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가 감사용 . . .
1월에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로 참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그래도 명색이 영화 마케터가 꿈인 사람이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게을리했다는 점에서 반성의 감정이 앞섭니다. 어쩌면, 마케터가 갖춰야 할 아주 기본적인 덕목의 하나인 글쓰기 조차 전 소홀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감상평은 영화에 대한 평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자기 고백서 같은 형식의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얻고 싶으면 분은 미련없이 back를 누르셔도 됩니다. ^^ 혹은 조금이라도 스포일러가 걱정되시는 분 역시 back를 누르심이... ^^;;;
저는 졸업후에 처음 운좋게도 영화 ‘알포인트’의 ‘현장홍보기록’이라는 특이한 경력으로 영화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운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네요. ^^)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합류하게 된 영화 현장은 예상한 것만큼 힘들었지만,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케터로서는 이례적으로 영화 전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죠. 어찌나 신기하고 또 행복했던지 지금 생각하면 힘들었던 시간마저 감사하게 생각이 될 따름입니다.
그러나, 많이 자만했던 모양입니다. 이제 막 시작인 풋내기가 스스로를 과신하고 있던거죠. 닭살스런 말이지만 ‘나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누구 못지 않아.’라는 ‘생각’만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알포인트’의 예상치 못한(?) 흥행까지 겹치면서 ‘일종의 자부심’이 플러스되어 괜히 제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정작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구요.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보내는 친구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즐기기도 했었습니다. 오만이었습니다. 겨우 영화 한편을 겪은 초짜중에 초짜가 말이죠.
아무리 취업난이 심하다 하더라도 솔직히 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준 ‘꿈’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첫 영화가 끝나고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면서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기회에’라는 말을 들으면서 번번히 낙방의 쓴 잔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가끔 하는 설문 조사란에 직업을 써야 할 칸 앞에서 눈앞이 깜깜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백수’라고 쓸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ㅜㅜ 비교적 수월하게 첫영화를 경험했지만,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말이 제대로 실감날 만큼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의기소침에 있던 와중에 시사회로 ‘슈퍼스타 감사용’을 보게 되었죠.
많이 감동받고 또 지금의 제 모습을 많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영화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볼까 합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이하 ‘슈퍼감’)은 일반적인 스포츠 영화의 관습에 충실하면서도 액티브한 스포츠의 긴장감을 드러내는 비주얼보다 오히려 더 탄탄한 드라마 트루기가 주무기로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사실 ‘야구’라는 소재를 굳이 쓰지 않아도 말이 될만큼 시나리오에 들인 공이 크거든요. 그렇지만, 이 영화는 ‘야구’가 아니면 절대 완성될수 없기도 하죠. 전 개인적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디선가 읽었던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글귀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감사용 선수는 1승 1무 15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긴 ‘프로’ 선수였습니다. 불사조로 불린 박철순 선수가 연승기록을 세우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때 감사용 선수는 정규방송이 끝남을 알리는 자막이 올라갈 때 쯤이 되어서야 마운드에 올라서는 그야말로 패전처리 전문투수라는 절대 명예롭지 못한 호칭으로 불려졌습니다. 그것도 아는 사람만 알았겠죠. 하지만, 영화는 상대적으로 크게 성공한 박철순 선수가 아닌 이 초라한 직장야구출신 감사용 선수에게 카메라를 비춥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볼 때는 이해하기 힘든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감사용이란 한 인물이 흘렸던 순수하게 흘렸던 ‘땀과 눈물’의 진정성을 보고 있노라면 왜 박철순 선수가 아닌 감사용 선수가 되어야만 했는지, 왜 겨우 1승만을 겨운 이 선수에게 슈퍼스타라는 호칭을 당당하게 붙였는지 알수 있게 됩니다.
스포츠 영화란 말이 무색할 만큼 감사용 선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비교적 세밀하게 관찰해나갑니다. 직장인으로서 힘들게 투수 공채에 참여하는 모습,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팔이 떨어져라 계속 공을 던지는 모습, 자신보다 어머니의 건강이 항상 먼저인 효심 깊은 아들의 모습 등등. 물론 알려진대로 실제와 약간 다른 에피소드도 첨가되긴 했지만, 감사용 선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기에 관객은 좀 더 이 낯선 이름의 투수에게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감사용 선수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스크린으로 옮겨 오면서 오히려 더 실화가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1승 밖에 거두지 못한 패전투수에게도 숨겨진 아름다운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아무도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죠. ‘슈퍼감’은 범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그 조그마한 틈새를 파고드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실화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말 있잖아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
잔인할 정도로 처철하게 패배하고 또 패배하는 삼미 슈퍼 스타즈의 경기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측은지심을 자아냅니다. 왜 그렇게 계속 지기만 하는 걸까요? 삼미 슈퍼스타즈의 선수들은 이제는 지는 것에 익숙해져서 화가 나지도 않을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패배의식의 수렁은 그나마 남아있는 미약한 동료의식과 팀웍마저 잠식해 버리고 맙니다. 그들 누구도 그 것을 원하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승리가 있으면 언제나 몇배의 패배가 함께 하는 것이 냉엄한 프로의 세계.
