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좀 나아졌지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같은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가 열릴 때마다 우리나라 여론에서 항상 문제시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언론에서 너무 금메달리스트만 주목한다는 것이었다. 방송에선 시종일관 금메달 따는 순간만 리플레이해서 보여주고, 은, 동메달을 딴 선수들과 기타 비인기 종목은 그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외된다는 것이었다. 나도 참 TV 뉴스 같은 매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적잖이 들었었다. 아나운서가 메달 소식을 전할 때마다 '은메달(동메달)을 따는 데 그쳤다'고 곧잘 말하는데, 아니 '그쳤다'라는 말을 왜 쓰는가? 은메달, 동메달이 그렇게 가치가 없는 성적인가? 비록 금메달보다 한 두 등수 낮은 메달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도 세계 2,3위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2,3위라는 성적이 그렇게 쉬운 줄 아는가? 이런 식으로 가치를 낮게 취급하면서, 마치 그 선수들은 경기를 위해 땀 한번 흘리지 않았고, 좌절의 눈물 한번 흘리지 않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하물며 꼴찌는 더할까? 아주 티가 나게 꼴찌를 했을 때에만 그 희귀성때문인지 부각시키고, 나머지는 아예 무시한 듯 언급도 하지 않는다.
이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이렇게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꼴찌의 사연에 귀기울이는 영화다. 사실 보통 스포츠 영화들의 공식은 뻔하기 짝이 없다. 비범한 실력을 지녔고, 온갖 고난을 겪은 뒤에 결국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다. 그러면서 고난 극복과 승리의 감동을 강조한다. 그러나 <슈퍼스타 감사용>은 이런 식의 전개가 아니다. 결과도 정반대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스포츠 영화에서 해왔던 거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1982년, 삼미 특수강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며 야구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청년 감사용(이범수). 그에게 어느날 절호의 기회가 생긴다. 인천을 연고로 하고, 자신의 회사의 계열사에서 야구단을 창단하고, 투수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평소 회사 내에서 야구 시합을 할 때 길러온 실력을 바탕으로 투수 모집에서 뽑히게 되고, 이리하여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야구팀이 창단된다. 이름만 '슈퍼스타즈'이지 국가대표하나 없던 팀. 시작은 힘차게 했지만, 막상 리그가 시작된 후의 성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감사용도 막상 투수 모집에서 뽑히고 난 뒤에는 '회식장에서 설거지나 하는' 꼴인 패전처리 전문 투수라는 불명예스런 명함을 달게 되었다. 그가 마운드에 나설 때면 관중들은 슬슬 빠져나가고, 중계하던 방송도 정규 방송 관계로 중단한다며 자막을 올리기 일쑤였다. 그들이 경기에서 지는 건 거의 상식이 되어있었고, 특히나 OB 베어스와의 경기에선 맥을 못췄다. 그러나 감사용을 비롯, 인호봉(류승수), 금광옥(이혁재) 등 삼미 야구팀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은채 최선을 다한다. 그러던 중,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박철순 선수(공유)가 속한 OB 베어스가 20승을 앞둔 경기를 삼미와 하게 되고, 이 경기에서 드디어 감사용이 선발 투수로 나서게 되는데...
우선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첫번째 장점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호흡이다. 감초 코믹 연기자로 출발해 이제는 당당히 원톱 주연배우로 올라선 이범수는 이 영화에서 정말 관객으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반짝 스타덤에 오르지 않고, 꾸준한 발걸음으로 최고에 올라선 만큼 꼴찌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감사용 역에 더없이 어울리는 연기를 한다. 시종일관 사람 냄새가 물씬 나면서 흐뭇해진다. 끊임없이 실패를 거듭하지만, 좌절의 늪에 빠지지 않고 언제나 희망의 끈을 잡으며 순수한 웃음을 짓는다. <오! 브라더스>, <안녕! 유에프오> 등에서 인간미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고 이 영화에서도 또 한번 그 방면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 이범수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휴머니즘'을 가장 잘 표현할 줄 아는 배우 중 한명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주연 한명만 부각되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조연들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신선하게 살아있다. 감사용에게 여자 팬티까지 선물해가며 승리를 응원할 만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호봉 역의 류승수는 <달마야 놀자>, <효자동 이발사> 등에서 펼쳐온 조연으로서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보인다. 이제 그도 주연급으로 올라설 날이 멀지 않은 듯 싶다. '얼굴만 메이저 리그'인 금광옥 역의 이혁재는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연기 호흡을 선보인다. 