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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있고 싱싱한 청춘 예찬 69 식스티나인
vinappa 2005-05-08 오전 12:56:39 1497   [6]
    영화 <말아톤>이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롱런하는 동안 산지기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스포츠 영화의 고전이라 일컫는 <불의 전차>가 그랬던 것처럼 <말아톤>도 달리기가 소재고, 달리기 중에서도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을 소재로 한다는 것이 고민의 이유였다. 경기력에 앞서 체급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투기 종목 선수들은 시합이 잡히면 하루 10킬로미터 이상의 로드웍으로 지구력을 기르고 체중 조절을 한다. 평소 한끼 분량의 식사를 세번으로 나눠 먹으며 토할 때까지 달리고, 라식스라는 일종의 이뇨제로 체내의 수분을 짜내다 보면 세상은 점점 모노톤이 되어 간다. 하늘도 노랗고, 땅도 노랗고, 같이 뛰는 녀석의 얼굴도 노랗고, 간간이 뱉어 내는 침도 노랗다. 그렇게 힘겨운 과정을 거쳐 계체량 심사를 통과하고 나면 비계 많은 삼겹살 등으로 동물성 지방을 섭취해 떨어진 기력을 한꺼번에 충당하는데 그 후유증이 제법 오래 간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설사로 고생을 해야하고, 당뇨 환자도 아니면서 오줌소태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해당 종목의 선수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목욕탕에 가도 저울에 올라 서지 않고, 죽을 병 아니면 약을 먹지 않으며 비가 와도 뛰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이에게 마라톤 영화라니, 영화에 대한 끌림보다 달리기에 대한 꺼림찍한 기억 때문에 귀한 영화 한편을 놓친 것은 아닌지.

    이 영화 <식스티나인>은 육상이나 여타 스포츠 소재의 영화가 아니면서도 주인공들의 뜀박질을 유독 강조한다. 지독한 쇼비니스트였던 전력 때문에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원작 소설 속의 정황은 모르겠으나 영화는 일단 그렇다. 미리 알았더라면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영화 <식스티나인>의 인물들은 삶 자체가 뜀박질의 연속인듯 하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인 야자키 겐스케(츠마부키 사토시)의 뜀박질은 일상성을 뛰어 넘는다. 7킬로미터의 단축 마라톤 - 영화에서는 이를 로드레이서라 부른다 - 이 싫어서 가출까지 했던 이 대책없는 청춘은 뜀박질이 마치 자신의 사명이나 되는양 목숨을 내걸고 협소한 도로를 질주한다. 기뻐도 달리고, 분노해도 달리고, 평지의 순탄한 길도 달리고, 걸어서 오르기도 힘든 가파른 길도 치열하게 달린다. 그는 왜 그렇게 미친듯이 달리는 것일까? 야자키 겐스케(이하 겐)의 뜀박질은 표준어로 선언한 각오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방식이다. 그의 뜀박질은 또한 1969년의 일본 열도를 장악한 정치 논쟁의 진부함과 현실의 고루함을 앞지르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겐의 싱싱한 질주를 규격화된 달리기가 아닌 무규칙의 뜀박질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는 것은 그것이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발적인 것이어서 그렇다. 미군 부대의 철조망을 넘으려다 발각되어 도망가고, 섹스에 열중하다가 폭죽 때문에 혼비백산한 흑인 병사에게 쫓겨 도망가는 것이 어떻게 자발적인 것이냐는 반문이 따르겠지만 그렇다면 그 순간 겐과 그 무리들 - 그 중에서도 아다마(안도 마사노부) - 의 표정에 주목하자. 그 또는 그들의 표정은 도주라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절망적이기는 커녕 희열에 들떠 있다. 그들은 위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마저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방식이겠지만 이 영화를 시대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월남전과 전공투, 시네마테크와 페스티발을 이해해야 한다. 전공투와 월남전은 반미를 내세운 당시대 젊은이들의 정치관을 축약하는 단어들이고, 시네마테크와 페스티발은 청년문화와 보수정치의 충돌을 축약하는 함의의 단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정치적인 접근을 차단하면서 전공투 자체를 행동하지 않는 무용의 캠페인으로 못박아 버린다. 베트남에 관한 언급도 등장하지만 그 역시도 진지한 접근은 아니다. 이 영화의 탈정치성은 조총련계 학교를 다녔다는 감독의 정체성과도 충돌하는 부분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사회를 이데올로기로만 해석하려 드는 유사 지식인들에 대한 비아냥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시네마테크와 페스티발은 이상적 청년문화의 전형으로 추대되어 영화의 전면에 배치된다. 영화는 청년 세대의 문화운동으로 시네마테크와 페스티발을 부각시키면서도 그에 대한 고찰이 지극히 피상적인 것임도 함께 실토한다. 원작자 무라카미 류의 페르소나인 겐은 고다르와 크림, 레드 제플린을 모르는 아다마를 외계인처럼 여기지만 정작 자신도 그에 대해 정통하지 못하다. 고다르와 시네마테크, 시네마테크와 앙리 랑글루아를 거쳐 68혁명과 전공투로 이어지는 연쇄관계는 안중에도 없으며, 페스티발의 모델로 제시하는 우드스탁과 자신이 추종하는 크림과 레드 제플린의 어긋난 대입에도 신경쓰지 않는다. 겐에게 있어 고다르는 잡지를 통해 습득한 얕은 정보에 지나지 않으며 크림과 레드 제플린은 만족스러운 음악을 제공하는 밴드일 뿐이다. 바리케이드 봉쇄의 슬로건으로 68혁명의 격문을 인용하고, 고리타분한 제도를 뒤엎기 위해 페스티발을 꿈꾸지만 그것은 단지 막연한 동경을 실현하기 위한 것일 뿐 68혁명과 우드스탁이 가진 정치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많은 매체의 평자들이 이 영화를 평함에 있어 원작 소설에서 구체화된 미묘한 긴장과 역설이 사라진 점을 지적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 지적은 오히려 '69'라는 숫자에 영화를 결박시키는 패착이 될 수도 있다. 1969년의 고교생들을 아저씨라 불러야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 볼 때 소설에 묘사된 유쾌함의 이면은 정서적으로 교감하기 힘든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 청년들도 간접적으로만 경험해야 했던 시네마테크와 페스티발도 그렇거니와 정치적인 부분은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 영화가 69년의 정치적 격동과 교사들의 공공연한 폭력에 대한 묘사를 조소 또는 경멸에 국한시키고, 인물들의 감정도 희와 노로 단순화시킨 것은 소설이 탐닉한 작가의 청년기가 아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청춘을 예찬하기 위한 선택의 결과다. 청춘은 발언권을 얻지 못한 이들의 증오에 찬 반항의 계절이 아니라 마치 필드에 던져진 럭비공처럼 무자비한 발길질에 번번히 걷어 차이면서도 제멋대로 튀는 예측불허의 나날이라는 감독의 선택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감독은 자신의 선택에 추진력을 더하기 위해 정치성의 개입을 과감히 사절했다. 대신에 겐이 가지지 못한 진지함을 가진 아다마와 소극적이고 주장없는 이와세(카나이 유타)를 겐과 결합시켜 시대를 뛰어넘는 청춘의 보편성을 완성시켰다. 그 결과 영화는 가볍고 경쾌해졌으며 억압받는 주변인들의 비명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통칭 제도권이라 칭할 수 있는 기득권과 주류 운동권의 관점에서 감독의 선택은 경솔한 일반화 오류로 해석될 수도 있다. 서열과 규칙에 순종하고 규격화된 삶을 살라고 강요하는 기득권의 속성 상 겐과 그 일당들의 일상은 집단의 평균적 가치를 어지럽히는 위험천만의 도발로 여겨질 것이고, 저항과 청년문화를 등치시키는 주류 운동권의 입장에서라면 이들의 정치성은 단세포적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와 같은 제도권의 주장을 오만한 거들먹거림이라고 단정하고 그에 대해 이렇게 항변한다. 배설물에는 사상이 없듯이 청춘에는 타협과 비굴이 없어야 한다고.

