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손톱이 자라난다. 문뜩 쳐다본 손톱은 어느 덧 자라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존재한다. 싹둑 잘려나갔다는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여전히 그 자리에서 선명한 시선으로 마주한다. ‘내 이름은 조엘.’ ‘난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출근길에 회사에 가지 않고 갑자기 몬톡행 열차를 탄다.’ ‘파란 머리의 그녀가 갑자기 말을 건다.’ ‘난 그녀가 싫지 않다.’ 발렌타인시즌 차가운 겨울공기가 화면 가득 스산하게 스쳐가고, 그 보다 더 적적한 남자의 눈빛과 깍지 않은 수염이 도드라진다. 열차에서 말을 걸어온 그녀, 클레멘타인에게 끌리는 남자. 다음날 그들은 한밤중에 얼음으로 치장한 강으로 피크닉을 떠난다. 하지만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슬픔에 퍼렇게 멍이든 흐느끼는 남자를 담아낸다. 그녀와의 이별. 왜 그녀는 그를 만나주지 않는 거지? 하지만 그의 친구가 건네준 서신을 통해 그녀가 그와의 기억을 지워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의 기억을 지워준다고....... 슬픔의 어둠이 그를 남김없이 먹어치웠을 때,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커다란 봉지 두 개에 담아들고 병원으로 향한다. “그녀와의 기억을 지워주세요” 고통스런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설정에서 스토리는 커피포트의 뜨거운 김처럼 하얗게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그 사람과의 추억이 담긴 기억은 ‘제발 이 기억만은 지우지마’라는 절규처럼 아리고 절절하다. 또한 소멸은 몽환적인 장면을 곳곳에 나열하여, 우리를 사색하게도 애잔하게도 한다. 불에 달구어진 오렌지 쥬스를 하늘에 쏟아버린 석양이 어느 순간 어둠으로 덮여버리는 것처럼. 현란한 캐스팅 또한 우리를 매료시키는데, 짐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이 남녀 주인공으로 분해 우리를 흡입해버린다. 특히 짐캐리의 우울한 눈빛은 쓸쓸한 나무둥치처럼 아련함이 넘치고, 반지의 제왕의 일라이저 우드와 스파이더맨의 커스턴 던스트도 등장하여 또 다른 사랑이야기를 던져준다. 작은 비중은 있어도 작은 사랑이야기는 없다. 사랑의 기억을 지운다고 사랑이 지워질까? 하지만 그 사람을 만난다면 다시 좋아할 것이다. 왜냐면 그 사람이니까. 시사회를 통해 접할 수 있었는데, 늦은 가을쯤 개봉관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눈 내린 겨울 해변의 침대처럼, 슬프게도 따뜻하게도 만드는 영화다. 하지만 내안에서는 슬퍼지는 감정만이 내리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