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기다리기엔 너무 지루하고... 너무 꼬여 있다... ★★
MI6 요원인 레이(클라이브 오웬)는 어느 파티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여성은 CIA 요원인 클레어(줄리아 로버츠)로 처음부터 레이의 자료를 노리고 접근했던 것. 5년이 지나 샴푸 등을 만드는 다국적 기업 에퀴크롬의 산업 스파이로 활동하게 된 레이는 라이벌 기업인 B&R에 침투해 있는 이중 스파이 클레어와 다시 재회하게 된다. 지난 5년 동안 수차례 사랑과 배신의 게임을 벌여온 두 사람은 수천만 달러의 수익을 위해 최후의 게임을 펼치기 시작한다.
우선 토니 길로이의 이력을 먼저 살펴보자. 그는 최고의 첩보물로 평단과 관객의 인정을 받은 <본 시리즈>의 시나리오 작가인 동시에 2008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마이클 클레이튼>으로 감독 데뷔를 성공리에 치른 감독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더블 스파이>는 토니 길로이의 이력을 마치 짬뽕시켜 놓은 듯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본 시리즈>로 이어져 온 첩보물의 특징과 <마이클 클레이튼>이 보여준 거대 기업의 비리를 모두 품에 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더블 스파이>는 그 어느 쪽으로도, 심지어 두 남녀의 멜로로서도 뚜렷한 색채를 드러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맴 돌며,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꼬아 복잡하게 만들 것인가에만 신경을 쓴 듯 보인다.
5년 만에 만난(?) 남녀 스파이는 거리와 카페에서 큰 소리로 싸움을 한다. 남자는 분명히 5년 전 자신을 골탕 먹인 여자가 당신이라고 확신하지만, 여자는 사람을 잘못 봤다며 자리를 피하려 한다. 그런데 이 장면은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물과 대사는 동일하지만 장소와 시간은 변해있다. 즉, 이 둘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연극을 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무수히 삽입되는 플래시백의 잦은 사용은 퍼즐을 맞춰나가는 동시에 분명히 관객의 혼란을 유도한 듯 보이고, 부정적 의미에서 그 효과는 발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따분하고 루즈하며 배배꼬인 <더블 스파이>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영화가 끝나는 시점까지 누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인지 알기 힘들게 만들어놨다는 점이다.(잦은 플래시백의 사용이 가져온 효과?) 문제는 그것이 궁금증을 유발함으로서 영화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관객의 혼란을 유도함으로서 짜증의 증폭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한 미국 평론가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다”고 지적한 것은 아주 타당하다.
내가 이 영화를 관람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마이클 클레이튼> 때문이었다. 로맨스/스릴러의 외피를 둘렀다고는 해도 거대 기업의 비리를 고발하는 영화로서 진지함이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내가 생각한 방향의 영화가 아니란 점에서 혼란이 증폭되었고, 더 따분하게 느꼈을 여지는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마이클 클레이튼> 옆에 이 영화를 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민망한 상황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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