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아이템이 흥미가 있어 어렵게 시사회권을 구해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데스노트 라스트네임' 편으로 데스노트 2편입니다. 데스노트 1편은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영화관 가기 전에 1편을 먼저 보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려고 하는 분들 중에 1편을 보지 않았다면, 먼저 1편을 보시길 권합니다.
일본 영화는 저에게는 낯섭니다. 헐리우드 영화나, 우리나라 영화에는 길들여져 있는데, 일본영화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 화면에 나타나는 배우들의 모습이나, 연기가 낯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만화 영화는 인정을 하고 잘 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만화를 영화화한 것이라 하더군요. 만화를 보지 않은 저는 만화적 상상력만으로 보았으면 좋을 것인데, 배우들 그리고 실물 배우들과 섞인 사신의 캘릭터 이미지의 분위기가 관객을 압도하지는 못할 것 같아 아쉽더군요.
아쉬운 것을 몇가진 든다면.........영화적 상상력이나 아이디어는 좋은 것 같은데, 영화에 표현된 마네킹 같은 만화적 인물들이 가볍게 보이고, 스릴이나 긴장감이 부족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음산한 죽음의 신,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긴장감, 그리고 사건을 푸는 인물의 신비감 이런 것들이 더 알차게 표현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아! 그렇구나 하고 뒤통수를 치는 반전도 미약하고, 치밀한 계산이라고 하기엔 우연성,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필연성의 부재가 작가가 만들어 낸 천재는 있어도 관객이 인정하는 천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인성의 파멸 과정이 중요할 수도 있는데 많이 건너 뛴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흥미있고, 볼만은 했지만 썩 잘 만든 영화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것은 일본 영화란 저의 편견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이런 영화를 헐리우드나,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면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언니가간다나 클릭처럼 영화 '데스노트'도 초월적인 힘에 의존해 무엇인가 바꾸려는 시도를 합니다. 처음부터 인간에겐 그런 기적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세상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삶에서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기적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으흐~~ 모를 일입니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기적을 바라며 살 수는 없습니다. 로또복권 정도는 몰라도...그래서 난 맨 마지막에 류크가 한 말 '데스노트를 사용한 자에게는 천국도 지옥도 없는 '無'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것은 이 영화의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세상살이의 행복도, 불행도, 기쁨도, 슬픔도 없다면, 결국 삶 그 자체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없다는 것은 곧 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무는 불교의 공사상과도 틀리며, 해탈도 아닙니다. 영화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 불완전하지만, 완성해 가는 과정 그것이 정의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몇가지 궁금한 것
1. 데스노트의 소유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죽는다.
그렇다면 소유자와 아닌 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만, 소유자가 소유권을 버리면 기억을 잊어 버린다는 것뿐
2. 류크가 라스트네임을 썼던 데스노트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사신의 수와 데스노트의 수가 다른 것 같다)
3. 왜, 류크는 마지막에 데스노트에 라스트네임을 그렇게 적었을까?
4. 렘의 선택은 그것 하나 뿐이었을까?
5. 데스노트에 죽는 날을 200년 후로 써 놓으면 어떻게 될까? 선택은 그것 하나 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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