그의 기존 이미지때문인지 그가 나오는 장면에선 으레 웃음을 짓긴 했지만, 영화 속에서 그의 그런 특징을 잘 활용했기 때문인지 오히려 영화에 쏠쏠한 재미를 더해주었다. <올드보이>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후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급으로 캐스팅된 야구장 매표소 직원 박은아 역의 윤진서는 특유의 맑고 순수한 이미지에 활기찬 숙녀의 이미지까지 더해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이범수와의 따뜻한 러브스토리를 통해 자칫 딱딱해 졌을 수도 있을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감사용의 어머니 역을 연기한 김수미 씨의 연기는 인간적인 따뜻함으로 가득하다. 겉으론 모른 척하지만 아들의 경기를 빠짐없이 지켜본 어머니의 마음을 그렇게 정겹게 표현하기도 드물 것이다. 억척스럽고 때론 괴팍하면서도 자식을 향한 사랑은 변함없는,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철순 역을 맡은 공유는 대사는 단 두 마디 밖에 없으면서도 왠지 모를 카리스마가 풍기는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하며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 정도면 주연급으로 나서도 손색이 없을 듯한데 조연급을 마다하지 않은 점이 칭찬할 만하다. 그외에도 좀 노는 성격이긴 하지만 충실히 직업을 찾고, 동생을 끝없이 생각하는 감사용의 형 감삼용 역의 조희봉 등 이렇게 이 영화는 주연인 이범수 뿐 아니라, 조연들까지 충실히 제몫을 해낸 내실이 가득한 영화다.
이뿐 아니다. 80년대 당시를 고증하는 것과 야구 경기를 재현하는 데에 있어서도 상당한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특히 야구 경기 장면은 실제 경기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전혀 손색이 없었다. 관객의 긴장감을 잡았다 놓았다 하며 때론 스피디하게 때론 극적인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는 야구 경기는 영화에 블랙홀처럼 흠뻑 빠져들게 했다. 개인적으로 야구를 잘 보지 않고 규칙도 잘 몰랐지만, 이런 나같은 사람을 위해 야구 경기 장면을 어렵지 않게 그려낸 점도 돋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빛났던 점은,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에 있었다. 사실 짧게 요약한다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꿈을 잃지 말아라'. 그러나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참 사람 마음에 와닿는다. 극적인승리를 거둠으로써가 아니라, 끊임없는 실패를 통해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주인공의 승리를 강조하는 기존의 스포츠 영화에서도 우리는 충분한 감동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대리만족 차원의 감동'이다. 현실에선 쉽게 이루기 힘들 성공이지만, 영화를 통해서라도 그 성공을 만끽해봄으로써 감동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감동은 '공감 차원의 감동'이다. 주인공 감사용은 우리와 전혀 다르게 보이는 비범한 승리자가 아니라, 우리가 똑같이 평범한 패배(경기에 있어서만)자다. 그가 수도 없이 실패를 겪은 만큼 우리도 삶에서 그런 실패를 수없이 지나왔고, 그렇기에 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똑같이 눈물을 흘리고, 그가 똑같이 희망으로 웃음지을 때 똑같이 웃음지으며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는 여타 스포츠 영화에서 주인공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리만족의 감동'보다 이 '공감의 감동'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런 공감을 선사해줌으로써 그 메시지도 한층 피부 깊숙이 와 닿는다. 이는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그리고 개봉 시기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짐으로써 더욱 빛을 발한다. 경제도 끝없이 불황이 거듭되고 있고, 각종 매체에선 안좋은 소식들만 연이어 전하며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영화는 정말 득이 되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실패가 생활이 되어버렸지만 언제나 희망을 향해 달리는 감사용의 모습을 보여주며 '봐, 이 사람도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달리잖아. 너도 다시 일어나서 달려봐'라고 속삭이듯이.
우리가 영화를 통해 접했던 수많은 주인공들은 항상 성공을 거머쥐고, 완벽하게 행복한 결말로 마감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실제 우리 삶은 그렇지 않다. 성공보다 실패의 비중이 훨씬 많고, 행복보단 불행한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온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볼 때, 이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우리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 편에 서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메시지를 보여준다. 절망이 습관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사실은 희망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 일러준다. 다분히 영화적인 주인공을 보여주며 우러러보게 하지 않고, 우리와 똑같이 실패를 거듭했던, 그러나 끝내 일어선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메시지를 더욱 가슴에 와닿게 한다. 한창 삶의 고통에 찌들어 있고 힘겨움을 호소하게 되는 요즘의 상황을 비추어 볼 때, 이 영화는 바로 우리들, 바로 지금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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