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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의 역사를 응시하는 방식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 조소나 프로듀서
2020년 2월 27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1968년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한국군 중 일부는 베트남 꽝남성에 위치한 퐁니, 퐁넛 마을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기억의 전쟁>은 소위 ‘베트남 전쟁 특수’ 덕에 경부고속도로를 깔고 경제 개발을 이룩했다는 단편적인 근대사 설명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응시하는 작품이다.

일본으로부터 겪은 피해에 공분해오던 입장에 익숙하던 한국이, 베트남에 입힌 가해를 성찰해야 하는 위치로 옮겨가는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썩 익숙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기억의 전쟁>을 만든 이길보라 감독과 조소나 프로듀서는 이 ‘낯선’ 가해의 역사를 세상에 꺼내 보인다.





전작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에서 ‘코다’(CODA) 이야기를 다뤘고, 신작 <기억의 전쟁>에서는 한국군에게 학살된 베트남 민간인의 사연을 다룬다. (기자 주: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자로 청각 장애인 부모를 둔 비장애인 자녀를 뜻한다.)

이길보라 감독(이하 ‘이’): (살짝 놀라며) ‘코다’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실험 무대에서 열린 ‘코다’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본 적 있다. 하지만 당신의 전작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보지 못했다.(웃음) <기억의 전쟁> 이야기에 앞서, 간단히 전작을 소개해 줄 수 있나.

이: 훌륭한 연극이군.(웃음) <코다>는 농인 부모의 세상을 ‘코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작품이다. 청사회와 농사회를 왔다 갔다 하며 자라는 ‘코다’의 이야기를 다룬다. 내 입장에서 보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기억의 전쟁>에 등장하는 베트남 사람 ‘딘 껌’ 씨도 청각 장애인이다. 영화 내내 수어를 사용하던데, 다른 사람과 달리 당신은 그가 전하려는 말을 알아듣기가 더 쉬웠겠다.

이: 베트남 현지에서 활동하는 분께서 내가 껌 아저씨를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실제로도 다른 사람보다 내가 그분이 하려는 이야기를 훨씬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그의 시선으로 전쟁과 학살을 이야기하면 영화가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 그를 중심인물 중 하나로 정했다.

조소나 프로듀서(이하 ‘조’): 껌 아저씨는 본인 이름과 몇 군데 지명만 쓸 줄 아는 상태였다. 워낙 시골이다 보니 그동안 그 아저씨가 뭐라고 말하는 건지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하더라. 다행히 이길보라 감독이 껌 아저씨의 수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 내용을 베트남어로 통역해서 또 다른 피해자인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와 응우옌 럽 아저씨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엄밀히 말하면 껌 아저씨가 사용하는 건 베트남이 사용하는 공식 수어는 아니다. 그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자신과 주변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일종의 약속 같은 ‘홈 사인’을 사용한다. 처음에는 나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기본적으로 수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출발 지점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의 표현 체계를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기억의 전쟁>에 출연한 '딘 껌' 씨.
<기억의 전쟁>에 출연한 '딘 껌' 씨.


‘딘 껌’씨의 증언은 특히 구체적이다. 60년대 당시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은 돈이 많았고, 여자를 샀다고 말한다. 다만 미군과 달리 마약은 하지 않았다고 홈 사인을 통해 증언한다.

이: 농인이라고 해서 항상 진실만 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언어학자에 따르면 껌 아저씨가 하는 이야기는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 많다고 한다. 다른 두 피해자가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많이 이야기하는 반면, 껌 아저씨는 자기가 본 내용만 이야기한다고 했다. 감정 표현은 언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수어를 배우지 못한) 껌 아저씨는 상대적으로 자기 기분을 표현하는 훈련이 덜 돼 있다는 거다. 껌 아저씨는 늘 주체가 아니라 주변인의 입장에 서서 무슨 일이 어쨌다, 저쨌다 전하는 식이었다.


그 어디쯤의 대목에서 베트남 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군의 성범죄 문제도 언급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이: 그런 이야기를 집어넣으면 마치 선과 악, 흑과 백을 나누는 고발 영화처럼 보일 것 같았다. 우리 영화의 기획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영화가 그 몫을 해줄 것이다.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 참전 군인을 비난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 중 일부가 가해자라는 사실은 안고 가야 하지만, 그 시절을 과연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길보라 감독은 지난 17일(월) 언론시사회 당시 할아버지가 베트남 참전 군인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이: 아마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이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수긍하지 않으셨을까. 당신은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지만 내 세대에서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베트남 참전 군인이 자기들 몫을 해낸 것처럼, 나도 내가 해야 할 몫을 하는 거다.


영화에는 베트남 참전 군인의 모습도 여러 차례 담겼다. 할아버지가 되어 모인 이들은 집회 도중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고 큰 소리 내 주장하기도 한다.

