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전지현을 좋아하는 남자분들 중에 <엽기적인그녀>를 보고 좋아한 사람이 반 이상일 것이다. 나도 한국영화 꼽는다면 3위 안에 꼽히는 재밌으면서도 감동적이고, 특히 여배우에게 이렇게 많이 반한 영화도 없었다. 그 당시 "엽기"라는 단어로 트랜드를 잘 타서 흥행했다 쳐도 그녀의 매력에 대해 남자분들은 더이상 논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 아성을 깨기는 조금 무리겠지만, 그 엽기녀의 기운을 이어받아 <두 얼굴의 여친>으로 "정려원"이 돌아왔다. 영화 주연으로는 첫 작품인 려원은 자신의 매력을 뽐낼 수 있는 무난한 작품을 선택했다. 비슷한 내용의 소재는 욕을 먹기 마련이지만, 그녀 나름대로 깜찍하고 귀엽고, 터프한 이미지를 오버와 함께 잘 만들어서 소화했다.
<엽기적인그녀>가 개봉하고, 엄청난 흥행을 했을 때 이 기록을 깨지기는 하겠지만, 로맨틱코미디가 깨지는 못할 거라 생각한 것을 <미녀는괴로워>가 깼다. 물론 <두 얼굴의 여친>은 추석때 개봉하는데 다른 경쟁작들때문에 이렇게 대박 흥행을 예상하고 있진 않지만, 영화 본 사람들의 만족도가 꽤 높다는 것이 많이 주효할 듯 싶다. 보니까 한 번 우려먹는다는 얘기도 있고, 3류코미디에 웃기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는데, 솔직히 이 정도는 아니다. 물론 전지현의 '그녀'와 닮은 구석이 많다. 단지 그것이 인격이 다른 때에 나온다는 것이지, 그걸 합치면 아마 '그녀'일 것이다. 그러나 다정하다가도 순간 돌변하는 것은 같지만, 그게 다른 인격체라 아예 다른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양다리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3류 코미디라고 하기엔 너무 비약이 심하다. 화장실유머는 토하는 장면 하나를 빼고는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보여주는 유치한 장난과 에피소드에 웃으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설마 이중인격인 사람과 ㅡ.ㅡ;;) 현실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중인격이 스릴러에 많이 쓰였던 장르였는데, 로맨틱 코미디와 어떻게 결합됐나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제목이 <두 얼굴의 여친>. 누가 봐도 이중인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팜플렛이나 포스터에서 한 눈에 알 수 있다. 물론 별로 내용이랄 것도 없고, 이중인격의 소유자 '아니'와 연애는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구창'이 계속 만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다. 그러나.. 계속 웃긴 상황의 에피소드가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다중인격의 소재가 가질 수 있는 복잡함으로 넘어간다. <비밀>의 '모나미'도 아니고 계속 이랬다가 저랬다가 할 수 없지 않는가?!! 그래서 인격을 분리시키는데...
다행히도 각 상황의 에피소드가 잘 연결되었다. 물론 인연은 우연을 가장해 찾아온다는 영화적 설정은 늘 써먹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렇게 말고 단순히 미팅이나 소개팅으로 둘을 연결시키기엔 재미가 없지 않을까? 하여튼 귀신과 사람이 만나는 초반 설정부터 웃음이 터져나왔고, 그 '18번 귀신'의 설정이 초반으로 끝나지 않고, 마지막에서 둘을 연결하는 중요한 단서까지 이어지는데, 이런 복선은 미리 잘 깔아놨다고 생각한다. '아니' '하니'. 역시 '하니'일 때의 에피소드가 더 극단적이어서 재밌는 것은 확실하다. 혀를 깨물거나, 맥주병을 부수며 협박도 하고.. 그리고 '아니'는 '하니'일 때를 기억 못하니 옆에서 보는 사람은 웃기고, 그러나.. 가장 재밌었던 것은 봉태규였다. 형한테 '술 먹으니까 개야. 나 맞았어' 라는 대사가 압권이었고, 아르바이트로 인간 붓을 하다니.. 감독의 상상력에 박수를 친다. 그러면서 '하니'랑도 이제 많이 친해진 봉태규. "다중이 형님"(다중인격) 하면서 친근감을 보이니, 나중에 '하니'도 '아니'의 남자친구를 그를 인정하고, '나랑 놀자' 하면서 그를 필요로 하는 이런 장면들도 좋았다. 그리고 물론 귀스로 해피엔딩을 맺는 것은 좋았는데, 한결같이 밝게 나가다가 뒷부분에서 일부러 한 번 관객들이 흘리게 만드는 설정은 역시 우리나라 로맨틱의 코미디의 한계인가 하며 안타까웠다. 시종일관 행복함은 그 행복을 느끼지 못해서일까? 한 번 불행해야 그 진정한 행복을 맛보기 때문인가? 하여튼 조금은... 거슬렸다...
<방과후옥상>이후 2번째 연출인 이석훈 감독. 이번에도 봉태규와 함께 찍었는데, 그와의 호흡은 더욱 잘 맞는다. 뭐 봉태규가 워낙 로맨틱코미디 방면의 연기는 능수능란하게 하니까 더 말할 것도 없고, 려원이 살짝 불안하긴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런 매력이 있을 줄은? '아니'일 때는 혀도 약간 꼬이면서 앙앙앙 애교도 피우고, 아양도 떨고, 오빠에게 앵겨붙어 사랑스러우면서 (안티가 늘 거 같지만) 귀여웠다면 '하니'일 때는 막 나간다. 오빠고 뭐고 없고, 오빠의 후배들까지 다 원산폭격을 시키는가 하면 대놓고, 얼굴이 못생겼다느니, 따먹었냐느니 남녀사이에서 할 수 없는 대화를 막 꺼내는데, 솔직히 려원이 나무 몽둥이를 들고, 봉태규앞에서 터프한 척 하는 장면 등은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구창(봉태규)에게 조금씩 마음이 끌리는 '하니'의 심리변화와 '아니'일 때 봉태규와 옛 사랑에 대한 얼굴로 심리변화를 보이는 것은 꽤 마음이 동요한 점이 잘 드러났다. 인절미 아줌마로 출연한 '이수나'와 구창 선배 역으로 나온 '김인권'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웃긴 대사를 날려주며 영화의 재미에 한몫했다.
운이 좋게 영화가 끝나고 봉태규가 무대인사를 했다. 예상치 못한 무대인사에 봉태규는 조금 당황, 관객들은 열광했는데, 영화속에서 여자친구를 위해 등대역할을 하는 장면을 다시 한 번 똑같이 보여줌으로써 더욱 더 환호를 받았다. 려원은 아쉽게도 다른 영화 촬영을 위해 무대인사를 못 왔다고 하며 (일정에도 없던 것이지만) 대신 사과를 하면서 관객들한테도 재밌게 보신 분들은 입소문 많이 내주시고, 재미없게 보신 분들은 조금 조용해 주셨으면 한다는 재치있는 멘트로 좌중을 한 번 더 웃겼다. 영화에서도 매력적이었지만, 실제로도 매너도 좋고 훈남일 거 같은 봉태규씨!! 영화는 참 재밌게 봤고, 앞으로도 재밌는 모습 계속 보여주시길~
p.s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NG 장면 나오는 걸 놓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