가 아닌가 한다. 비켜나가기 어려운 지점인데 만약 영화가 억지로 다가가 결국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한낱 신파로 치부되고 말 거다. 하지만 스토리 내 필요하고 감성을 나눠야 할 부분으로 받아들인다면 영화를 다 본 후에는 감동으로 느낄 거로 본다. 작업하면서 열심히 잘 만들 것에 집중하지 결과를 미리 예단 혹은 예측하며 만들지는 않는다. 일부러 웃기고 울려 감동을 쥐어짜기보다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노력했다. 감정을 격앙시킬 수 있는 음악 등을 최대한 배제하고 담담하게 간 이유다.

전작 <럭키>(2015)가 크게 흥행했고 그에 따른 부담감과 동시에 차기작 연출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거로 본다.
그렇게 많은 분이 생각하지만, 의외로 전작의 흥행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았다. <럭키>의 성공으로 내 영화 인생이 흔들릴 나이도 아니고 그와 관련해 부수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욕심도 없었거든. 확실히 행운을 잡은 느낌인 것은 맞다. 질문한 것과는 다른 부담감을 크게 안고 작업했다.

어떤 부담감인가.
영화에서 다루는 참사의 대상이 명확하다. 그분들께 우리 영화가 외면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비극적인 사고를 기억하고 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다루려 했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고자 했는데 혹시 의도와는 달리 상처가 되지 않을지 우려하는 마음이 컸다. 영화의 흥행 결과와는 별도로 말이다.

<럭키>의 유해진 배우와 미스터 리 ‘철수’를 연기한 차승원 배우가 절친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처음부터 그의 캐스팅을 염두에 둔 건가.
제작사인 용필름의 전작 <독전>(2017)에 (차) 승원 선배가 특별 출연했고, 이번 역할에 어떻겠냐고 하더라. 부성애와 코믹을 접목해 연기할 배우가 많지 않은데 감사한 제안이었다. 선배가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재미있다고 한 번에 수락해줘 운이 좋았다. 이후 ‘철수’ 캐릭터에 관해 매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스틸컷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스틸컷

우문이지만, 그래도 하련다. 일전에 두 배우를 비교하는 것은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을 받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말 그렇다. 웃음에 대한 애정과 코미디 감성 그리고 일상에서 재미있는 게 두 선배의 공통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연기를 대하는 방식이라고 할까. 승원 선배는 사전 준비를 굉장히 철저하게 해오는 편이시다. 그렇다고 경직되거나 융통성 없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말길. 해진 형은 현장성이 아주 강하다. 순발력 있게 그 순간 포착해내는 연기가 있는데 그 점이 대단하다. 상대 배우의 반응을 보고 연기 톤이 순간 바뀌는데 단순한 애드립이 아닌 그야말로 상당한 연기의 차원이 아닌가 한다.

‘철수’의 딸 ‘샛별’을 연기한 엄채영 배우의 연기가 좋더라.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한 건가.
최종 선발까지 (엄) 채영이가 다섯 번 정도 오디션을 거쳤었다. 최종 후보 중 채영이가 돋보였던 게 과자 먹는 연기였다. 다른 아역 배우들은 아픈 아이 역할이다 보니 모두 힘없고 아픈 모습을 연기했는데 채영이만 코믹 톤으로 밝고 씩씩하게 연기하더라. 말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해당 장면의 분위기를 알아채는데 정말 만장일치로 선택할 정도로 탁월했다.

부녀 호흡도 매우 좋았다. 차승원 배우 역시 딸이 있어서 그런지 참 자연스럽더라.
사실 처음에는 채영이가 아직 연기가 부족해 승원 형에게 지도를 부탁하려고 했는데, 웬걸 채영이를 보며 형이 자극받는 것 같더라. 서로 애드립 치면서 어찌나 현장에서 잘하던지!

각본과 연출을 겸하고 있는데 각기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일단 여러 선택과 결정 그리고 책임감 등에서 좀 더 자유롭고 편하다. 감독은 작품을 완성해 나가면서 맛보는 성취감은 있지만 그만큼 할 일이 많다. 양쪽 모두 매력적인 작업이다. 가장 좋은 것은 영화를 보는 거다. (웃음) 다른 이의 영화를 보다 보면 창작 욕구에 자극받곤 한다.

향후 도전하고픈 장르는.
사극, 그것도 무협 사극이다. 사실 무협 사극은 국내 영화계에서 거의 사장된 수준이다. 과거 <외팔이 권왕>(1978) 시리즈가 인기를 끈 시절도 있었는데 장르적 개념과 쾌감과 관심 모두 맥이 끊어진 게 현실이다. 그런 사극의 영광을 되돌리고 싶다. 시나리오도 얼추 준비됐는데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진다. (웃음)

마지막 질문! 최근 당신을 사로잡은 주제, 즉 관심사는.
얼마 전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살인마 잭의 집>(2018)을 봤다. 영화를 보고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특정하진 못하겠으나 할 수 없고 못 할 이야기는 결정됐다 싶었다. 내 머리와 상상력 밖의 영역에 있는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또 감독과 그의 작품이 불편한 한편 위대하다고 회자되는 이유를 알겠더라.

2019년 9월 24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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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용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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