조: 집회 현장에서 우리 카메라에 총을 쏘겠다는 분도 많았다.(웃음) 소위 축복받고 안전하게 살아온 너희 어린 여자들이 어떻게 베트남 전쟁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냐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방인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당시에 뭐가 진짜 문제였는지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순적이게도, 요즘 중고등 학생들은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의 이야기도 잘 듣고, 그들에게 학살당한 베트남 민간인 피해자의 이야기도 잘 듣는다. 뜨거운 사안을 차갑게 대하는 세대가 등장해야만 그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 봉준호 감독은 유복했으니까 가난에 대해 말할 수 없나?(웃음) 경험을 해봐야만 말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모든 문제에 접근하는 길을 닫게 만드는 것 같다.

조: 한편으로는 그분들도 너무나 혼란스러우실 것이다. 한쪽에서는 본인이 참전했던 당시 베트남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부고발 형태로 고백하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다른 한편으로는 퐁니, 퐁넛 마을 사건과 상관없이 후방 부대에서 보급을 맡았던 분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야만적인 전쟁 상황에서도 베트남 참전 용사로서 우리나라를 먹여 살렸다는 사실 외에 다른 이야기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삶을 지탱해온 무언가가 무너지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분은 차라리 수류탄을 가져와서 자기 자신을 해치겠다고도 하셨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은 날은 나까지 굉장히 속상해졌다.



그런 상황이 지속하던 2018년 4월, 한국군 학살로 온 가족을 잃은 ‘응우옌 티 탄’씨가 한국을 찾았다.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김영란 전 대법관이 주심을 맡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조: 영화 작업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탄 아주머니께서 시민평화법정에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와 이길보라 감독은 제작 기간을 더 늘려서라도 그 행사를 촬영하기로 했다. 그래서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더 길었다. 그게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특징인 것 같기도 하다. 인물의 심경이나 행동이 변화하는 순간을 따라가야 한다. 모의법정을 찍고 나서야 <기억의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국 시민사회의 주도로 상황이 이 정도까지 진척됐는데도 일반 대중은 아직 관련 사건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 과목에서도 배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베트남의 젊은 세대마저 이 문제를 모른다. 우리나라 교과서에서도 베트남 전쟁이라고 하면 (파병의 대가로) 경부고속도로를 닦고 경제를 발전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주로 나오지 않나. 다만 얼마 전 처음으로 고등학교 검정 교과서 중 한 곳이 시민평화법정에 관한 내용을 실었다고 들었다.

 수요시위에 함께한 '응우옌 티 탄' 씨.
수요시위에 함께한 '응우옌 티 탄' 씨.

영화를 보면 베트남에서도 이 문제를 언급하는 걸 꺼린다고 하던데, 어째서일까.

조: 경제발전의 맥락 때문이다. 베트남에는 ‘도이모이(doimoi) 정책’이라는 게 있다. 우리로 치면 경제개발 7개년 계획과 비슷한 건데,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식의 내용이다. 우리나라가 가장 많은 차관을 받은 나라가 일본이듯, 베트남도 제3 무역 상대국이 한국이다. 그만큼 (한국의 가해를) 쉽게 이야기하는 게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납득이 된다.

이: 베트남 다낭에 가면 한국 관광객밖에 없다. 다낭에서 출발하는 대다수 비행기가 한국으로 향한다. 이런 상황에서 쉽게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을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입은 피해에 관해서 열렬히 공분하는 우리나라지만, 베트남에 입힌 가해에 관해서는 잘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조: 재미있는 현실이다. 우리 역사에서 조금만 반추해보면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일인데, 피해자가 타국이고 우리가 가해자인 상황이 되니 그 맥락에 감정이 잘 이입되지 않는 것이다.

이: 그래서 젊은 세대가 이 영화를 더 많이 봐야 한다.(웃음) 영화에 나오는 호평중학교 학생들 세대가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접하고 자기 시선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다.



2018년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전장>의 미키 데자키 감독과 함께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 두 문제는 어떻게든 엮여 있다. ‘위안부’ 피해자가 만든 나비 기금 덕분에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 시작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탄 아주머니가 용기를 내 한국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억의 전쟁>과 <주전장>을 본 관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주전장>은 유튜브 영상 형식으로 ‘팩트’를 전달하는 반면 <기억의 전쟁>은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거리를 두고 조명한다. 미키 데자키 감독과는 각자의 표현 스타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이: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에 관해 질문하는 다큐멘터리 <아워 바디즈>를 기획 중이다. 베를린영화제가 주최하는 ‘탈렌츠 랩스’(Talents labs)에 선정돼 여러 전문가에게 멘토링을 받고 작품을 기획, 개발하는 일정을 소화하러 갈 예정이다. 이 작품 역시 조소나 프로듀서와 함께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조: 스키 탈 때.

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북한산에 다녀왔다. 눈 내리는 북한산을 보니 좋더라.(웃음)



사진_ 이종훈 실장(스튜디오 레일라)


2020년 2월 27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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