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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우러내는 영화의 깊이 녹차의 맛
kharismania 2006-12-12 오전 2:40:56 801   [3]

녹차의 맛. 과연 녹차의 맛이란 진정 무엇일까. 사실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다도(茶道) 문화라지만 우리는 그들보다 차(茶)에 익숙치 않다.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편리하게 포장된 티백에는 익숙하지만 날것의 향취가 담긴 찻잎을 우려낸 오리지널의 맛은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티백이든 잎사귀를 직접 우려낸것이든, 차란 모름지기 우러남의 깊이로부터 좌우되는 것이다.

 

 페이드 아웃, 암흑같은 스크린에 가쁜숨을 몰아세우는 헉헉거림이 채워진다. 그리고 침묵속에 페이드 인, 슬로모션으로 허공을 뛰어오르는 소년의 모습이 스크린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내달림. 소년은 자신이 짝사랑하던 여자아이가 전학가버림에 못했던 한마디를 하기위해 내달리지만 결국 그 고백은 전할 수 없는 말로 남는다. 소년의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는 기차처럼 소년의 사랑은 가슴속에 휑한 감정의 빈자리만이 남은채 그렇게 짝사랑과 멀어진다.

 

 사실 이 영화의 의도를 간파하기는 쉽지가 않아보인다. 소년의 이마에 구멍을 내고 떠나가는 기차처럼 이 영화의 상상력은 영화의 알 수 없는 묵묵한 속내마냥 정체가 기묘하다. 하지만 그것에 반감을 표하고 싶진 않다. 마치 진중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이영화의 내음이 깊게 우러나는 순간까지 목도하고 싶어진다. 시퀀스에서 발생하는 갑작스런 상상력의 태동들은 무척이나 생뚱맞지만 그게 밉진 않다. 과장되거나 비약적이라기 보단 어딘지 모르게 정이 가는 엉뚱함이다. 기괴함보다는 기발함으로 이해하고 싶은 건 다 그안에 각자의 사연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인물이 아닌 극에서 등장하는 가족은 개개인의 사연을 이야기의 구석구석에 채워넣는다. 다중 구조의 역학처럼.

 

 왠지 모르게 조금 무기력해보이는 아야노(아사노 타다노부 역)나 어린나이답지 않게 심각하고 진지한 사치코(반노 마야 역)는 각자 자신만의 고민을 안고 있다. 하지메(사토 타카히로 역) 역시 그 나이에 걸맞는 설레임안에서 머문다. 그렇게 세 인물들은 각자의 고민안에서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그 고민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풀어헤쳐져서 화면에 늘어놓아진다. 아야노의 노상방변 회자담은 사치코에게 자신의 대형분신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고 이는 직접적인 해결의 방편은 못 되지만 실마리를 쥐는 의지를 돋운다. 하지메의 머릿속에서 달아나듯 떠나버린 기차는 그의 첫사랑이 떠나감을 의미하지만 그 구간에서 오고감을 반복하며 그의 사랑이 단순히 일회적인 순간에 머물지 않음을 도식적으로 표현한다. 사실 그 매듭을 먼저 푸는 건 아야노다. 그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고민이 건너지 못하던 다리를 건너 풀지 못했던 숙원같은 미련을 건넌다.

 

 사실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뚜렷하진 않다. 사건이 될만한 목적성이 뚜렷한것도 사치코의 철봉극복담을 빼면 쉽게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무덤덤한 이야기가 각자의 실마리로 뻗어나가는 순간 짜릿한 탄산의 맛은 아닐지라도 그 은은한 향내가 느껴지는 운치있는 여유가 관객에게 퍼져나간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괴한 캐릭터인 할아버지 아키라(가슈인 타츠야 역)는 무의미하게 나열되는 기괴한 에피소드의 의미를 한방에 되개기게 만드는 키워드같은 역할을 한다. 그가 남긴 그림은 그 무언가를 기다리며 스크린을 응시하던 관객의 노고를 상쇄시켜버린다. 비로소 철봉넘기를 성공하는 사치코의 행위적 보답과 그로부터 스스로의 자격지심과도 같던 거대분신을 영생시킨다.-결코 사치코가 풀려난다고 말할 수 없다.- 사치코의 눈을 피해 창문을 여닫으며 관찰하던 아키라가 지녔던 행위적 기괴함 너머의 속내는 사치코의 오랜 체증같던 고민마저도 신비로운 도움닫기를 이룰수 있게 돕는다. 그의 기괴함이 지녔던 단순한 오해너머의 진실한 감동에 맞닿는 순간 이 영화가 우려내고자 했던 그 진득한 깊이의 맛에 도달할 수 있다.

 

 자연의 녹색 풍광을 수수하면서도 광활하게 잡아내는 스크린안에 종종 드러나는 비현실적인 상상력은 아기자기하게 관객의 시선을 도발하고 영화의 상상력을 거리낌없이 늘어놓는다. 이는 관념이나 개인적인 상상을 이야기적으로 풀어내기 전에 하나의 이미지즘으로 직접 드러내보이는 방식인데 영화의 색다른 맛을 더하면서 동시에 그 독특한 상상력으로 영화의 평면적 이야기를 한층 입체적으로 만든다.

 

 극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치 우리가 사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만 같은 인물들. 야구복과 방망이를 입은 야쿠자와 로봇 코스프레에 빠진 남자들, 기괴한 율동과 노래를 하며 변태처럼 언급되는 사람들. 하나같이 평범한 일상과 이 세계에 연관이 없는 모습들같지만 이를 통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그 특이한 것들조차 이 세계를 메꾸고 있는 평범한 일상 중 하나라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노을을 바라보는 결말부분처럼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우리는 같은 지상에서 비슷한 것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결국 이 세상을 채우고 있는 것이 단순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만이 아닌 이 세계 그자체라는 것이다. 자신의 영역밖의 독특한 것을 배제한 삶이 아닌 모든 것이 받아들여짐 그 자체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속의 사소한 에피소드같은 사연들은 저마다의 연관성을 지닌다. 아야노의 노상방변 이야기가 단순히 그 순간만을 위한 일회성 무의미한 맥거핀이 아닌 이야기의 연관관계를 지니는 것부터 간접적으로 상관없는 인간관계를 엮어나가는 알고리즘을 형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도 의미없고 괴상망측함으로 여겨지고 불식되는 타인의 행위안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 마치 아키라가 며느리인 요시코(테즈카 사토미 역)의 걷는 모습을 괴상하게 응시했던 행위가 남긴 것을 통해서 이 영화는 그것을 증명한다. 마치 차의 첫맛이 다소 떨떠름해도 그 말미에 남는 향내의 깊은 속이 은은하게 우러나 입안에 도는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속을 알 수 없는 이야기 끝에 남은 향은 우리의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우리의 가슴속을 돈다. 정말이지 그맛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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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의 맛(2003, The Taste of Tea / 茶の味)
배급사 : 메가박스중앙(주)
수입사 : 메가박스중앙(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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