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찍했다. 디스토피아의 마지막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인간이 정말 이렇게까지 수준 이하가 됐구나 하는 자성도 느껴졌다. 지독한 디스토피아 세상을 담은 영화 세 편이 한 영화에 묶여 전개된다. 하나같이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이 배여 있는 이 세 편의 영화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형편없는 모습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혹독한 비판을 담은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인간, 지구에서 이제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골칫덩어리가 된지도 꽤 된 것 같다. 생명이 있으니 살아가고 있고, 또한 그 생존을 위해 죽어라 생존하고 있고, 지구를 위해 희생되어야 할 시점에서도 결코 자신들의 기득권은 물론 생명도 포기 못하는 지구의 암세포인 인간은 열심히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면서도 계속 버티고 있다. 이래서 탄생한 것이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세 가지 단편영화는 하나하나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았다. 환경오염이 그 원인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과 하나로부터 시작된 바이러스의 확산은 단순한 감기가 퍼지는 방식과 일치하지 않는다. 인간관계 자체가 엉망인 현대 사회에서 서로 폭력적이거나 성적 유혹 등 깊이 있는 만남으로는 보이지 않는 관계들이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주범이다. 환경파괴를 보여주는 방식을 보면서 과연 환경문제를 건드리려는 것인지 엉망인 인간관계를 보여주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뻔한 소재였던 좀비들을 보면서 공포물이란 생각도 들지만 많은 생각을 담고 있는 듯했다. 가장 인상적이란 생각이 들었던 두 번째 단편은 신선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위기의식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인간 이외의 존재가 인간만큼, 아니 인간 이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는 지구에서의 인간의 기득권을 뺏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특히 미래 사회의 주인일 수도 있는 로봇이 그 주인공으로 나서면서 영화는 가상 현실이면서도 미래에 실재로 벌어질 수 있다는 묘한 인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어쩌면 로봇 제조업체의 선택에 동의할 것도 같다. 마지막 반전이 있지만 사실 그것은 반전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과는 반대를 선택해야 하는 소수자들의 슬픈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교의 깊이 있는 철학도 돋보였다. 망할 때가 돼서 망하는 것, 마지막 단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다. 마지막 영화를 위해 앞의 두 영화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될 정도다. 어쩌면 모든 존재가 사멸할 수밖에 없는 것은 영원한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 시점을 알 리도 없고, 또한 알았다 해도 어떻게 서든 연장하려 할 것이다. 인간이 오만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얻었으면 억지로라도 연장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DNA의 명령 아니겠는가? 살고 싶을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자신의 희생해서라도 자신과 닮은 유전자를 영속시키려는 생명의 본성을 타고 났기에 억지로라도 버티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그것이 다하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최후는 올 것이며, 그 이유는 역시나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으로 인한 것이리라. 웃음으로 영화가 끝나지만 웃고 지나갈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 참 기분을 슬프게 만든다. 영화 속 인간들이 너무 인간적이었기 때문이고, 그런 상태의 인간들이 과연 자신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는 있는지, 아니면 극복하려고는 할지 등 비판 속의 희망을 꿈꾸기 참 힘들었다. 이런 영화는 현재의 인간의 처지를 보여준다. 불안한 심리가 만연되어 있는 현 시점은 어쩌면 세기말적 상황을 닮고 있다. 아니 세기말이며, 세상이 언젠가는 파멸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됐다. 뉴스를 통해 보는 세상들은 이런 걱정을 기우로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 사랑스럽다. 지금의 우리들이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비판하면서 조금이나마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의지라도 좀 갖게 됐으면 하는 꿈을 만들어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리라.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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