    이 영화는 분명 가벼운 영화다. 앞서 열거한 네 가지의 단어, 월남전과 전공투, 시네마테크와 페스티발이 얽히고 설켜 있지만 그 단어들의 조합은 허술하고 산만하다. 짝사랑하는 동급생 소녀 마쓰이(오오타 리나)의 말 한마디에 행동하는 혁명가가 되고, 정치성과 저항 정신과는 상관없이 재미를 위해 페스티발을 꿈꾸는 겐에게 69년이라는 질풍노도의 시대는 그저 다양한 해프닝들이 벌어졌던 해일 뿐이다. 영화의 후반부, 겐이 무자비한 폭력 교사에게 학생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의 동급생들이 부조리한 제도에 반발하는 설정은 일견 생뚱맞게도 여겨진다. 하지만 좀 가볍고, 산만하고, 생뚱맞으면 어떤가. 많은 길을 우회하기는 했지만 페스티발은 개최되었고, 사랑도 쟁취하지 않았는가. 정치적으로 접근하자면 이 영화의 흠결은 한정도 없겠지만 정치적 접근을 원천봉쇄한 감독의 단호한 결정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인간이 권력에 우선하고 개인의 행복추구가 집단의 발전에 우선해야 함을 감독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성장에 대한 시각 또한 통찰력 있고 정직하다. 성장이란 기지도 못하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걸어서 지구 한바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걸음걸이의 형태가 잡혀 가는 것. 겐의 밴드가 연주하는 크림의 <Sunshine Of Your Love>은 그런 이유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영화에서 처음 연주될 때 이 노래의 가사는 엉망진창이었지만 페스티발 무대에서는 정확한 가사로 바뀌어 있다. 어눌한 발음때문에 눈에 잘 뛰지도 않지만 그들은 그렇게 성장한 것이다. 완벽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프로의 세계는 때때로 그 완벽함에 대한 강박때문에 허덕이게 되지만 스스로 즐기는 것이 우선인 아마추어의 세계에는 완벽에 대한 강박은 커녕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책임과 의무에 억눌려 사는 어른들의 세계가 억압당하는 프로의 세계라면 청춘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전부인 아마추어의 세계다.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그런 까닭이다.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 겐의 상상력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유쾌하게 만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격다짐일지라도 행동할 수 있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969년 사세보 북고에 재학했던 문제아 야자키 겐스케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

2005. 04. 01. 山ZIGI VIN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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