‘프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약육강식의 또 다른 말입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길고 긴 연패 행렬은 급기야 운동선수가 운동을 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발생시킵니다. 그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20연승의 대기록 달성을 눈 앞에 둔 박철순 선수가 선발(대 OB전)로 나서는 바로 그 경기 앞에서 이런 저런 핑계로 모두 맞대결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때 패전처리 전문투수 감사용은 겁도 없이 선발에 나서겠다고 자청합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감사용 선수에게는 ‘유일한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실제 감사용 선수가 박철순 선수가 맞대결은 딱 한번 했다고 하는데 그 시점은 박철순 선수의 16연승일때라고 합니다. 이 정도는 ‘영화적 허용’으로 애교있게 봐줄 수 있는 정도겠죠. ^^
이제부터 스포츠 영화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야구장을 가득 메운 함성소리와 함께 관객은 그때의 그 야구장, 그 경기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갑니다. 중요한 시점의 경기에서 드러나는 선수들의 극도의 긴장감을 가장 현기증(?)나게 보여주기 위해 극단적인 클로즈업 샷은 얼굴에서 흐르는 땀 한방울 한방울까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선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는 선수들의 눈높이에서 부지런히 계속 움직입니다. 어쩌면, 야구장에 직접 갈 때 보다 더 생생한 느낌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죠. 긴장감의 극대화를 위해 컷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왠만한 액션영화보다 컷수가 많은 느낌입니다. 감사용 선수와 박철순 선수의 피칭을 교차편집한 것도 꽤나 밀도있게 긴장감을 높여줍니다. 같이 영화를 보던 후배는 마치 삼미 슈퍼 스타즈의 팬클럽이 야구장에 와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삼미 선수들에게 아이처럼 박수를 보냅니다. ^^ 어느새 그 넓은 그라운드는 20연승을 앞둔 박철순 선수가 아닌 감사용 선수에게 기를 불어넣기 시작합니다. 감사용 선수의 시점샷은 정말 알면서도 당하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최대의 클라이 막스인 경기 장면이 감독 의도대로 빛을 반짝반짝 냅니다.
절대 절명의 위기이자 단한번의 기회. 이 시점에서 영화는 조금은 아쉽게도 ‘실화’ 속으로 충실하게 회귀합니다. 감독님은 어디서 ‘실화’를 살리고 어디서 ‘영화적 장치’를 극대화할 것인지 무척이나 고민을 많이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화’가 영화를 만들게 한 원동력이라면 감독님이 장치한 구성은 온전히 감독님이 관객들에게 내비치는 속내일 것입니다. 영화를 보신 준 중에는 왜 하필 여기서 ‘실화’가 강조되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실화를 재구성한 장본인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박철순 선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아닙니다. 절대 박철순 선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감사용 선수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면 충분히 납득이 갈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수없이 봐왔던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승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포기하지 않은 감사용 선수의 흐뭇한 미소와 상상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암전후 흐르는 자막은 조금은 아쉬움을 남겼을 엔딩에 대한 효과적이고 애교 있는 답변이 될 꺼 같습니다.
감사용 선수가 거둔 단 한번의 1승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질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1승까지 가기 위해서 흘렸던 수많은 ‘피눈물과 땀’이라는 ‘과정’인 것입니다. ‘슈퍼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승리’의 개념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킵니다. 포기하지 않은 것. 정말 평범한 진리. ‘과정’의 가치와 ‘꿈과 열정’의 영원성을 통한 승리자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쉽게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현실의 이유를 대면서 포기를 합리화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처참하게 함몰된 자신의 꿈은 누구한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세상은 언제나 공평하면서도 또 언제나 불공평한 아이러니와 부조리로 가득한 세계입니다. 이 속에서 우리의 눈으로 지금까지 봐왔던 가시적인 ‘성공’과 ‘승리’가 과연 진짜 ‘행복’의 필수 조건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스크린으로 감사용 선수를 만나면서 절대 그를 ‘패배자’라고 손가락질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감사용 선수는 ‘무한 경쟁’으로 점철된 ‘프로의 세계’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진정으로 본받아야 ‘슈퍼스타’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참 많이 흘렸습니다. 바보처럼.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나도 어쩌면 또다른 감사용 선수일 수도 있다는 것에 너무도 싫었던 제가 이제는 당당히 또 다른 감사용 선수가 되고 싶어졌으니까요. 아무래도 제 눈물은 ‘반성과 감동’이 반반의 비율로 섞여 있지 않을까 싶네요. ^^ 정말 꿈을 잃지 않는 마케터가 될 것입니다. ‘좋은 영화’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겠다는 저의 이상을 현실화 시키기 위해서라도 저는 또다시 구직활동에 전념하렵니다.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담으로 영화 제목 ‘슈퍼스타 감사용’에 대한 내 주변인의 반응. ^^;
웃으면 안되는데 웃음이 나오더군요.
1. 저의 어머니 : ‘이범수가 팬들한테 감사용으로 영화 만든거냐??’ (감사하는 의미로..)
2. 영화 같이 본 이쁜 후배 : ‘오빠, 수퍼스타 감사용이요?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영화 제목이 뭐냐구요? ㅡㅡ;;)
*첫 데뷔작으로서는 너무나 훌륭한 연출력과 주조연을 가릴 것 없이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는 ‘감동’을 배가시킵니다. ^^
written by sea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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