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 모두 땅을 아무리 파봐도 10원짜리 하나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한번쯤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한번 떨어지는 환상을 꿈꾼다. 벼락 일곱 번 맞고도 살아남을 확률보다 1등 당첨 확률이 낮다는 로또에 그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횡재도 오랜 시간 내 재산일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안위를 누릴 수 있는 법. 누군가 당신에게 한 10억원을 건네주면서 이걸 10일만에 쓰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루에 1억원 꼴로 돈을 쓴다는 것도 계획을 짜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영화, <밀리언즈>는 이렇게 뜻밖의 횡재를 하고도 난관에 봉착한 어느 형제의 이야기다. 그것도 보통 형제가 아니라 아직 10대도 안된 9살, 7살의 귀여운 어린 형제들이다. 이렇게 어린 꼬마 형제들의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놀랍게도 <트레인스포팅>, <28일 후> 등 대단히 독창적이지만 성인용에 가까운 영화들을 만들어온 대니 보일 감독이다. 이 감독이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의외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순수해 보이는(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아이들에게 돈이라는 골치거리를 안겼다는 점에서 대니 보일 특유의 재기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이 꼬마 형제 7살 데미안(알렉스 에텔)과 그의 형 9살 안소니(루이스 맥기본)는 상당히 대조적인 구석이 많은 아이들이다. 동생 데미안은 그야말로 천사같은 마음씨를 소유한 아이이다. 대단히 도덕적인 생활을 추구하고 성자들에 대해 배우는 걸 좋아하며, 그래서 종종 성자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환상을 접하기도 한다.(그들이 언제 태어나고 사망했으며, 심지어는 누구는 연대 미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반면에 형 안소니는 대단히 실리 계산에 능한 아이이다. 애가 벌써부터 돈의 맛을 알았는지, 부동산에 취미를 들여 투자 계획을 세우는 등 상당히 일찍 성숙한 면이 있다. 이들은 현재 아버지와 살고 있는데, 이제 막 새로운 마을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셨어요'라는 말만 하면 물질적으로 관대해지는 어른들의 특성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기차길 옆에서 그 흔들림을 느끼는 재미로 아지트를 마련한 데미안. 그런데 어느날 그 아지트로 거대한 가방이 날아와서는 아지트를 완전히 깔아뭉갠다. 그 가방안에 들어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돈! 그것도 자그마치 백만 파운드에 이른다. 일단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형제는 조용히 돈을 갖고 오지만, 문제는 영국의 화폐가 조금 있으면 유로화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유로화 전환까지 남은 시간은 단 10일. 그 이후면 이 많은 돈들은 한낱 종이 조각이 되고 만다. 이때부터 어떻게든 돈을 써야 하는 아이들의 소비생활 오딧세이와 함께 그 돈을 둘러싼 상상 초월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는 어른들이 주된 주인공이 아니다. 두 형제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새로운 애인, 그리고 그외 주변 마을 사람들도 형제를 둘러싼 주변인물일 뿐이다. 영화의 포커스는 오롯이 두 형제를 따라가기 때문에, 이 두 형제의 연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 기특하게 연기들을 잘 한다! 우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둘째 데미안 역을 맡은 알렉스 에텔을 귀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자들이 뜬금없이 나타나면 그가 살았던 연도를 습관적으로 암기해주는 센스, 노숙자들에게 즉흥적으로 피자를 수없이 쏴주는 센스 등, 데미안은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하기 힘들 대담(?)하면서도 귀여운 행동들을 보여준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듯 또박또박하면서 다소 독특한 억양의 말투도 귀여움 증대에 한몫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가끔 돈을 최대한 숨기고 많이 쓰기를 원하는 형에 비해 눈치 없이 천 파운드를 기부하는 등 엉뚱한 행동을 일삼기도 하지만, 이렇게 귀여운 구석이 후반부에 가면서 영화가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결 덜 거부감이 들면서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게끔 해준다. 형 안소니 역을 맡은 루이스 맥기본의 연기도 기특하기는 당연하다. 이제 10대를 문턱에 두고 한창 생각도 자라고 독창적으로 변해가는 무렵, 부동산이라는 만만치 않은 분야에 재능을 가지는가 하면, 적당히 선정적인 사진에도 눈독 들일 줄 아는, 그러면서도 막상 무서운 상황이 들이닥치면 겁먹고 눈물부터 흘리는 등 아직은 아이다운 말썽꾸러기 첫째의 모습을 참 잘 보여주었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참 주인공 배우들은 참 잘 뽑지 않았나 싶다. 다소 파격적으로 보이는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지만, 그 특유의 스피디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은 역시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에서도 인질극이라는 다소 엄한 소재에 천사의 도움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소재를 접목시켰는데, 이 영화에서 역시 감독은 천사라고 할 수 있는 성자, 성녀들을 불러들임으로써, 보다 판타지적인 특성을 잘 부각시켜준다. 위에선 뭐든 다 할 수 있다면 담배를 펴대는 성녀 등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성자, 성녀에 대한 이미지도 살짝 비틀어줌으로써 예의 대니 보일식 도발적인 면을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라고 치부하기엔 매우 현란하고 스피디한 영상들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이들의 상상(집이 지어진다든지, 아지트가 로켓이 되어 날아간다든지)이 그대로 화면에 보여진다든지, 비교적 차분히 전개되다가 갑자기 현금 탈취 사건 부분에선 여느 액션 영화처럼 스피디하고 화려한 화면들로 가득 채워진다든지, 하는 유연한 구성은 영화 보는 재미를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주었다. 전작들에서 인간들의 허영심을 적잖이 꼬집었던 대니 보일 감독은 이 영화 <밀리언즈>에서도 역시, 다만 보다 부드러워졌고 가족적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그러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돈이 아이들 손에 들어오면서부터,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아이들과 주변 인물들간의 관계는 알게 모르게 꼬이기 시작한다. 부쩍 의심이 많아지면서 말이다. 형 안소니가 돈을 몰래 가져온 것도 알게 되면 아버지가 분명 심히 혼내고 다 압수할 것임을 의심했기 때문이고, 나중에 생긴 아빠의 연인도 혹시 돈을 들고 튀지는 않을까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갑자기 누군가가 거금의 전자제품들을 무더기로 구매했다 싶으면, 혹시 저 사람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얻은 건가 하고 의심하기에 급급하다. 이렇게 영화는 거금의 돈 앞에서 의심이라는 무기로 자신을 무장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살짝 꼬집어주고 있기도 하다. 영화는 또한, 거금의 돈 앞에서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가 하는 문제를 묻기도 한다. 그 돈을 현금 수송 열차로부터 탈취한 강도나, 그 돈을 우연히 얻고는 자신의 돈인양 펑펑 써대는 아이들, 가족들의 모습 중에서 누가 더 악하다고 할 수 있는가? 자신도 훔쳐 놓고선, 자기 것이라며 끝까지 돈을 쫓는 강도나, 주운 것이라면 무조건 임자 없는 것이라는 전제 아래 자기가 가져야 한다며 돈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이용할까 생각하기에 급급한 아이들과 그 가족(물론 데미안은 좀 착한 생각을 갖고 있긴 하지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막상 돈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선악의 경계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다소 뻔하긴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돈이라는 쓰면 없어지는 물질 때문에 가족과 사람들 간의 믿음을 잃어버리면 안된다는 메시지도 강조하고 있고. '사람났고 돈 났다'는 얘기는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얘기고, 그래서 너무도 진부한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 진부한 교훈을 결코 진부하지 않게 보여준다. 아이들의 귀엽고 기특한 연기, 대니 보일 감독 특유의 도발적인 상상과 눈을 즐겁게 하는 현란한 영상, 그리고 기분 좋은 코미디와 적당한 스릴 등 수많은 재료들을 곁들여, 돈에 대한 당연한 진리를 보다 마음 속에 인상깊게 각인시켜 주었다. 이렇게 귀엽고 깜찍하고 재미와 스릴을 겸비한 교훈이라면, 그 누군들 거부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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